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거울

청동거울

거친무늬거울-쓰얼타이잉즈(朝陽十二台營子)(左), 쩌엉지아와즈(瀋陽鄭家窪子)(右)

거친무늬거울-쓰얼타이잉즈(朝陽十二台營子)(左), 쩌엉지아와즈(瀋陽鄭家窪子)(右)

거친잔무늬거울-아산 남성리(左), 예산 동서리(右)

거친잔무늬거울-아산 남성리(左), 예산 동서리(右)

잔무늬거울-함평 초포리(左), 화순 대곡리(右)

잔무늬거울-함평 초포리(左), 화순 대곡리(右)

원형의 뒷면에 꼭지〔瞿〕가 2∼3개 달리고 대체로 삼각톱니무늬〔三角鋸齒文〕를 기본단위로 한 기하학무늬〔幾何學文〕가 특징이다. 꼭지가 두개 이상이고, 기하학무늬가 장식된 거울이라 하여 여러꼭지거울〔多瞿鏡〕, 기하학무늬거울, 또는 여러꼭지기하학무늬거울로 불린다. 전체 크기는 대체로 7∼22㎝ 정도로서 대부분 백동질(白銅質)이며,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쳐 청동단검과 함께 한국 청동기문화의 표지유물(標識遺物)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중국 동북지방, 한반도, 일본에 걸쳐 약 90면이 발견되었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의 기원에 대해서는 오르도스(Ordos)지방에서 출토된 청동단추〔銅泡〕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 설과 중국 인싸앙(殷商)시대의 무덤에서 출토하는 한꼭지〔單瞿〕 원형청동거울에서 기원하였다고 보는 설로 나뉜다. 이러한 기하학무늬거울은 멀리 허베이성(河北省) 칭하이(靑海)에서도 출토하는 것으로 보아 그 기원이 대체로 중국 후앙허(黃河) 이북과 오르도스에 걸치는 지역에 있음은 분명하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은 무늬의 거칠고 고운 정도와 주연부(周緣部)·꼭지 모양에 따라서 거친무늬거울〔粗文鏡〕, 거친잔무늬거울〔粗細文鏡〕, 잔무늬거울〔細文鏡〕 등의 세 형식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거친무늬거울과 잔무늬거울 두 형식으로 분류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거친무늬거울은 무늬선이 거친 것으로 번개모양〔雷文〕을 이루며, 주연부와 꼭지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거친잔무늬거울은 무늬선이 다듬어지고, 주연부도 잔무늬거울과 같은 횡단면 반원형으로, 삼각톱니무늬〔三角鋸齒文〕가 별모양무늬〔星形文〕, 방사상문(放射狀文) 형식, 평행(平行) 혹은 동심원문(同心圓文) 형식으로 조합된 것이 특징이다. 꼭지는 평면 오목렌즈모양의 보다 정형화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잔무늬거울은 무늬선이 실날처럼 가늘고, 주연부 횡단면이 반듯한 반원형을 이룬다. 외(外)·중(中)·내구(內區)로 구획되면서 삼각톱니무늬를 기본 단위로 하고, 동심원문이 복잡하고 정교한 기하학무늬가 특징이다.

거친무늬거울로서 가장 오랜 형식은 중국 리야오닝성(遼寧省), 리아오허(遼河) 서쪽의 따링허(大陵河) 유역에 위치한 차오양(朝陽) 쓰얼타이잉즈(十二台營子) 유적에서 출토하였으며, 한반도의 평양, 대전 등지에서도 출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이 리야오허유역에서 기원하여 한반도로 전파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거친잔무늬거울은 중국 리야오닝성, 지린성(吉林省),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지역에 각각 출토하였다. 한반도에서도 평남과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출토하였는데, 각각 세형동검(細形銅劍) 초기 단계의 유물과 동반하였다.

잔무늬거울의 분포지역은 청천강 이남으로 내려오고, 그 이북에는 출토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일본 큐슈(九州) 지역은 물론 긴키(近畿) 지방까지 세형동검과 함께 분포한다. 이와 같은 출토상황을 종합하여 볼 때에 대체로 거친무늬거울은 비파형동검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거친잔무늬거울과 잔무늬거울은 세형동검과 함께 초기철기시대에 제작 보급되었음이 확인된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은 거푸집〔鎔范〕을 만든 다음 구리물을 부어 만드는데, 이러한 제작방식을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석제거푸집이 평남 맹산과 전남 영암에서 출토하였다고 전하는 예가 있다. 전자는 거푸집의 앞 뒤면에 거울 형틀을 만든 것으로, 거친잔무늬거울 형식에 속하는 삼각복합의 별모양무늬가 조성되었다. 영암 출토 예는 주연부와 꼭지부분만 조성되고, 무늬가 장식되지 않았다. 잔무늬거울에 해당하는 거푸집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고운 점토로 만든 1회용 거푸집으로 제작되어, 제품이 만들어진 후 파쇄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운 잔줄에 동심원문이 장식된 영암 출토 잔무늬거울 등은 밀랍(蜜蠟)에 무늬를 새기고, 고운 점토를 부어 형틀을 만든 다음, 밀랍을 녹여 낸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꼭지청동거울은 다른 청동기와 함께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주검〔屍身〕에 패용되기 보다는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다른 청동기와 함께 매납(埋納)된다. 써언양(瀋陽) 쩌엉지아와즈(鄭家窪子) 유적에서는 머리 쪽의 껴묻기〔副葬〕공간에 청동검과 말갖춤〔馬具〕이 함께 부장된 것이 확인되었고, 함평 초포리 유적에서는 세형동검과 함께 중첩하여 나무널〔木棺〕 내부의 주검 측면 공간에 부장되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 요시타게다카기(吉武高木) 유적에서도 나무널〔木棺〕 내부 주검 옆구리 쪽에 동검과 함께 부장된 것이 초포리 유적의 예와 동일하다. 매납된 상태로 발견된 예도 있는데, 특히 일본에서 더욱 그러하다. 일본 후쿠오카 소군(小郡) 약산(若山)의 집자리 유적에서는 바리모양〔鉢形〕 토기가 거꾸로 묻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잔무늬거울 두 매가 서로 포개 겹쳐 있었다.

이러한 여러꼭지거울은 오늘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울처럼 화장용(化粧用)이 아니라 신의(神意)를 받는 의기(儀器), 혹은 종교적 권위의 상징물로 이해되고 있다. 초기철기시대에 금강, 영산강 유역에서는 이형동기(異形銅器), 방울〔銅鈴〕 등의 제사도구와 함께 발견되는 바, 이들 무덤의 주인공은 종교적 권위를 갖고 제의(祭儀)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 추정된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무덤의 껴묻거리로서 무기(武器) 혹은 공구(工具)만 동반하는데, 이 무덤의 주인공은 제사를 주재하는 제사장(祭司長)의 성격을 갖지 않는 세속적인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이청규)

참고문헌

  • 동북아지역의 다뉴경과 그 부장묘(이청규, 한국상고사학보 28, 한국상고사학회, 1999년)
  • 특별전 한국의 청동기문화(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범우사, 1992년)

동의어

동경(銅鏡)

참조어

거친무늬거울, 조문경(粗文鏡), 거친잔무늬거울, 조세문경(粗細文鏡), 기하학문경(幾何學文鏡), 다뉴경(多瞿鏡), 세문경(細文鏡), 여러꼭지거울, 다구경(多瞿鏡), 잔무늬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