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받침

그릇받침

[ 器臺 ]

1. 화로모양그릇받침(김해 대성동 2호분) 2. 바리모양그릇받침(김해 대성동 1호분) 3.원통모양그릇받침 대형(합천 옥전 M4호분) 4. 원통모양그릇받침 중형(합천 봉계리 109호분) 5. 원통모양그릇받침 소형(김해 양동리 78호) 6. 고리모양그릇받침(고령 지산동 33호분)

1. 화로모양그릇받침(김해 대성동 2호분)
2. 바리모양그릇받침(김해 대성동 1호분)
3.원통모양그릇받침 대형(합천 옥전 M4호분)
4. 원통모양그릇받침 중형(합천 봉계리 109호분)
5. 원통모양그릇받침 소형(김해 양동리 78호)
6. 고리모양그릇받침(고령 지산동 33호분)

한국 고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토기의 일종으로 바닥이 둥근 그릇인 항아리류를 받치기 위해 만든 것을 말한다. 그릇받침은 대략 밑이 둥근 항아리가 토기의 중요한 종류로 만들어지는 원삼국시대 초기부터 제작이 성행했을 가능성이 크나 실물로 확인되는 것은 드물다.

단지 해남(海南) 군곡리(郡谷里) 조개무지에서 똬리 모양의 그릇받침이 출토되었고 경산 임당 A-Ⅰ-135호묘에서는 쇠뿔모양손잡이단지를 얹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와질토기로 제작된 다리와 그릇을 받치는 수부(受部)를 따로 제작하여 붙인 그릇받침이 발견되어 이 시기의 그릇받침 형태를 짐작하게 해 줄 뿐이다.

이 외 원삼국시대의 널무덤에서 출토되는 주머니단지를 고리모양의 다리(臺脚)를 따로 제작하여 붙인 것들도 더러 출토되고 있어 앞으로 이 시기에 있어 다른 형태의 그릇받침들이 조사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원삼국시대 말기, 단단한 경질의 소위 도질토기가 발생하는 무렵부터는 납작토기가 주로 사용된 고구려지역을 제외한 백제, 신라, 가야 지역에서 다양한 종류의 그릇받침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그릇받침은 요즘의 화로와 비슷한 모양의 화로모양그릇받침(爐形器臺), 굽다리접시를 크게 확대한 모양의 바리모양그릇받침(鉢形器臺), 긴 원통을 세워둔 모양의 원통모양그릇받침(筒形器臺), 둥근 고리 모양의 고리모양그릇받침(環形器臺)으로 나누어지며, 원통모양그릇받침은 대형, 중형, 소형으로 구분된다.

화로모양그릇받침은 그릇을 받치는 수부(受部)와 다리(臺脚)로 구성된 것으로 원삼국시대 후기 덧널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 입이 넓게 벌어지는 화로모양토기를 본받아 제작된 것이다. 백제의 영역에서 조사된 것도 몇 점 있으나 주로 신라와 가야의 영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부산과 김해지역에서는 이것이 발달하여 나중에는 수부의 양쪽에 손잡이가 달리고 입이 곧게 올라가는 것이 나타난다. 이 화로모양그릇받침은 5세기를 전후해서 바리모양그릇받침으로 완전히 대체되어 사라진다.

바리모양그릇받침 역시 수부와 다리로 구성되었는데, 화로모양그릇받침보다는 약간 늦게 이를 이어 받아 제작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 전(全)기간 동안 백제, 신라, 가야영역에서 유행한 종류이다. 지역에 따라 형태가 다르며, 시기에 따라서도 변화하여 5세기 이후에는 지역마다의 정형화된 양식을 갖게 된다. 백제의 것은 수부에 비해서 다리의 상부가 좁고 긴 특징이 있고 신라의 것은 깊은 수부를 가진 것이 지속되나 가야의 것은 수부의 깊이가 얕아지는 경향이 있다. 가야지역의 것들은 또 각 지역마다 독특한 형태를 가지게 되는데 김해를 중심으로 한 지역, 고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 함안을 중심으로 한 지역, 고령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형태에서 차이가 있다. 나중에 신라에서는 이것을 아주 크게 만들고 그 다리를 떼어내 솥뚜껑으로 활용한 예가 많이 발견된다.

원통모양그릇받침은 수부, 몸통, 다리로 구성되었고 몸통의 위에 공모양의 돌출부를 두어 수부와 몸체의 상부를 합해 보면 입넓은 항아리 모양을 한 것이 있다. 대형의 경우는 몸통에 띠를 덧붙여 수식하기도 하며 토우를 장식한 것도 있다. 역시 백제, 신라, 가야 영역 모두에서 확인되고 있다. 영남지방에서는 바리모양그릇받침과 같이 출현한 것으로 보이나 크게 유행하는 것은 5세기 이후이다. 처음에는 입큰잔을 얹기 위한 소형이 많이 만들어지나 차츰 없어지고 대가야 영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5세기 이후 중형이 유행한다. 대형은 부산, 김해지역에서 일찍이 출발하여 각지에서 삼국시대 전(全)기간 동안 유행하는데 바리모양과 같이 정치집단마다 독특한 형태로 제작하여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백제의 것은 한성기(漢城期)에는 굴뚝모양의 몸체에 넓은 판상의 돌대를 등간격으로 여러 개 돌린 것이 나중에는 몸통과 다리에 비해 특히 작은 수부를 가지고 있으며, 몸체의 상단에 둥근 돌출부를 가졌고 다리가 유난히 커 장고를 절반으로 자른 모양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라의 것은 몸체에 둥근 돌출부를 두지 않았고 다리가 몸통에서 그대로 연결되며 넓어져 몸통과 다리를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적 특징을 가졌다. 가야지역의 것은 몸통과 다리가 분명히 구분되게 다리가 복발형(覆鉢形)이며 몸체의 상위에 둥근 돌출부를 가진 특징이 있다. 같은 가야지역의 것들도 그 세부적인 형태에 따라 금관가야형식, 대가야형식, 소가야형식 등으로 구분된다.

고리모양그릇받침은 소형의 원통모양그릇받침과 같이 영남지방에서 출현하여 나중에는 대가야영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만 특히 유행한 것이다.

그릇받침 가운데 화로모양과 바리모양의 경우 넓고 깊은 수부를 가지고 있어 일반용기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나 원통모양과 고리모양은 그릇을 받치는 용도 이외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 그릇받침은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공주 정지산 빈소유적(殯所遺蹟), 대가야지역의 여러 묘사유구(墓祀遺構) 등의 의례유구나 무덤 주위에 돌린 도랑(周溝), 무덤의 내부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특히 대형의 원통모양그릇받침은 무덤의 특정지점이나 돋보이는 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점등으로 미루어 의례용으로 제작된 것을 알려주며, 5세기 이후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는 대형분에서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특정신분을 나타내는 토기로 보는 경우도 있다.

참고문헌

  • 특별전 가야의 그릇받침(국립김해박물관,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