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덧널무덤

돌덧널무덤

[ 石槨墓 ]

광양 용강리 4호 석관묘

광양 용강리 4호 석관묘

깬돌(割石) 또는 냇돌(川石)과 판돌(板石)을 섞어 쌓은 무덤으로 ‘할석묘(割石墓)’ 또는 ‘석곽묘(石槨墓)’라고도 한다. 돌널무덤(石棺墓)의 하나로 분류하기도 하며 청동기시대 한반도 일부지역에서 조영된 무덤형태이고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나타나는 무덤이나 주로 청동기시대의 것을 지칭하고 있다.

돌덧널무덤(石槨墓)은 해발 50m 이하의 낮은 구릉지대에 주로 분포하며 돌덧널 안에 나무로 짠 널(木棺)을 넣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덤 방이 깊고 부장유물도 다양한 편이다. 한국에서 돌덧널이 발견된 주요 유적으로는 대전(大田) 괴정동(槐亭洞), 부여(扶餘) 연화리(蓮花里), 아산(牙山) 남성리(南城里), 예산(禮山) 동서리(東西里), 서흥(瑞興) 천곡리(泉谷里), 함평(咸平) 초포리(草浦里), 화순(和順) 대곡리(大谷里) 유적 등이 있으며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遼寧 南山根, 湖頭溝 유적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요녕지역의 것은 샤자덴(夏家店)상층문화 유적으로서 한국 청동기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南山根 101호 무덤을 보면 무덤의 네 벽은 자갈돌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무덤방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좁아지는 형태이다. 바닥에 돌판을 깔고 돌판 위에 나무널을 넣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부장유물로는 청동검(靑銅劍), 장신구(裝身具) 등 청동유물이 주를 이루며 B.C. 9-8세기의 유적으로 나타났다. 湖頭溝 유적은 강돌을 이용하여 장방형(長方形) 돌덧널을 만들었고 나무널을 넣었던 흔적이 있다. 부장유물로는 비파형단검(琵琶形短劍)이 2점 나왔다.

한반도 지역에서는 대전 괴정동에서 1967년에 발견된 것이 처음이다. 풍화암반층(風化巖盤層)에 움을 파고 괴석(塊石)을 쌓아 네 벽을 만든 구조로 바닥에서 나무조각이 발견되어 나무널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부장유물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거친무늬거울(粗文鏡), 대쪽모양청동기 등이 있다. 아산 남성리 유적은 대전 괴정동 돌덧널무덤과 구조상 거의 같으며 부장유물로는 세형동검,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 거친무늬거울, 청동도끼(銅斧), 그리고 대롱옥(管玉)과 점토띠토기(粘土帶土器) 등이 있다. 함평 초포리 유적도 무덤 구조상 앞의 것과 비슷하며 돌덧널 위에 돌무지(積石)를 쌓았던 점이 다르다. 초포리 유적의 부장유물로는 세형동검, 동꺾창(銅戈), 동투겁창(銅矛), 끌 등 무기류와 간두령(竿頭鈴), 잔줄무늬거울(細文鏡) 등 의기(儀器)가 있으며 중국식 도씨검(桃氏劍)도 나왔다.

이와 같이 돌덧널무덤은 무덤구덩이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좁아지며, 돌덧널 안에 나무널을 넣었고, 청동유물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공통의 특징을 갖고 있다. 돌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세형동검 시기의 것들이 주류를 이루며 부장유물의 질과 양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당시 상류계층의 무덤인 것을 알 수 있다.

돌덧널무덤은 한반도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주 묘제의 하나로 고인돌무덤과 공존하면서 고인돌 무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소멸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청동기문화 연구(윤무병, 예경산업사, 1991년)
  • 남성리 돌널묘(국립중앙박물관, 국립박물관 고적조사보고 10, 197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