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방울

청동방울

몸통 안에 혀가 있어 이의 부딪힘에 의해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는 방울, 그리고 머리부에 나무 손잡이를 꽂을 수 있는 길죽한 막대 모양의 자루 맞추개가 있다는 점에서는 요(鞠), 종(鍾), 정(鉦) 등과 유사성을 보이는 기물이다. 따라서 세형동검(細形銅劍)단계에 평양 부조예군묘(夫租拔君墓), 대동군 상리, 전(傳) 경주 죽동리, 전 대구 평리동 등지에서 발견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 청동방울이지 동탁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 습관적으로 동탁이라 부르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도 방울류를 동탁으로 분류하였다.

청동방울은 아가리부의 만곡 여부에 따라 편평밑과 오목밑 청동방울로 대분류되는데, 편평밑이 보다 오래되고, 오목밑은 후기형식에 속한다. 두 형식 모두 중국 내지에서 가장 먼저 출현하였는데, 편평밑은 그 상한이 얼리토우(二里頭) 2기, 오목밑은 기원전 12세기이다. 북방 양식의 다른 청동기류와는 달리 청동방울의 경우, 중국 내지가 선도적이고, 주변지역에 대한 영향이 비교적 큰 편이다.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편평밑과 오목밑 두 형식의 것이 모두 확인되지만, 씨야지야디앤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이거나 비파형동검문화(琵琶形銅劍文化)에서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다. 씨야지야디앤상층문화의 경우 중국식 청동방울은 물론 나름대로 독특한 청동방울이 발견된다. 길죽하고 투조된 몸통 바깥면에 기하학문(幾何學文)이 장식되어 있는 이른바 장형동령(長型銅鈴)이 그러한 예에 속하는데, 기원전 9∼7세기 니잉처엉(寧城)을 중심으로 하는 네이머엉구(內蒙古) 동남부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유행한 양상을 보인다.

한편 비파형동검이 유행한 지역에서는 주변지역의 양식이 통용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나마 중국 내지나 네이머엉구 동남부 등지와는 달리 거의 유행하지 못하였다. 편평밑과 오목밑의 것이 모두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지앤핑(建平) 루안지아잉즈(欒家營子) 901호 널무덤〔木棺墓〕의 장형동령, 커쭈어(喀左) 라오이에미아오(老爺廟) 움무덤〔土壙墓〕과 따리앤(大連) 러우싸앙(樓上) 돌무지무덤〔積石墓〕의 오목밑 청동방울 등이 있다. 리야오씨(遼西) 지역에서는 기원전 7세기대에 출현하여 철기시대 직전까지 공반하는 반면, 리야오도옹(遼東)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말기에 가서야 출현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외 한반도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비파형동검단계의 청동방울이 확인되고 있지 않다.

세형동검단계에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것은 크기로 보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높이가 9~14㎝ 정도의 것과 5㎝ 미만의 것이 있다. 일본에서는 제사유적(祭祀遺蹟)의 매납용(埋納用)으로 제작하였던 크기 50~70㎝의 대형청동방울이 유행하는 바, 이에 비교하여 높이 10㎝ 내외의 소형인 한국계 동종방울을 ‘소동탁(小銅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강원)

참고문헌

  • 한국 청동유물의 연구(윤무병, 백산학보 12, 1972년)
  • 비파형동검문화의 성립과 전개과정 연구(오강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3년)

동의어

동탁(銅鐸)

참조어

동령(銅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