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날문토기

타날문토기

[ 打捺文土器 ]

철기시대에 사용되었던 토기로, 종래에는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로 불리웠으나 최근에는 김해식토기가 가지는 특징 중의 하나인 타날문이 강조되면서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로 지칭되고 있다.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는 일본학자 水野淸一 등이 김해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토기를 지칭하면서 ‘김해식회도(金海式灰陶)’라는 용어를 붙인데서 시작되었다. 그 후에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같은 성격의 토기도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라 부르게 되었다.

김해 조개무지 보고서에서는 도질유청색토기, 적색소소토기, 흑갈색소소토기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도질유청색토기는 도질에 청흑색 내지 유흑색을 띠는 ‘須惠器’이며 ‘신라소(新羅燒)’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적색소소토기는 야요이식토기(彌生式土器)와 유사하고 도질유청색토기와 공통점이 많으며, 흑갈색소소토기는 다른 토기에 비해 조악(粗惡)하며 원저(圓底)에 소형토기와 빗질한 것이 많다고 한다.

榧本杜人은 김해 조개무지 토기를 선사토기(先史土器), 원시신라소(原始新羅燒), 신라소(新羅燒)로 나누고 철기와 골각기가 결합된 중심적인 토기는 원시신라소로서 적색소소(赤色素燒), 도질토기(陶質土器), 김해식회도(金海式灰陶)로 세분하였다.

이들 토기를 재검토한 김원용은 김해식타날문토기, 적갈색김해식찰문토기, 적갈색김해식무문토기, 흑도, 청회색신라토기 등 5종으로 분류하였다. 김해식타날문토기는 철기시대의 표지적 토기로 종래의 무문토기와 달리 석립이 섞이지 않은 정선된 점토로 도차(陶車)를 써서 성형하였고, 표면에는 격자문(格字文) 등의 타날문(打捺文)이 있다. 기형에는 입바라진둥근항아리, 시루 등과 쇠뿔모양손잡이도 있고, 색상은 회청색과 적갈색이 있는데 세부적으로 회청색승문토기, 회청색격문토기, 회청색유사승문토기, 적갈색유사승문토기 등으로 나누었다.

적갈색김해식찰문토기는 태토에 아주 작은 석립(石粒)이 섞인 것이며, 제작할 때에는 도차를 썼다는 증거가 없고, 색상은 적갈색, 백갈색, 흑갈색 등이 있다. 기형은 입이 바라진 납작바닥항아리 또는 화분형이고 쇠뿔모양손잡이가 달리기도 하는데, 토기의 내외표면에 목판 또는 대나무로 문지른 밀집세선찰과문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적갈색김해식무문토기는 석립이 섞이지 않은 정선된 흙을 태토로 사용하였고, 도차 또는 손으로 성형하였다. 색상은 적갈색, 백갈색 등이 있고, 모두 경질이다. 기형은 외경직경에 둥근귀(球形耳)가 달린 단지, 입이 바라지고 납작바닥으로 된 화분형 토기 및 신라식의 굽다리접시 등이 있는데 찰문토기가 붉은간토기(紅陶)의 영향을 받아 변화·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은간토기는 청회색유문도에 시문을 하지 않고 표면을 검은색으로 만든 것인데 청동기시대의 검은간토기(黑陶)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청회색신라토기는 완전한 신라식 석기질로 부딪치면 금속성 소리가 나고 기형으로는 굽다리접시가 주인데 김해기의 후기에 발생 삼국시대의 토기로 계승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하여 김정학은 김해 조개무지에는 조개무지유적과 묘지유적이 있어 연대상으로 서로 다르며, 김해 조개무지의 발굴면적이 적기 때문에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웅천 조개무지를 표지적(標識的) 유적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 대신에 ‘웅천식토기(熊川式土器)’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여기에서는 적갈색연질토기, 회청색경질토기, 회백도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적갈색연질토기는 색상이 황토색, 회황색 또는 적갈색을 나타내고, 조질무문토기처럼 석영등 사립이 많이 섞이지 않은 정선된 태토에 일부는 도차 또는 회전판을 사용한 듯하다. 기형에는 소형 입큰뾰족밑토기, 굽다리접시, 컵형토기, 시루 등과 쇠뿔모양손잡이도 있다. 회청색경질토기는 색상이 회색, 회흑색, 회청색, 회갈색 등이며 대부분 도차를 사용하였다. 기형에는 소형 입큰뾰족밑토기와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굽다리항아리, 목긴항아리, 컵형토기, 단지, 시루, 항아리 등 다양하다. 회백도는 대체로 정선된 흙을 사용하였으나 일부 가는 모래도 섞인 것이 있으며, 색상은 백색, 또는 회백색 등이 있다. 저화도에 구운 연질의 토기이며 기형에는 단지, 항아리 등이 있다.

결국 김해식토기란 김해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토기 중에서 회청색 혹은 적갈색의 타날문이 있는 경질토기를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소위 ‘와질토기론(瓦質土器論)’이 등장되면서 김해식토기 중의 회청색경질토기는 도질토기로 고분기의 토기임이 주장되면서 점차 지명에 의한 토기명칭인 ‘김해식토기’라는 용어가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명칭으로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에 이 시기 토기의 대표적인 특징인 타날문을 지칭하는 의미에서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로 불려졌다. 타날문토기가 처음 붙여진 것은 해남 군곡리 조개무지 발굴보고서로 여기에서는 철기시대 토기를 크게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타날문토기 속에서 색상이나 태토에 따라 회색연질토기, 흑색연질토기, 적갈색연질토기, 회청색경질토기 등 다양하게 세분되고 있다.

여기에서 타날기법의 등장이 언제인지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춘천 중도 집자리에서는 경질무문토기와 함께 타날문토기가 등장하며 그 연대를 2세기로 보고 있으나, 중부지역의 다른 유적에서는 기원전후로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남부지역의 김해 지내동 독널무덤에서는 경질무문토기와 함께 타날문의 적갈색연질독이 발견되어 적어도 1세기경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고식 와질토기로 분류되는 것 중에도 이미 타날문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타날문이 등장하는 것도 1세기경으로 볼 수 있겠다. 따라서 타날문토기는 한반도 중·남부지역에서 기원전후에는 등장하였을 것으로 본다.

결국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는 종래 ‘김해식토기’를 대신하여 사용되는 토기 명칭이며, 경질무문토기에 이어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이것은 새로운 토기제조 기술, 즉 도박(陶拍)에 의한 타날문의 시문 이외에도 회전판의 사용 및 굴가마(登窯)의 채용 등에 의해 제작된 토기이다.

참고문헌

  • 新羅古墳硏究(崔秉鉉, 一志社, 1991년)
  • 海南 郡谷里貝塚 1(崔盛洛, 木浦大博物館, 1987년)
  •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86년)
  • 韓半島 鐵器時代 土器의 硏究(金暘玉, 白山學報 20, 白山學會, 1976년)
  • 熊川貝塚硏究(金廷鶴, 亞細亞硏究, 高大亞細亞問題硏究所, 1967년)
  • 新羅土器의 硏究(金元龍, 乙酉文化社, 19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