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식토기

김해식토기

[ 金海式土器 ]

부산 노포동 35호분. 높이 26.0cm

부산 노포동 35호분. 높이 26.0cm

주로 한강 이남에 분포되어 있는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적갈색 및 회청색의 경질 타날문토기로서 김해 회현리 조개무지를 표지유적(標識遺蹟)으로 하는 데서 ‘김해토기’ 또는 ‘김해식토기’라고 불린다. 바탕흙은 앞 시대의 민무늬토기와는 달리 입자가 고운 찰흙을 썼으며 기본적으로 신라·가야토기의 흙과 같다. 이 토기를 제작했던 사람들은 물레를 알고 있었다고 믿어지나 실제 제작에 물레가 쓰인 흔적은 없고, 진흙 끈으로 감아올리기법을 써서 성형한 다음 돌림판 위에 놓고 목과 아가리 부분만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표면 장식에 슬립(slip)을 따로 바른 흔적은 없고 손이나 대칼 또는 조개조각 따위로 문질러서 마무리하고 있는데, 특히 조개 표면에 돌기선이 있는 고둥·고막·새조개 따위의 사용은 이 김해토기에서의 큰 특색이며, 토기 안팎 표면에 빗질한 것 같은 자국을 남기고 있다. 항아리의 경우는 예외 없이 표면 전체가 도박(陶拍)에 의해 격자문(格子文)·승석문(繩席文)이 시문되고 있다. 격자문은 나무방망이에 문살모양을 새겨서 두드린 것이고, 승석문은 꼬은 끈을 방망이에 감아 두드린 다음 그 위에 같은 간격으로 평행선을 돌려 돗자리무늬와 같이 만든 것이다.

기형으로는 납작바닥도 있으나 둥근바닥이 훨씬 많으며, 이 둥근바닥의 성행이 납작바닥 위주의 민무늬토기 전통과 대조되는 기본적인 특색의 하나라고 하겠다. 토기의 종류에는 짧은 목을 가진 항아리(短頸壺), 작은 단지, 시루, 굽다리접시(高杯), 대야 또는 쟁반형의 토기, 아가리가 수평으로 꺾인 화분형 토기가 있고, 그 가운데 항아리, 화분형토기, 굽다리접시 등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많은 토기에 쇠뿔모양(牛角形)의 손잡이가 한쪽 또는 양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김해식토기의 소성은 저화도(低火度)의 민무늬토기와는 달리 보통 900-1,000℃의 고온으로 구웠으며 이러한 고온은 야철기술(冶鐵技術)의 발달과 관련되는 지붕을 가진 가마의 사용으로써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새로운 토기는 종래의 한데가마(露天窯)에서 굴가마(登窯)·방가마(室窯)와 같은 밀폐된 가마로의 전환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산화염(酸化焰)에서 환원염(還元焰)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김해식토기는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전한대(前漢代)에 걸친 타날문 회도(灰陶)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고 여겨지며 그러한 승석문회도가 요동반도의 전국시대 말과 한나라 초기 유적에서 발견된다. 김해식토기가 발견되는 유적은 한강유역에서 가평 마장리·이곡리와 옹진군 시도 등에 널리 퍼져 있고, 낙동강유역에서는 김해·웅천·진해와 마산의 성산, 고성·양산 등의 조개무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밖에 충청도, 전라도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남한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鐵器時代-土器(金暘玉, 韓國史論 17, 國史編纂委員會, 1987년)
  •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86년)
  • 鐵器文化(金元龍, 韓國史 1, 國史編纂委員會, 1977년)
  • 韓國 鐵器時代 土器의 硏究(金暘玉, 白山學報 20, 白山學會, 197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