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포리 유적

초포리 유적

[ 咸平 草浦里 遺蹟 ]

지역 함평
유구 내부전경

유구 내부전경

출토유물 일괄 동경, 간두령, 쌍두령, 지름(동경左) 17.8cm

출토유물 일괄
동경, 간두령, 쌍두령, 지름(동경左) 17.8cm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細形銅劍), 세문경(細文鏡), 청동방울(銅鐸) 등이 다량 출토한 무덤유적으로,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에 위치한다. 유적이 위치한 지역 일대는 표고 20~30㎝가량의 평지성 구릉지대로 이 구릉은 동쪽으로 영산강의 한 지류인 해보천(海保川)과 조사천(早死川)이 합류하면서 흐르고 있고, 나주평야가 넓게 형성되었다.

이 초포리 유적은 1987년에 주민들이 마을 안길의 진입로 공사를 하다가 발견·신고된 것으로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토광(土壙)은 부식암반(腐蝕巖盤)을 파들어 간 것으로 지면으로부터 차츰 아래쪽으로 면적을 좁히면서 굴착되었는데, 현지표면에서는 길이 2.6m, 폭 0.9m의 크기에 북동~남서 방향을 장축으로 한 부정형 장방형(長方形)을 이루고 있다. 돌널(石棺) 형태의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현지표하 0.55m 깊이를 바닥으로 하여 구축하였는데, 내부의 규모는 길이 1.9m, 폭 0.55m 정도이고, 벽을 쌓은 돌이 가장 많이 남은 곳이 5단으로 바닥에서 0.55m 높이이다. 발견당시 원래 무덤구덩이(墓壙)에는 많은 돌이 채워져 있었다고 하며, 무덤구덩이 바닥에는 목판흔적이라고 추정되는 흑갈색의 부식토가 깔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여 볼 때, 초포리 무덤은 깬돌(割石)로 구축된 돌덧널무덤(石槨墓)들 중 상부에 적석(積石)이 되었을 돌무지돌덧널무덤(積石石棺墓)이거나, 아니면 토광과 널(木棺) 사이를 깬돌로 메우고, 상부에는 나무뚜껑을 하고 그 위에 적석이 되었을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일 가능성이 있다.

발굴된 부장품은 무덤구덩이의 내부바닥 출토품, 깬돌과 무덤구덩이 벽 사이의 틈에서 출토된 것, 내부 퇴적토에서 출토된 것이 있다. 첫 번째 경우로는 천하석제 식옥(天河石製飾玉) 1쌍과 검파두식(劍把頭飾)이 부착된 동검(銅劍) 2자루, 동경(銅鏡) 3점이 있다. 이 중 식옥은 귀고리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머리를 남쪽으로 두었으며, 동남벽석에 붙어서 일렬로 발견된 동검과 동경은 피장자(被葬者)의 우측 허리와 발쪽에 놓여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깬돌과 무덤구덩이 사이의 틈에서는 병부동령(柄部銅鈴)과 쌍두령(雙頭鈴)이 출토되었으며, 그 출토위치가 피장자의 머리부분 좌우이기 때문에 팔꿈치를 구부린 채 양손을 올리면 손으로 쥘 수 있는 위치이다. 내부 퇴적토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만 발견되었는데, 봉부(鋒部)가 위쪽으로 경사진 채 바닥보다 높은 위치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널 바깥의 부장품(副葬品)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발견신고품으로, 깬돌과 무덤구덩이 사이와 위에 덮었던 나무뚜껑과 봉토사이에 매납(埋納)되었다고 생각되는 청동기가 있는데, 부장유물은 총 26점으로 천하석제 식옥 2점과 숫돌 2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동제품이며, 검파두식(劍把頭飾) 1점은 철광석제(鐵鑛石製)이다. 그 중 주민들에 의해 신고된 것이 16점, 수습발굴조사시 출토된 것이 10점이다.

유물을 종류별로 보면 무기류는 세형동검 4점(이중 2점은 검파두식이 달려 있는 것), 동꺽창(銅戈) 3점, 동투겁창(銅矛) 2점, 중국식동검 1점이 있고, 공구류(工具類)로는 어깨동도끼(有肩銅斧) 1점, 동끌(銅鑿) 2점, 동새기개(銅鉈) 1점이 있으며, 의기류(儀器類)로는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 3점, 간두령(竿頭鈴) 2점, 조합식 쌍두령 1점, 쌍두령 1점, 병부동령 1점이 있고 장신구로는 천하석제 식옥 2점이 있으며 기타 유물로는 숫돌(砥石) 2점이 있다.

