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도끼

청동도끼

청동도끼(왼쪽부터 책형동부, 세장호인동부, 조인상동부, 선형동부)

청동도끼(왼쪽부터 책형동부, 세장호인동부, 조인상동부, 선형동부)

벌목을 기본적인 목적으로 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자상(刺傷)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를 말한다. 연구자에 따라 월(鉞)과 자귀〔傅〕를 청동도끼〔銅斧〕의 범주에 포괄시키기도 하나, 이들 도구는 형태와 기능이 도끼와 전혀 다른 것으로서 분명하게 구별되어져야만 한다. 월은 전투용 도끼와 기능을 같이 하기도 하나 기신 단면이 일자형으로 편평납작할 뿐만 아니라 자루맞추개가 투겁이 아닌 꺾창류의 내(內)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귀는 정면형태와 투겁에서는 도끼류와 동일하나 목재를 깎는 용도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동북아시아의 청동도끼는 벌목용과 전투용으로 대별되는데, 벌목용 도끼는 자루 맞추개가 머리부분 상단에 미관통의 투겁으로 마련되어 있는 반면, 전투용 도끼는 자루 맞추개가 머리부분 측변에 완전관통의 천공이 만들어져 있다. 이 중 전투용 도끼는 동북아시아에서 기원전 13∼11세기의 한정된 기간 동안 주로 장성연선(長城沿線)을 중심으로 한 북중국에서 유행하였다. 중국 동북지역의 경우 리야오닝성(遼寧省)의 기원전 12∼11세기로 편년되는 몇 유적에서의 출토예가 알려져 있을 뿐으로, 유행기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발견예 또한 희소하다.

동북아시아에서 벌목용 청동도끼가 출현하는 것은 기원전 15세기 전후부터인데, 중국 동북지역은 이 보다는 다소 늦어 기원전 11세기 전후에야 출현하였고, 그것도 네이머엉구(內蒙古) 동남부의 커스커터엉치(克什克騰旗) 롱토우싸안(龍頭山) 유적에서만 그러할 뿐, 나머지 지역의 경우에는 기원전 9∼8세기 대에 가서야 출현한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확인되는 청동도끼로는 크게 조인상동부(釣刃狀銅斧), 세장호인동부(細長弧刃銅斧), 책형동부(冊形銅斧), 선형동부(扇形銅斧) 등이 있는데, 이들 도끼류 중 조인상동부와 선형동부의 경우 강한 지역성을 보이고 있어 중국 동북지역의 문화지형을 분석할 때 반드시 검토되는 유물 중 하나이다. 즉, 조인상동부는 씨아지아디앤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의 표지유물로서 네이머엉구 동남부지역에서, 선형동부는 비파형동검문화(琵琶形銅劍文化)의 표지유물로서 리야오닝, 지린(吉林) 중부, 한반도에서 유행하였다. 이외 세장호인동부와 책형동부는 시베리아-몽고, 중국 내지와 관련 있는 것들이다.

중국 동북지역의 여러 청동도끼 중 한국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선형동부이다. 비파형동검이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多瞿粗文鏡〕이 여러꼭지잔무늬거울〔多瞿細文鏡〕과, 비파형청동투겁창이 세형청동투겁창과 대응되듯이, 선형동부 또한 한국 원사시대의 유견동부(有肩銅斧)와 대응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비파형동검과 함께 거푸집(鎔范)을 포함하여 출토된 바 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시기 것으로는 평북 의주 미송리(美松里) 동굴유적을 비롯해서 강릉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된 예가 있고, 세형동검 시기의 것으로는 금강유역의 아산 남성리 등지에서 출토된 바 있다. 그 거푸집은 금야군 금야읍, 부여 송국리 등지에서 출토되어 한반도에서도 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대체로 중국 동북지방의 선형동부는 길이 10㎝ 이상으로 장방형에 가깝고 투겁 부분 주변으로 삼각톱니무늬대〔三角鋸齒文帶〕가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한반도 출토 예는 금야군 금야읍 거푸집 일례를 제외하고는 무늬가 없으며, 대부분이 날과 투겁 모두 크게 곡선을 그리고, 모양이 일정한 정형성을 이루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오강원)

참고문헌

  •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이강승, 한국고고학보 6, 1979년)
  • 동북아지역 선형동부의 형식과 시공간적 양상(오강원, 강원고고학보 2, 2003년)

동의어

동부(銅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