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우면 물을 뿌려라

추우면 물을 뿌려라

이글루

주제 건설/교통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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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 만일 알래스카나 그린란드 같은 극지방을 여행하다 조난을 당했다면? 눈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견딜 수 없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에스키모라면 대단한 장비 없이도 뚝딱 거처를 만들고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이글루를 지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글루는 캐나다, 그린란드, 알래스카, 시베리아 등 추운 지방의 에스키모(이뉴잇족)가 짓는 얼음 집을 말한다. 원래는 목재, 석재, 가죽 등으로 만든 다양한 집을 모두 뜻하는 말이었는데, 얼음 집이 유명해져 고유 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이글루는 눈과 얼음으로 만드는 집이다.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눈덩이를 폭 50~60cm 길이의 벽돌모양으로 잘라 둥근 지붕 모양이 되게 쌓아 올린다. 눈 벽돌을 쌓아 집 모양이 완성되면 문을 닫고 램프를 켜거나 가벼운 난방을 해 온도를 높인다. 실내 온도가 올라가면 눈 벽돌은 녹아 내리는데, 천정이 둥근 원형을 띄고 있기 때문에 녹은 눈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벽을 타고 흐르게 된다. 잠시 뒤 난방을 끄고 문을 열어 외부의 찬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게 하면 녹아 내리던 눈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눈 벽돌들을 강력하게 접착 시키게 된다.

이글루는 시멘트도 나사도 필요 없다. 눈과 눈 칼, 영하 30~40도의 차가운 공기면 충분하다. 지름 5m의 이글루를 짓는데 2시간 가량이면 충분하다니 경제적인 주택이라고 할만하다. 이글루가 튼튼하게 지어졌다고 해도, 짓는데 쓴 재료처럼 얼음장 같이 차다면 소용없는 일. 얼음 집 안은 과연 따뜻할까? 별다른 난방을 않아도 이글루 안은 영상 5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한다. 5도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뜻하다고는 할 수 없는 온도지만, 밖의 날씨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얼음으로 지은 집 내부 온도로는 놀랄만하다.

이글루 안을 훈훈하게 만드는 것 역시 눈의 힘이다. 눈 알갱이는 공기를 많이 지니고 있어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보리 농사가 풍년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눈이 덮인 밭에서는 보리 싹이 눈 아래서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겨울 보리밭을 덮고 있는 눈과 마찬가지로 이글루는 응집된 눈 이불인 셈이다.

또한 추운 날이면 에스키모들은 이글루에 물을 뿌린다고 한다. 물을 뿌리면 단번에 얼어버리는 날씨니 더 추워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얼음은 녹을 때 주위의 열을 흡수한다. 음료수를 얼음물 속에 담가두면 얼음은 녹으면서 음료수는 차가워지는데 이는 얼음이 녹으면서 음료수의 열을 흡수하기 때문인 것이다. 물이 얼 때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자체의 열을 내보내는 발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물이 어는 동안 주위의 온도는 오히려 따뜻해진다. 겨울철 호숫가에 있는 마을은 다른 곳보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호수가 얼면서 발생하는 열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추운 겨울날 이글루에 물을 뿌려 얼어붙게 만들면 실내는 더 따뜻해지는 것이다.

장작불을 활활 때면 튼튼하게 지어진 이글루라도 결국 녹아 내릴 수 밖에 없겠지만, 이글루는 밖의 날씨와 조화를 이뤄가며 한기를 피할 수 있는 환상의 공간이다. 밖의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안은 더 따뜻해지는 얼음 집. 이글루에는 혹한의 날씨 속에서 그 자연이 낳은 산물을 이용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다. 이글루는 원래도 거주지가 아니라 사냥 등을 나왔을 때 쓰는 임시 거처였지만, 최근에는 관광 목적 외에는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겨울이면 유명 스키장이나 모 기관에서 이글루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관심 있는 독자분들은 이런 행사에 참여해 체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과학향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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