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려운 자동차

내겐 너무 어려운 자동차

주제 기계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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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사이에 내린 눈은 아침의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가면서 아파트 단지를 비롯한 모든 도로를 빙판길로 만들어 버렸다. “꽁꽁” 얼어버린 눈길에서 미끄러질 새라 김 대리는 조심스레 차를 몰고 나왔고, 평소보다 철저하게 방어운전을 했더니 아무 탈 없이 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방심이 화를 부르고 말았다. 회사 바로 앞 횡단보도 앞에서 접촉사고가 난 것이다. 신호에 대기하고 있는 앞 차와의 일정 거리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평소와 달리 자동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김 대리의 자동차가 서야 할 지점을 지나 버리고 만 것이다. 우울한 기분으로 출근한 김 대리는 이 대리와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의 일에 대해 하소연 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던 이 대리는 물었다.

이 대리 : 꽤 많이 놀랐겠네! 그런데 자네 차에는 ABS가 장착되어 있지 않나?

김 대리 : ABS? 글쎄? 자동차를 살 때 추가 옵션 장치에 이런 저런 약자들이 많았지만 내가 뭘 알아야지. 그런 것들이 몇 만원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전에 차를 몰 때도 그런 것 없이도 별 탈 없이 운전이 가능했었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샀는걸? 신문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ABS라는 단어는 들어봤는데 도통 뭔지 알아야지.

이 대리 : ABS가 Anti-lock Brake System의 약자라는 사실만 알면 이론은 간단해. 브레이크의 원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잡음으로써 바퀴와 도로 사이의 마찰력을 크게 하여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거야. 그런데 자동차가 빙판이나 미끄러운 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자동차는 정지하지 않고, 관성에 의해 미끄러지게(Sliding) 돼. 영화에서 보면 하얀 연기를 내면서 도로에 스키드 마크를 남기고 미끄러지는 경우를 보지 않나?

김 대리 : 그래, 종종 본 것 같아.

이 대리 : 그런데 미끄럼 마찰력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면, 자동차의 바퀴를 멈추게 해야 하는 정지 마찰력이 점점 작아져서 제동거리가 훨씬 길어지게 돼. 즉, 오늘 출근 길의 자네처럼 운전자가 멈추고자 하는 선을 넘어서게 되어 안전 사고가 발생하지.

김 대리 : 그렇군. 그렇다면 이런 경우 해결 방안은 없나?

이 대리 : 자동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순간적으로 놓은 후 다시 밟기를 반복하면 돼.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인 운전자는 위험에 처할 경우 이런 숙련의 운전 실력이 나올 수 없다는 거야. 평상시에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제아무리 빨라야 1초에 한두 번 이상 연속해서 밟기 힘들거든. 그래서 ABS를 장착하는 거야. ABS는 이것을 전기적인 힘으로 제어해 주거든.

김 대리 : 아하, 이제야 ABS에 대해 감이 오는군. 결국 ABS는 1초에 여러 번 브레이크를 잡았다가 놓았다가 해주는 장치라는 얘기군.

이 대리 : 그렇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고 네 바퀴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각 바퀴의 속도가 균형을 이루도록 바퀴를 잡았다 놓았다 하는 펌핑을 해주는 거야. 더욱이 한 쪽 바퀴만 미끄러지면 한 쪽 방향으로 틀어져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 바퀴만 펌핑해서 방향이 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ABS는 이와 같은 펌핑을 1초에 10차례 이상 하여 조종력을 잃지 않도록 함으로써 제동거리를 짧게 할 수 있지.

이 때, 옆에서 찬찬히 듣고 있던 박 부장님께서 한 마디 거드신다.

박 부장 : 이 대리, 자네 많이 알고 있군. 나도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자네 얘길 듣고 나니 이제 좀 정확하게 알 것 같아. 그런데, 요즈음은 ABS외에도 EBD나 TCS라는 것도 있지 않나?

이 대리 : EBD(Electronic Brake force Distribution)는 ABS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보면 됩니다. 자동차가 멈출 때는 앞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많은 하중이 앞 부분에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네 바퀴의 균형을 맞춘다고 각 바퀴에 동일한 제동력을 설정하면 앞 부분보다 적은 하중이 걸리는 뒷바퀴는 보다 가벼워 미끄러지기 쉽게 됩니다. 또 사람이나 짐을 많이 실었을 때에는 각 상황마다 무게 중심이 달라지는데도 ABS에 의해 제동력을 똑같이 분배한다면 효율적인 제동이라고 하기 어렵겠죠. 이를 대비해서 EBD 시스템은, 상황에 따라 앞 · 뒤 바퀴에 적절히 제동력을 분배하는 역할을 합니다.

박 부장 : 역시, 이 대리야. 영어 약자만 들었을 때는 무척 어려웠지만 듣고 보니 참 쉽군. 그렇다면 TCS는 뭔가?

이 대리 : TCS는 Traction Control System의 약자인데, 브레이크 보다 상위 개념을 제어하는 장치입니다. 즉, 연소를 하기 위해 필요한 공기의 양을 줄이거나 연료 분사량을 줄임으로써 엔진 출력을 떨어뜨려 바퀴의 접지력을 크게 하는 것입니다. 즉, ABS 또는 EBD의 경우 급 제동 시 펌핑으로 타이어를 잡음으로써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달리 TCS는 엔진 출력을 조절하여 바퀴의 구동력을 감소시켜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박 부장 : TCS는 ABS나 EBD와는 좀 다른 시스템이군. 그렇다면 이 외에 다른 장치들은 없나?

이 대리 : 이 외에도 1990년대 중반 BOSCH에서 처음 개발된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라는, 우리 말로 ‘차량 자세 제어 장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옆에서 숨죽여 듣고만 있던 김 대리가 한 마디 거든다.

김 대리 : 그래? 그건 또 뭔가?

이 대리 : 졸음 운전이나 도로 상에 갑작스럽게 보행자가 나타나 핸들을 급작스럽게 틀면 고속으로 주행하던 자동차는 미끄러지거나 심할 경우 전복 사고의 위험까지 있지. 이를 대비해 ESP는 지금까지 운전자의 운전 상태를 프로그램화하여 기억하고 있다가 핸들을 크게 틀 경우 위험 상태로 간주하여, 핸들을 돌린 다른 방향 쪽의 두 바퀴에 스스로 제동력을 가해 안정적인 자세를 잡도록 해주는 거야.

박 부장 : 그것 참, 신기한 기술이군. 그럼 ESP는 이처럼 위험한 순간에만 사용되는 건가?

이 대리 : 아닙니다. 제동 시 뿐만 아니라 평소 급회전 길에서도 사용이 되는데, 운전자가 굳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자동차가 알아서 네 바퀴의 브레이크 압력을 각각 조절해 안정된 주행을 하면서 코너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박 부장 : 오늘 이 대리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군. 정말 고맙네. 하지만 이와 같은 부가적인 제동 장치보다 우선 시 되어야 할 것은 자네들의 방어 운전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 특히 김 대리는 오늘 아침에 톡톡히 경험했으니까 잘 알겠지. 허험! 수강료 내는 셈치고 오늘 점심은 내가 사도록 하지.

  • 과학향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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