세형동검 4점 중 3점은 등날이 결입부(抉入部) 이하에 나 있지 않은 윤무병(尹武炳)의 Ⅰ식이고 1점은 Ⅱ식에 속한다. 그 중 2점은 검파두식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입주상의 장식이 붙어 있는 십자형이다. 세형동검의 길이는 32.7·31.3·25.8(일부 파손)·28.5㎝이다. 중국식동검 1점은 이른바 도씨검(桃氏劍)으로 불리우는 것으로 상당부분이 없어졌다. 검신(劍身)의 단면은 긴 마름모꼴에 가깝고, 자루는 두께가 얇은 볼록렌즈형으로 자루 중간에 2개의 돌대(突帶)가 형성되어 있다.

동꺾창(銅戈) 3점 중 1점은 등대에 날이 없는 형식으로 전체 길이 27.6㎝로서 봉부 길이 8㎝정도로 긴 편이다. 2점은 등대에 날이 있는 형식으로, 그 중 1점은 봉부가 잘려 나갔으며, 현재 길이는 20.5㎝이고, 나머지 1점은 길이 26㎝이다.

동투겁창(銅矛) 2점은 길이 27.9·26.1㎝로 자루 끝에 고리가 없이 돌대(突帶)가 있는 세형단봉형식(細形短鋒型式)이다. 그 중 다소 짧은 후자의 동투겁창은 모신(矛身)이 공부(銎部) 끝 돌대에까지 미치는 특이한 형식이다. 자루를 박기 위한 빈구멍도 공부끝에서 13.7㎝ 정도로 깊게 들어 가 있다. 청동도끼 1점은 유견동부(有肩銅斧)에 속하는 것으로, 전체길이 9.7㎝이다.

세문경(細文鏡) 3점 중 1점은 직경 17.8㎝로 뒷면의 무늬가 3구식으로 되어 있는데, 극세선(極細線)으로 구성되었는바, 전체적인 문양 구성이 전(傳) 논산 출토 국보경과 유사하다. 다른 1점은 직경 15.6㎝로 2구식인데, 전체적인 문양구성이 경주 입실리(入室里), 횡성 강림리(講林里) 출토경과 가깝다. 또 다른 1점은 직경 9.7㎝로 앞서의 2점보다 작으면서, 뒷면에 꼭지가 3개 달린 형식이다. 꼭지가 3개 달린 형식은 함흥 이화동(梨花洞), 금야 용산리(龍山里)에서 2점 출토되었는데, 그 중 초포리 예처럼 십자문(十字文)으로 되어 있는 것은 용산리 예 뿐이 없다. 3뉴식은 모두 직경 9㎝ 전후의 소형동경이다.

간두령 1쌍의 전체높이는 14.3·14.5㎝로서, 포탄모양의 신부(身部)와 자루를 삽입할 수 있는 통형 소켓이 연결되었으며, 그 경계에 칼코모양이 나 있다. 신부에 나 있는 4개의 절개구 사이로, 일렬로 된 음각평행단사선문(陰刻平行單斜線文)과 그 좌우에 각각 2열로 된 음각방형점선문(陰刻方形點線文)을 조합한 문양대가 세로로 길게 장식되어 있다. 조합식 쌍두령(雙頭鈴) 1쌍은 한 끝에 방울이 부착된 긴 자루 2개를 각각 구부린 뒤 ‘X’자 모양으로 엇갈리게 조합한 것이다. 길이 15㎝, 폭 11㎝로 비슷한 모양의 조합식 쌍두령은 충남 덕산과 논산 그리고 경북 상주에서 출토하였다고 전하는 예가 있다.

쌍두령 1점은 가운데가 불룩한 대모양의 양끝에 방울이 달린 것으로 막대 한가운데에 자루를 꽂을 수 있게 방형(方形) 구멍이 나 있는데, 전체 길이는 15.9㎝정도이다. 병부동령 1점은 길이 17㎝로서 곧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다소 넓어지는 병부에 큰 방울이 달린 것으로, 자루 속에는 목심이 박혀 있었다.

이처럼 함평 초포리 유적은 화순 대곡리(大谷里) 유적과 함께 전남지방에서 세형동검등의 청동무기와 함께 각종 청동방울이 출토된 보기 드문 유적이다. 대체로 청동방울은 제사장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므로, 세형동검시기에 군사적 수장(首長)과 제사장(祭司長)의 성격을 함께 갖춘 군장(君長) 혹은 족장(族長)의 실체를 연구하는 자료로 중요하다. 그 연대는 대체로 B.C. 2세기를 전후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咸坪 草浦里遺蹟(李健茂·徐聲勳, 國立光州博物館,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