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동검

중국식동검

[ 中國式銅劍 ]

중국식동검(왼쪽부터 도씨검, 반수병동검, 편경검, 경식검, 천공경식검, 백부촌식검

중국식동검(왼쪽부터 도씨검, 반수병동검, 편경검, 경식검, 천공경식검, 백부촌식검

청동기시대에 중국 내륙에서 특별히 제작 사용된 동검류를 지칭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국학계에서도 중국식동검이란 명칭을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명칭이 한족문화권과 비한족문화권의 차별을 강조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동검 형태 또는 사용집단을 반영한 명칭으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자루의 장착방식에 따라 조립식동검(組立式銅劍)과 완성식동검(完成式銅劍) 두 부류로 대분하여 볼 수 있는데, 두 부류는 다시 자루를 맞추는 방식과 손잡이 부분의 형태를 기준으로 몇 개의 구체적인 형식으로 세분 가능하다. 조립식동검으로는 천공경식검(穿孔莖式劍)과 경식검(莖式劍) 및 편경검(扁莖劍)이 있고, 완성식동검으로는 바이푸춘식검(白浮村式劍)과 반수병동검(盤首柄銅劍) 및 이른바 ‘도씨검(桃氏劍)’이 있다.

청동기시대 중국 내륙에서는 다른 청동기류와는 달리 청동검의 출현이 비교적 늦게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중국 내륙이 단병기(短兵器)에 보병전(步兵戰)이 위주인 북방지역과는 달리 장병기(長兵器)에 전차전(戰車戰) 위주였기 때문이다. 중국 내륙에서 청동단검이 출현한 것은 기원전 11세기 허베이성(河北省) 창핑(昌平) 바이푸춘(白浮村) 나무덧널무덤〔木槨墓〕부터인데, 그나마 바이푸춘에서 출토된 동검은 장성 연선에서 유행한 이른 바 ‘북방식동검’과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중국식동검은 발생기로부터 북방지역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전형적인 중국 내륙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 기원전 11세기의 싸안씨성(陝西省) 창안(長安) 짜앙지아퍼(張家坡) 206호 나무덧널무덤 출토 동검에서도 확인된다. 이 유적에서는 시베리아∼네이머엉구(內蒙古) 지역에서 유행한 조립식동검류에 속하는 천공경식동검이 출토되었다.

중국 내륙에서 북방식동검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중국 내륙 양식의 동검은 기원전 8세기 중반 전후 싸안현(陝縣) 싸앙춘링(上村嶺) 꾸오구어묘(暠國墓)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도옹쪼우식동검(東周式銅劍)’, ‘주척검(柱脊劍)’, ‘반수병동검’이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꾸오구어묘에서 확립되는 중국 양식은 이후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기원전 5∼3세기대에는 역으로 중국 내륙과 연접하여 있는 네이머엉구 중부, 샨씨성(陜西省) 북부, 싸안씨성(山西省) 북부, 허베이성 북부, 네이머엉구 동남부, 리야오닝(遼寧) 지역에 중국식유물과 함께 넓게 확산되어 나간다. 이러한 북방계동검과의 관계와 중국 내륙 양식의 형성 및 분화과정을 기준으로 할 때, 기원전 11∼9세기의 발생기, 기원전 8세기의 형성기, 기원전 7∼6세기의 확립기, 기원전 5∼4세기의 발전기로 나눌 수 있다.

비파형동검 분포권에 중국식동검이 출현하기 시작하는 것은 기원전 4∼3세기대인데, 리야오씨(遼西)는 기원전 4세기, 리야오도옹(遼東)과 한반도는 기원전 3세기로부터 공반하기 시작하고,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링위앤(凌源) 우따오허즈(五道河子) 무덤, 창투(昌圖) 짜이지아춘(翟家村) 매납유구(埋納遺構), 따리앤(大連) 인지아춘(尹家村), 쭈앙허(庄河) 쉬지아꼬우(徐家溝) 돌덧널무덤〔石槨墓〕, 짜이닝(載寧) 꾸싸안리(孤山里) 등이 있다. (오강원)

참고문헌

  • 東周式銅劍初論(林壽晋, 考古學報 2期, 1962년)
  • 中國殷周時代の武器(林己奈夫, 京都大學 人文科學硏究所, 1972년)
  • 중국식동검(윤무병, 한국 청동기문화연구, 예경산업사,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