겹아가리토기

겹아가리토기

토기의 구연부 외측에 점토띠를 덧붙인 겹구연토기(겹입술토기)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토기의 성형시에 최상단의 점토띠를 하단과 접합하면서 겹쳐진 부분을 완전히 평탄하게 정면하지 않고 접합 부위의 흔적을 남기는 것도 포함시키기도 한다. 민무늬토기〔無文土器〕로는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가락동식토기(可樂洞式土器)가 대표적이며, 흔암리식토기(欣岩里式土器) 중에도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함경도 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출토된다. 신석기시대의 말기 겹아가리토기가 중국 동북지역의 초기 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토기의 기형은 깊은바리모양〔深鉢形〕이 대부분이지만, 항아리모양〔壺形〕과 얕은바리모양〔淺鉢形〕도 있다. 팽이모양토기를 제외한 겹아가리토기는 압록강유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시작 단계부터 보이며, 남한지역에서도 경남 남강유역의 상촌리 유적 등을 볼 때 덧띠무늬토기〔突帶文土器〕와 병행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겹아가리토기는 점토띠의 폭이 좁고, 점토띠의 윤곽이 뚜렷하며, 침선문양이 점토띠의 평탄면에 새겨지는 특징을 가진다. 이에 반하여 전기 늦은 시기의 특징은 점토대의 흔적이 접합흔만 남겨서 선문(線文)처럼 보이거나 폭이 넓으며, 독모양〔甕形〕을 띠기도 한다. 한반도 남한지역의 중서부지역이나 경남 서부지역에서는 침선무늬가 첨가되지 않는 것이 중기 전반까지도 존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안재호)

참고문헌

  • 중기 무문토기시대 문화의 편년과 성격(송만영, 숭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년)
  • 전기무문토기의 문양편년과 지역상(안재호·천선행, 福岡大學考古學論集-小田富士雄先生退職記念, 2004년)

동의어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