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철기시대

초기철기시대

[ 初期鐵器時代 ]

한국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구분 용어로, 청동기시대에 이어서 새로이 유입된 철기문화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즉 한반도에서는 철기의 유입과 이미 정착되어 있던 발달된 청동기문화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초기철기문화에 후기 청동기문화를 포함하여 B.C. 300년부터 서력기원 전후까지를 초기철기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먼저 대동강유역에 요령지방과 판이한 한국적 세형동검(細形銅劍), 정문경식세문경(精文鏡式細文鏡), 그리고 철제무기, 농구, 공구 등이 출현함으로써 시작된다. 대동강유역의 고조선(古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도 철기문화권의 형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철기문화가 한반도 전역으로 파급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는 Ⅰ식세형동검, 정문경식세문경으로 대표되는 1기(B.C. 300~100)와 Ⅱ식세형동검, 거여구(車與具)의 부장, 세문경의 소멸, 철기생산의 본격화 시기인 2기(B.C. 100~기원전후)로 세분된다. 청동기에는 세형동검, 동꺾창(銅戈), 동투겁창(銅矛), 팔주령(八珠鈴), 기타 의기 등이 있고, 철기에는 도끼, 화살촉, 창 이외에도 괭이, 낫, 반달칼 등의 농구가 있다. 토기에는 점토띠토기(粘土帶土器),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초기철기시대의 개념에도 몇 가지 모순이 있다. 먼저 초기철기시대의 개념 속에 청동기문화가 포함되어 있다. 즉 초기철기시대의 문화에 세형동검과 점토띠토기 등을 포함하는 것은 청동기적인 요소를 가장 농후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을 초기철기시대로 분류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만약 초기철기시대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철기가 사용되는 단계로 잡는다면 한반도 북부지방에서는 이 개념이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으나 남부지방에서는 이 개념을 적용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청동기가 활발하게 사용되는 시기에는 철기의 존재가 극히 적고, 철기의 등장이 B.C. 2세기경 이후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기원전후까지를 한 시대로 설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끝으로 초기철기시대라는 명칭의 문제이다. 이 용어는 ‘철기시대 초기’에서 나온 말로서 시대의 명칭으로 부적당하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 때문에 초기철기시대를 ‘철기시대(鐵器時代)’로 부르자는 주장이 있다.

참고문헌

  • 韓國考古學에 있어서 時代區分論(崔盛洛, 亞細亞古文化, 黃龍運博士停年退任紀念論叢, 1995년)
  • 韓國 鐵器時代의 時代區分(崔夢龍, 國史館論叢 50, 1993년)
  •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