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궁가

수궁가

[ 水宮歌 ]

정의 및 이칭

〈수궁가(水宮歌)〉는 별주부가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를 속여 용궁으로 데려오지만, 토끼가 기지를 발휘해 육지로 살아 나온다는 내용의 현전 판소리 작품이다. 〈토타령(兎打令)〉, 〈토끼타령〉, 〈토별가(兎鼈歌)〉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래 및 역사

〈수궁가〉의 대표적인 근원설화는 『삼국사기』 권41 「열전」 「김유신」 조 소재의 〈구토지설(龜兎之說)〉이다. 그 배경과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백제의 원수를 갚을 목적으로 고구려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갔던 김춘추는 보장왕으로부터 죽령(竹嶺) 서북지방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김춘추가 이를 거절하는 뜻을 밝히자, 보장왕은 그를 옥에 가둔다. 목숨이 위태롭게 된 김춘추는 고구려로 가는 길에 두사지(頭斯支)에게 받았던 청포(靑布) 300보(步)를 보장왕의 신하인 선도해(先道解)에게 몰래 뇌물로 보낸다. 그러자 선도해가 옥중으로 김춘추를 찾아와 술을 마시면서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구토지설〉이다.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병들어 앓았는데,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고 했다. 이때 한 거북이가 용왕에게 자신이 토끼의 간을 구해오겠다며 육지로 올라갔다. 토끼를 만난 거북이는 만일 자신을 따라 용궁으로 가면 근심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했고, 토끼는 그 말에 넘어가 거북을 따라 나섰다. 거북은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쯤 가다가, 용왕의 딸을 살리기 위한 약으로 토끼의 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에 토끼는 자신이 본래 신명(神明)의 후예인데, 요새 마음에 근심이 생긴 까닭에 간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두었으니 다시 그 간을 가지러 가자고 거짓말을 했다. 그 말에 속은 거북은 도로 토끼를 업고 돌아와 육지에 내려줬다. 그러자 토끼는 어떻게 짐승이 간 없이 살 수 있겠느냐고 거북을 조롱하며 풀숲으로 도망가 버렸고, 거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선도해가 들려준 〈구토지설〉에는 김춘추에게 넌지시 탈출을 권하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설화는 인도의 쟈타카 57 〈원왕본생(猿王本生)〉·쟈타카 208 〈악본생(鰐本生)〉·쟈타카 342 〈원본생(猿本生)〉, 그리고 『판차탄트라』·『가타사리트사가라』·『마하바스투』에 수록된 불교 본생설화(Jataka)에 근간을 두고 있다. 본생설화란 인도에 전해 내려온 전설이나 민담의 주인공을 보살로 바꾸고, 내용을 불교적인 것으로 개작한 석가의 전생 수행담으로, 이후 『육도집경(六度集經)』·『생경(生經)』·『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등 중국의 한역 불경에 불전설화(佛典說話)로 수용되었으며,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구토지설〉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인도의 본생설화를 종교적으로 수용한 중국의 불전설화가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구토지설〉을 성립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내용상의 유사성으로 보아 〈구토지설〉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 〈수궁가〉를 발생시키는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시기적으로 〈구토지설〉과 〈수궁가〉 사이에 상당한 공백이 있는 만큼 그 구체적인 과정을 밝히기는 어렵다.

설화적 단계의 이야기가 판소리 〈수궁가〉로 정착하는 과정에는 〈구토지설〉 외에 다른 여러 삽입설화들의 영향도 있었다. 우선 '해중(海中)' 정도로만 제시되었던 배경 공간이 '용궁'이라는 독자적인 이계(異界)로 구체화된 데에는 〈용궁설화〉의 역할이 컸다. 또 명나라 구우(瞿佑)가 지은 『전등신화(剪燈新話)』 중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과 〈용당영회록(龍堂靈會錄)〉의 내용 일부가 〈수궁가〉에 거의 그대로 옮겨진 부분도 확인된다. 배경 공간의 연호와 간지(干支), 용왕과 궁전의 이름, '별주부'라는 이름, 주인공이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에 다녀온다는 구도나 병든 용왕이 신하들의 천거로 명의들을 불러오고, 그들이 담론을 벌여 명약(名藥)을 지시한다는 설정 등이 그러하다. 짐승들이 상좌다툼을 벌이는 대목은 〈쟁장설화(爭長說話)〉에서 차용한 것이며, 결말부에서 토끼가 산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물 위기와 독수리 위기를 겪는 대목은 19세기 중엽의 문헌 설화집인 『기문(奇文)』에 수록된 〈교토탈화설화(狡兎脫禍說話)〉를 수용한 것이다.

