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방울

동종방울

[ 銅鐸 ]

동종방울 각종. 高(上左) 16.1cm

동종방울 각종. 高(上左) 16.1cm

횡단면 은행 알 모양의 원통형 몸통 안에 막대기 모양의 혀가 달려 소리를 내게 한 것으로 중국 고대문헌에는 ‘령(鈴)’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이른 것으로 중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二里頭 유적 출토 예가 있는데, 마포흔(麻布痕)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옷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다소 늦은 은(殷)과 서주(西周)시대에는 말 장식인 마령(馬鈴)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발견된 동종방울은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전기에 걸쳐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며 삼국시대 고분에서 많이 출토된다. 크기로 보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높이가 9-14㎝ 정도의 것과 5㎝ 미만의 것이 있다. 일본에서는 제사유적의 매납용(埋納用)으로 제작하였던 크기 50-70㎝의 대형동종방울이 유행하는 바, 이에 비교하여 높이 10㎝ 내외의 소형인 한국계 동종방울을 ‘소동탁(小銅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종방울 겉면에는 외형(外型)과 내형(內型)의 거푸집(鎔范)을 연결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측면 양쪽과 상면 양쪽에 나 있다.

한국 청동기시대의 동종방울은 遼寧 旅大市 樓上과 함북 나진 초도(草島), 함북 북청 토성리(土城里)의 예가 있고 함남 금야읍(金野邑)에서는 거푸집도 발견되었는데, 길이가 다소 작아 7-8㎝ 내외이며, 위 아랫단에 거치문대(鋸齒文帶)가 장식되어 있다.

초기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 초기에 걸쳐 무덤에서 발견된 동종방울로는 금강유역의 대전 괴정동(槐亭洞), 부여 합송리(合松里) 등과 경주 입실리(入室里), 대구 평리동(坪里洞), 신천동(新川洞), 그리고 대동강 유역의 정백동(貞柏洞), 석암리(石巖里), 부조예군묘(夫租君墓), 운성리(雲城里)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참고문헌

  • 韓國의 靑銅器文化(國立中央博物館, 1993년)
  • 日韓交涉の考古學·彌生時代篇(小田富士雄·韓炳三編, 六興出版, 1991년)
  • 銅鐸のまつり(工樂善通, 彌生のまつり, 六興出版, 19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