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청동기

[ 靑銅器 ]

꺾창, 투겁창

꺾창, 투겁창

밀개, 끌, 도끼

밀개, 끌, 도끼

청동(靑銅, bronze)은 구리〔銅〕에 비소(砒素) 3%나 주석〔錫〕 10% 정도를 섞어서 만든다. 주석의 비율이 25%가 되면 백동(白銅)이 되나, 이 또한 보통 청동이라고 부른다. 주석 대신에 아연(亞鉛)을 넣거나 납〔鉛〕을 넣어 만들기도 하는데 아연이 45%가 되면 놋(眞鍮, Brass)이 된다.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는 한국 청동기는 무기(武器)가 대부분이고, 공구(工具), 의기(儀器), 꾸미개〔裝身具〕, 차마구(車馬具) 등의 기종이 있는데, 무늬로서는 기하학무늬〔幾何學文〕가 주로 장식되어 있다.

무기로는 검(劍), 투겁창〔矛〕, 꺾창〔戈〕, 화살촉〔鏃〕 등이 있다. 검은 검몸〔劍身〕 한가운데에 등대〔柱背〕가 있고 자루〔柄〕를 별도로 착장하는 것이 중국식이나 북방식의 동검과 다른데, 비파형(琵琶形)과 세형(細形)으로 나누어진다. 비파형동검은 날 중간에 돌기(突起)가 있고, 하부로 갈수록 팽창되면서 곡선을 그려, 중국 고대악기인 비파처럼 생긴 것으로 중국 리야오닝성(遼寧省)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어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이라고도 부른다.

이 동검은 중국 리야오닝성을 비롯하여 지린성(吉林省)과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세형동검은 초기철기시대 이후에 비파형동검에 이어 나타난 것으로 검몸의 폭이 좁아진다. 검몸에 허리가 파인 것과 등대의 가로마디가 뚜렷한 것은 한반도에 주로 출토하는데, 이를 한국식동검이라고도 부른다.

투겁창은 창날이 비파형처럼 생긴 형식과 곧은날〔直刃〕 형식이 있는데, 전자는 비파형동검과 공반하며, 후자는 세형동검과 공반한다. 세형동검과 공반하는 형식은 후대로 가면서 길어지고, 돌기 등의 장식이 붙는 형식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후기형식은 대부분 한반도 영남지역에서 출토하여 일본으로 건너간다.

방울

방울

방패모양동기

방패모양동기

꺾창은 초기철기시대 이후 전부 세형동검과 공반하는데 중국 꺾창을 모방하였으나, 날이 측면으로 돌출된 원(援) 부분이 없는 간략화된 형식이며, 화살촉은 몸의 모양이 양날개형〔兩翼形〕인 것과 편평삼각형(扁平三角形)인 것이 있다.

공구에는 도끼〔斧〕, 손칼〔刀子〕, 끌〔鑿〕, 사(蠣) 등이 있다. 이 중 도끼는 날부분이 부채모양〔扇形〕을 이루고, 머리 부분에는 횡단면이 네모꼴인 소켓을 갖추고 있어 자루를 맞추게 되어 있으며, 이 부분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형동검시기에 와서는 어깨가 있고 직선의 도끼가 만들어진다. 손칼은 곱은날〔曲刃〕이 대부분으로 자루까지 한꺼번에 주조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이 있다.

장식적 의기로서 대표적인 것은 거울〔鏡〕인데, 원형에 반원형 단면의 테두리가 있고, 뒷면에 꼭지 손잡이 2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뒷면 전면에 기하학무늬가 장식되었는데, 그 무늬의 선이 거친 거친무늬거울〔粗文鏡〕과 정교한 잔무늬거울〔細文鏡〕이 있으며, 각각 비파형동검 시기와 세형동검시기에 보급된다.

제사장(祭司長)이 사용하는 무구(巫具)로서 청동방울〔銅鈴〕은 세형동검시기에 남한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제작 보급되는데 여덟 가지 방울이 달린 팔두령(八頭鈴)과 가지 양끝에 방울이 달린 이두령(二頭鈴), 나무자루 끝에 부착하게 된 포탄형 방울인 간두령(竿頭鈴) 등이 있는데 각기 방울에는 장식이 있다.

원개형동기

원개형동기

쌍두령(左), 팔두령(右)

쌍두령(左), 팔두령(右)

이 밖에, 의기적인 성격을 띤 청동기로 원개형동기(圓蓋形銅器),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 나팔형동기(喇叭形銅器) 등이 있다. 이들 청동기는 대체로 비파형동검시기 후반에서 세형동검시기 전반에 유행한 것으로 리야오허(遼河) 유역의 써언양(瀋陽) 쩌엉지아와즈(鄭家窪子)와 금강 유역의 대전, 아산, 예산 등지에서 출토하였다.

원개형동기는 볼록한 면에 고리가 달린 것으로 두들겨 소리내는 악기처럼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방패형동기나 검파형동기는 제사장의 장식적 의기로, 나팔형동기는 말머리 장식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한국 청동기는 계통적으로 황하유역의 중국 청동기와 구별되고, 남부시베리아, 몽골지역을 거쳐 오르도스(Orodos) 지방으로 유입되는 북방 청동기와 가깝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예니세이강 상류의 미누신스크(Minusinsk) 지방에서 성립된 카라숙 문화(Karasuk Culture, B.C. 1200∼700)에서 찾기도 한다.