〈수궁가〉는 17세기 말-18세기 초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말까지 〈수궁가〉와 관련한 문헌적인 확증이나 창자에 대한 보고가 없어 단언할 수는 없으나, 초기의 〈수궁가〉는 토끼의 지략담을 노래하는 단순하고 골계적인 판소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이 〈가사 춘향가 이백구(歌詞春香歌二百句)〉를 남겼던 18세기 중엽 무렵, 〈수궁가〉도 〈춘향가〉와 함께 판소리 작품으로서 일정한 형태를 갖추었을 것이다.

〈수궁가〉 및 〈수궁가〉를 불렀던 창자에 대한 기록은 19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순조 때의 인물인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따르면, 창우 또는 창부라 불리는 사람들이 〈춘향 타령〉, 〈토타령〉, 〈화용도 타령〉, 〈매화 타령〉 등을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수궁가〉가 초기에 〈토타령〉 즉 〈토끼타령〉이라고 불렸으며, 제명이 〈토끼타령〉이라는 점으로부터 당시의 〈수궁가〉가 토끼 중심의 서사로 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궁가〉에 능했던 송흥록(宋興祿)과 염계달(廉季達)은 전기 팔명창으로, 고수관(高壽寬, 1764-?), 모흥갑(牟興甲)과 함께 '고송염모(高宋廉牟)'로 칭송되었던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었다. 송흥록은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을 잘 불렀고, 염계달은 '토끼 욕 사설'을 더늠으로 남겼는데, 두 대목 모두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수궁가〉의 음악과 사설은 한층 세련되고 확충된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수궁가〉를 장기로 하는 명창들도 더 많아졌다. 양반 및 중인층의 판소리 향유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수궁가〉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다. 송만재(宋晩載, 1788-1851)와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수궁가〉에 대한 관극시를 남겼으며,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 이전까지 불리던 〈수궁가〉의 사설을 개작해 〈토별가〉라는 작품명을 붙였다. 송만재는 〈관우희(觀優戱)〉(1843)에 〈수궁가〉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동해의 자라가 사신이 되어(東海波臣玄介使), 임금 위한 충성으로 약 구해 나섰네(一心爲主訪靈丹). 얄미운 토끼는 요설을 펴서(生憎缺口偏饒舌), 간 두고 왔다고 용왕을 우롱하네(愚弄龍王出納肝)"라는 내용의 관극시를 남겼다. 동해의 자라가 용왕을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왔으나, 토끼의 거짓말에 속아 용왕이 우롱당했다는 대강의 줄거리를 제시한 것이다.

