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끌

청동끌

목재 표면에 홈을 파거나 구멍을 뚫는데 사용하는 도구로서, 기능상 힘을 좁은 지점에 집중시켜야 하는 관계로 전체 기신이 세장한 가운데 자루 맞추개 쪽이 두툼하고 날 쪽이 좁으며 예리한 특징을 보인다. 외날〔單刃〕과 양날〔兩刃〕 두 종류의 것이 있는데, 대체로 외날로 되어 있고, 자루 맞추개는 평면 장방형, 사다리꼴형, 타원형 등 다양한 편이다. 크기는 지역을 불문하고 일정한 규격성을 보이는데, 대체로 8~15㎝ 정도이다. 자루의 장착은 청동끌〔銅鑿〕의 특성상 직병(直柄)으로만 되어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청동끌의 출현은 기원전 15∼14세기 시베리아의 안드로노프문화 단계부터인데, 기타 지역의 경우에는 지역에 따라 시기상의 편차가 심한 편이다. 중국 내지는 기원전 14세기, 네이머엉구(內蒙古) 동남부는 기원전 11세기, 리야오씨(遼西)는 기원전 9∼8세기, 리야오도옹(遼東)은 기원전 8∼7세기, 한반도는 기원전 7∼6세기에 각각 출현한다. 또한 청동끌의 출토비율에서도 지역간 편차가 심한 편인데, 시베리아, 중국 내지, 네이머엉구 동남부, 리야오씨 지역이 비교적 높은 반면, 리야오도옹 지역, 특히 한반도의 경우에는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무하다.

동북아시아의 청동끌 중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등 관련 청동기유물군과 관련이 있는 것은 리야오닝(遼寧) 지역인데, 이 지역의 청동끌은 자루 맞추개로부터 날끝에 이르기까지의 기신 형태에 따라 기신이 곡선을 이루는 쓰얼타이잉즈식(十二台營子式)과 직선에 가까운 얼따오허즈식(二道河子式) 두 개 형식으로 구분된다. 쓰얼타이잉즈식은 기원전 9∼8세기 리야오씨 지역에서 비파형동검 등과 함께 출현하여 기원전 6∼5세기까지 리야오씨 지역에서 주로 유행하였고, 얼따오허즈은 기원전 8∼7세기 리야오씨 지역에서 처음으로 출현하였으나, 주로는 기원전 6∼5세기로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리야오도옹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청동끌은 이와 같은 시·공간성과 공반양상을 고려하여 볼 때, 해당 지역의 청동기화(靑銅器化)의 정도를 가늠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화의 수위가 높은 지역에서는 예외없이 청동끌이 공반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기존의 돌끌로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으므로, 굳이 경비를 들여가면서까지 돌끌을 청동끌로 대체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오강원)

참고문헌

  •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이강승, 한국고고학보 6, 1979년)
  • 비파형동검문화의 성립과 전개과정 연구(오강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3년)

동의어

동착(銅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