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시대

원삼국시대

[ 原三國時代 ]

한국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구분 명칭으로, 이 용어는 1970년대 초에 생겨났는데 초기철기시대에 뒤이은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는 종래 고고학에서 김해시대, 웅천기 등으로 불려왔고, 역사학에서의 삼한시대, 부족국가시대, 성읍국가 등이 이에 해당되지만 원초삼국시대(原初三國時代) 혹은 원사시대(原史時代)의 삼국시대라하여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라고 명명하였다. 이 시대의 실연대는 서력기원 전후로부터 300년까지로 정의된다.

이 시기의 문화적 특징은 청동기의 소멸과 철기의 발달 및 보급, 철제 농구와 소에 의한 농사의 발전, 그리고 저화도의 민무늬토기가 아니라 높은 온도의 단단한 회색 김해토기(金海土器)의 생산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변화는 낙랑군을 통한 중국 한문화(漢文化)의 자극에 의한 것이며, 특히 낙동강유역은 철을 생산하여 낙랑(樂浪)과 일본(日本) 등에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유적에는 집자리, 조개무지, 가마 등 생활유적이 있고, 무덤에는 움무덤(木棺墓와 木槨墓), 돌덧널무덤(石槨墓), 독널무덤(甕棺墓) 등이 있다. 유물에는 김해식토기(打捺文土器), 철기, 골각기, 장신구 등이 있다.

현재 한국고고학에서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원삼국시대를 대신하여 삼국시대 전기(三國時代前期)로 하자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즉 삼국시대의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삼국(三國)은 삼한(三韓)과 마찬가지로 초기철기시대의 토착세력을 바탕으로 등장하였고, 그 후에 삼한지역을 통일하여 삼국을 정립하였으므로 삼국시대 전기로 부르자는 것이다.

원삼국시대의 용어에 대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지적되었다. 첫째, 이 용어는 1~3세기를 원사(原史)시대로 보는 데에서 출발되었으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하였다. 둘째, 원삼국이란 개념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프로토 타이프(proto-type)로 간주한다고 하나 실제는 고구려를 제외한 지역의 문화를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원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내용이 학자간에 주장이 달라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즉 기원전후로 문화가 변화되는 기준이 학자들간에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명칭을 고고학적 입장에서 철기시대(鐵器時代)로 하거나 문헌사에 근거를 두어 삼국시대(三國時代)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韓國考古學에 있어서 時代區分論(崔盛洛, 亞細亞古文化, 黃龍渾博士停年退任紀念論叢, 1995년)
  • 原三國時代論 檢討(李賢惠, 韓國考古學史論叢 5, 1993년)
  • 全南地方 三國時代 前期의 考古學 硏究現況(崔夢龍, 韓國考古學報 24, 韓國考古學會, 1990년)
  • 韓國考古學의 時代區分에 대한 약간의 제언(崔夢龍, 崔永熙先生華甲紀念韓國史學論總, 探究堂, 1987년)
  •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