이 문화가 중국 네이머엉구(內蒙古)에 가까운 오르도스지역을 거쳐 리야오허 서쪽의 따링허(大陵河) 유역에 파급되고, 이 지역에서 난싸안거언(南山根) 유적 유물로 대표되는 씨야지야디앤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와 관계를 갖는다. 한국의 청동기문화는 씨야지야디앤상층문화와 인접하면서 북방계의 청동기문화의 요소가 줄어들고, 이 지역 나름대로 발전한 비파형동검과 기하학무늬 거울 중심의 링허(陵河) 유형으로 발전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보듯이 한국 청동기의 변천과정은 크게 비파형동검 이전 시기, 비파형동검 시기, 세형동검 시기로 나누어진다. 비파형동검 이전 시기는 기원전 12∼9세기로 룡천 신암리 3지점 2문화층 출토 청동손칼〔靑銅刀子〕과 청동단추〔銅泡〕, 평양 금탄리 3문화층의 청동끌〔銅鑿〕, 라진 초도 유적 출토의 청동단추 등을 들 수 있다. 동검 등의 무기가 발견되지 않고, 치레걸이와 소형손칼이 주로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비파형동검 시기는 기원전 9∼7세기경으로 따링허 유역의 차오양(朝陽) 쓰얼타이잉즈(十二台營子) 유적, 이보다 늦은 기원전 6∼5세기경은 써언양 쩌엉지아와즈의 예가 대표적이다. 비파형동검과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多瞿粗文鏡〕 등을 비롯하여, 비파형창끝과 부채모양도끼 등 한국계 청동기의 기본이 되는 청동기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세형동검 시기는 전기가 기원전 4∼3세기경, 후기는 기원전 2∼1세기경이다. 전기에는 세형동검을 비롯하여 투겁창, 꺾창, 여러꼭지거친잔무늬거울〔多瞿粗細文鏡〕이 공반되며,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한지방에서는 이형동기(異形銅器)로서, 방패형·나팔형·원개형동기 등이 함께 출토된다. 후기에는 세형동검과 함께 정교한 무늬의 잔무늬거울이 보급되고, 남한지방에서는 이와 함께 각종 청동방울〔銅鐸〕이 만들어진다. 아울러 이 시기에 남한지방에서 유행하는 잔무늬거울과, 세형동검, 세형청동투겁창이 일본으로 전파한다.

이러한 청동기는 거푸집〔鎔范〕을 만들어 구리물을 부어 만드는 주물방법으로 제작된다. 거푸집은 돌로 만든 것과 흙으로 만든 것이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조각하기 쉬운 활석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인데, 일부 사암제도 있다. 비파형동검 시기에는 비파형동검과 부채모양도끼의 거푸집이, 세형동검 시기에는 검, 투겁창, 꺾창, 거울, 도끼, 끌, 사, 낚싯바늘 등 거의 전 기종에 걸쳐 거푸집이 발견되었다. 특히 전남 영암에서는 수십 기종에 해당하는 거푸집이 일괄 발견되어 일정지점에 전문 공방(工房)이 마련되어 제작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대체로 평평한 직육면체로 두 짝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데, 측면에 구리물을 부어 넣기 위한 구멍이 있다.

거울 거푸집의 경우 뒷면에 거친 기하학무늬가 장식된 예가 있지만, 잔무늬거울의 정교한 기하학무늬가 새겨진 거푸집은 확인되지 않았다. 청동방울과 의기 등도 거푸집이 발견되지 않았는 바, 이들은 밀랍(蜜蠟)으로 틀을 만든 다음 고운 점토를 씌운 다음 밀랍을 녹이는 수법으로 거푸집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는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副葬品〕로 발견되고 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의 종류와 양은 시기와 지역, 그리고 무덤 주인공의 신분에 따라 다르지만, 검, 투겁창 등의 무기를 기본으로 한다. 비파형동검 시기에 따링허, 리야오허 유역에서는 이른 단계인 차오양 쓰얼타이잉즈의 돌무지돌덧널무덤〔積石石槨墓〕와 써언양 쩌엉지아와즈의 나무덧널무덤〔木槨墓〕 등의 무덤은 최고 수장급으로서 청동무기, 거울과 함께 각종 의기와 치레걸이, 차마구 등이 다량 부장된 바 있다.

그러나 같은 비파형동검 시기에 한반도에서 축조되는 고인돌〔支石墓〕과 돌널무덤〔石棺墓〕 등의 무덤에서는 대부분 비파형동검과 투겁창, 도끼 정도가 부장되고, 거울 등의 의기와 치레걸이가 발견된 바 없다. 세형동검시기에 와서야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 나무널무덤〔木棺墓〕에서 동검, 투겁창, 꺾창 등의 무기와 함께 청동거울을 비롯하여 청동방울, 의기 등이 부장된다. 많은 청동기가 발견되는 무덤의 주인공의 신분은 추장이나 군장(君長)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 특히 청동방울이 부장된 무덤의 경우는 제사장의 성격을 가졌을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계 청동기가 보급되는 일본에서는 매납유구(埋納遺構)에서 청동기가 다량 출토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매납유구라 생각되는 곳에서 발견된 사례가 있다. 청도 예전리 유적 등이 그러한 것으로 추정되나, 마산 가포동, 합천 영창리 유적의 사례도 있다. 매납유구는 일본에서 대형 무기나 청동방울 등을 매납한 것으로 공동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청규)

참고문헌

  • 한국청동기문화연구(윤무병, 예경산업사, 1987년)
  • 비파형단검에 관한 연구(황기덕 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8년)
  • 한국청동기시대 문화의 이해(심봉근, 동아대출판부, 1990년)
  • 청동기·철기시대의 사회와 문화(이청규, 한국사 1, 한길사, 1994년)
  • 청동기문화(이건무, 대원사,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