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이 만든 야광

방사능이 만든 야광

주제 화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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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눈 꼭 감으세요.”

“알았다. 알았어.”

7살 난 손녀딸이 제 방으로 나를 끌어간다. 방안으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이내 문 닫는 소리.

“이제 눈 뜨세요.”

캄캄한 방안이 우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손녀는 보고 또 봐도 마냥 신기한지 천정에 별자리 모양으로 붙여놓은 야광스티커를 보며 깡충깡충 뛰어 다녔다. 푸르스름한 야광 스티커의 빛이 서서히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두운 곳에서 시계를 볼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구만, 도깨비불 같아. 정말 사람이 못 만드는 게 없다니까.”

옹기 종기 모인 사람들이 새 시계를 사서 찬 사람을 에워싸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양 손을 모아 시계를 감싸고 살며시 들여다보면 시계 바늘이 푸른 빛을 뿜었다.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구경만으로도 뿌듯하고, 야광 시계를 가진 사람이 부럽다 못해 신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대략 1930년 무렵이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또렷하게 알 수 있는 야광시계. 하지만 오랜 시간 발광을 지속하기 위해서 야광 표면에 라듐1)을 입혔다. 라듐의 방사능이 야광을 오랫동안 지속시키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해악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야광시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는데. 다들 오래 지나지 않아 시계를 다 내다버리고, 혐오품으로 여기게 됐지.’

시계판에 라듐 도색 일을 하던 사람들이 원인불명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을 일이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영향이지만, 폐기 처리할 때 발생되는 방사능은 심각한 문제였다. 야광에 대한 환호와 멸시는 양쪽 모두 극단적인 과장이었겠지만, 그것은 새로운 발견이 항상 거쳐가는 길이기도 했다.

시계는 물론 군사용품, 도시 곳곳의 교통 표지, 계기판, 야간 작업자에 쓰이는 각종 비품, 액세서리까지 야광이 쓰이는 곳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 야광들이 모두 방사능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무서워서 살 수가 없을 게다.

물론 지금도 야광 물질에 있어서 방사선의 자극은 계속 사용되고 있다. 야광, 그 중에서 계기판이나 시계에 쓰이는 것은 인광이라고 한다. 인광은 에너지를 받아 들뜬 전자가 에너지원이 사라져도 에너지를 즉각 방출하지 않고 머금고 있다 서서히 방출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런 성질을 가진 인광체에 방사성 물질을 함유 시키면 효과가 더욱 커진다. 방사성 원소는 서서히 핵이 붕괴되면 사방으로 에너지파, 즉 방사선을 방출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야광 도료에 미량의 라듐을 섞으면 방사선의 자극에 의해 빛이 장기간 유지된다. 최근에는 라듐이나 스트론튬 90 등의 방사성 원소를 첨가해 빛을 쬐지 않아도 발광하는 제품이 나오고 있다.

그간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지금 야광물질은 방사능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 것도 있고, 포함한다 해도 아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손녀 딸이 방안에 야광 스티커로 만든 별을 붙이고 마음껏 뛰어 놀아도 크게 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야광은 그렇게 흔하디 흔한 물질이 되어 버렸다. 돌아보면 멀지 않은 시간, 야광이 생활 속에 본격적으로 사용된 지는 고작 50년 정도인데 말이다.

”할아버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반짝이는 불이 하늘을 날아 다녔단다.”

“스티커가 날아다녀요?”

“아니, 자기 꼬리에서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벌레가 있지. 이름은 반딧불이란다.”

“벌레 몸 속에 스위치가 있나요? 어떻게 불이 켜져요?”

“글쎄다. 정말 신기한 일이지. 반짝이지만 뜨겁지는 않고, 전기가 없어도 빛을 내는 것이 마냥 신기했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냈단다.”

“와, 진짜 신기하겠다. 할아버지 우리 반딧불이 보러 가요!”

야광 별을 마냥 신기해 하는 손녀에게 청정 지역의 밤을 수놓는 반딧불을 꼭 보여줘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과학향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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