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유적

동굴유적

[ 洞窟遺蹟 ]

두루봉 제2굴 원경

두루봉 제2굴 원경

동굴유적 복원도

동굴유적 복원도

동굴유적은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형성되어진 동굴을 인간이 주거, 묘 그 밖의 용도로 사용한 유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구석기시대의 보편적인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네안데르탈 동굴,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크로마뇽인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동굴, 중국의 북경원인이 출토된 주구점 동굴이 유명하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북한의 평안남북도의 경계와 황해도지역, 남한의 강원·충북 그리고 제주에서 확인된다.

동굴은 석회암의 갈라진 틈이나 층리면에 지하수나 빗물이 땅속으로 흘러 내려가면서 통로가 커져서 형성되어진 석회암동굴(石灰巖洞窟), 주로 바닷가의 절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해식동굴(海蝕洞窟), 그리고 강가에서 볼 수 있는 하식동굴(河蝕洞窟)이 있다.

그리고 화산이 폭발할 때 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지표를 따라 흘러 내려가면서 표면에서 차가운 공기와 닿아 응고되어 표층을 이루고 그 내부는 계속하여 낮은 곳으로 흘러가 공간을 만든다. 이때 표층이 얇아 무너지거나 용암가스의 분출구가 커지면서 입구가 형성되는 용암동굴(鎔巖洞窟)이 있다. 용암동굴에 유적이 형성된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극히 드물지만 제주도에서는 다수 확인되고 있다.

동굴주거 이용은 유물이 동굴의 입구나 입구의 앞부분, 동굴 안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범위 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당시의 생활공간은 생활하기에 쾌적한 동굴입구 부분, 입구의 앞부분, 햇빛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부분에서 이루어졌음을 가늠하게 한다. 동굴유적의 동굴내부는 항온, 항습 효과가 있어 주거로 이용하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침식작용으로 천장이나 벽의 암반이 붕락되고 바람과 유수에 의해 잔자잘과 마사토가 반입되어 유구와 유물을 덮고 다시 퇴적되어 각 시기의 유물이 거의 층서적으로 아주 양호하게 퇴적 또는 분포하고 있다.

또한 석회암동굴의 경우는 퇴적토의 대부분이 알카리성 흙이 많고, 석회수의 피복효과로 화석화를 만들어 선사시대의 기록을 양호하게 보존하고 있다. 당시 주거 이용에 있어 선후의 시기구분, 그리고 선사인들의 영양, 식량, 각 층위에서의 동·식물 상태, 기후 등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며, 체질인류학에도 많은 공헌을 한다. 이러한 구석기시대의 보편적인 동굴유적은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평야나 초원에서의 농경, 목축생활과 야외수혈주거가 보편화되면서 그 이용도가 낮아지지만, 이후에도 일시적인 피난소, 묘지, 가축사육장, 제사유적 등의 여러 용도로 이용되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조사는 1960년대 중반에 검은모루 유적을 시작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남북한을 합하여 대략 20여 개소가 확인되어 있다. 북한에서 발굴되어진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검은모루, 독제굴, 금천굴, 청청암, 해상, 승리산, 회천동, 대현동, 만달리, 다친리, 미송리, 룡곡, 굴재덕, 밀전리 등이 있다. 대부분의 유적은 구석기시대 유적이고, 평북 의주 미송리 동굴만이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보고되어 있다. 그리고 덕천 승리산 유적은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걸쳐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한에는 점말용굴, 두루봉, 상시, 금굴, 구낭굴, 어음리, 궤내기굴과 인위적으로 파고 들어가 만든 교동 유적 등이 보고되어 있다. 구석기유적이 대부분이나, 단양군 매포읍 도담리 금굴 유적인 경우는 구석기 전시기와 신석기, 청동기까지 이용되어진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춘천 교동 유적은 신석기시대에 주거로 이용되어지다 묘지로 사용되어진 유적이다. 제주도 금녕리 궤내기굴은 철기시대, 삼국시대 그리고 현대까지 사용되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동굴(홍시환·석동일, 대원사, 1997년)
  • 동북아시아의 구석기문화(문화재연구소, 제1회 문화재연구국제학술대회, 1992년)
  • 日本考古學用語事典(濟藤忠, 學生社, 1992년)
  • 덕천 승리산유적 발굴보고(사회과학원, 유적발굴보고 11,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1978년)
  • 조선고고학개요(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