이유원은 〈관극팔령(觀劇八令)〉에 〈중산군(中山)君〉이라는 제목으로 〈수궁가〉의 관극시를 남겼다. "용왕이 약 구하러 별주부를 보내려고(龍伯求仙遣主簿), 수정궁에 물고기 모여 회의를 한다(水晶宮闢朝鱗部). 달에서 약 찧는 신령스런 토끼를(月中搗藥兎神靈) 어찌하여 업신여겨 육지 엿봤나(底事凌波窺旱土)"라는 내용의 관극시에서는 용왕이 약을 구하기 위해 수궁 신하들을 불러들여 회의하는 장면을 중요하게 포착했다. 토끼라는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송만재와 이유원의 태도와 시각은 상반된 면모를 보인다. 송만재가 토끼의 기지를 '요설(饒舌)'이라 조롱하고 토끼를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한 반면, 이유원은 토끼를 '신령스런 토끼(兎神靈)'로 미화했다. 송만재는 자라의 충성을, 이유원은 토끼의 기지를 각각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신재효의 〈토별가〉 개작 사설에서는 별주부의 충성이 긍정적인 관점에서 강조되었다. 그는 '모족회의(毛族會議) 대목'을 통해 호랑이를 지방수령, 사냥개를 아전, 멧돼지나 다람쥐를 일반 백성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당시 사회상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개작 사설은 음악적인 면을 지나치게 도외시했기 때문에 실제 창으로 불리지는 못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신오위장본집』 수록 〈토끼타령〉에 부기(附記)된 "동리선생소작 옥천거사 장단, 동리(桐里)=신오위장(申五衛將)의 호(號)"라는 기록을 통해, 신재효의 〈토별가〉 사설이 창으로 불렸으리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이 영광 출신의 판소리 명창이자 명고였던 김종길(金宗吉)의 소장본을 필사한 창본이라는 점에서, 이 사설이 소리로 가창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신재효의 판소리관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거론되는 정현석(鄭顯奭, 1817-1899)도 『교방가요(敎坊歌謠)』에서 판소리 여섯마당의 하나로 〈수궁가〉를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토끼타령〉이라는 제명으로 〈수궁가〉를 소개하면서, "용왕을 속여 위기를 벗어난 이야기로 이것은 어리석음을 징계한 것이다(欺龍脫身 此懲暗也)"라고 그 주제를 밝혔다. 이 시기의 다른 판소리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수궁가〉도 한문투의 표현이 많아지고, 서민적 발랄성이 약화되는 등 양반적 취향이 점차 강조되는 방향으로 변모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르러 〈수궁가〉는 특정 창자들 계열의 창본으로 전승이 고정되는 한편, 방각본 및 활자본 형태의 독서물로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1912년에 『매일신보』 지면을 통해 심정순(沈正淳, 1873-1937)·곽창기(郭昌基)의 〈수궁가〉 창본이 이해조(李海朝)의 정리를 거쳐 〈토의 간〉으로 연재되었으며, 김택수(金澤洙, 1895-1976)가 동편제 명창 이선유(李善有, 1873-1949)의 판소리 다섯 마당 사설을 정리·발간한 『오가전집』에 〈수궁가〉가 포함되었다.

〈수궁가〉는 197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정광수(丁珖秀, 1909-2003), 박초월(朴初月, 1917-1983), 남해성(南海星, 1935- )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내용 및 특성

김연수(金演洙, 1907-1974), 임방울(林芳蔚, 1904-1961), 정광수, 박초월, 남해성 등에게 전수된 유성준(劉成俊, 1873-1944) 바디 〈수궁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해 용왕 광리왕이 주육(酒肉)을 지나치게 즐기다가 병을 얻는다. 도사가 내려와 여러 가지 약과 침을 써보지만 낫지 않고, 다시 진맥을 해보더니 토끼의 간이 유일한 약이라고 일러준다. 용왕은 크게 탄식하며 토끼의 간을 구할 방법을 의논하고자 수궁의 만조백관을 어전으로 불러들인다. 거북, 조개, 물메기 등이 천거되나 이를 반대하는 신하들의 의견이 이어지고, 방게는 자원했다가 창피만 당한다. 결국 육지에 나아가 토끼의 간을 구해오겠다는 별주부의 상소가 받아들여진다.

토끼의 모습을 그린 화상을 받아들고 모친, 아내와 작별한 별주부는 수궁을 떠나 육지에 도착한다. 이때 온갖 날짐승, 길짐승들이 모여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상좌 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별주부는 그곳에 있던 호랑이를 토끼로 착각하고, 그가 '토생원'인지 물어본다는 것이 '호생원'이라고 잘못 발음해 호랑이와 맞닥뜨리게 된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별주부는 정성스럽게 산신제를 지낸다. 드디어 토끼가 눈앞에 나타나자, 별주부는 수궁이 육지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라는 달콤한 말로 토끼를 유혹한다. 겨우 토끼를 꾀어 데리고 가는 길에 여우가 나타나 토끼를 만류한다. 별주부는 꾀를 내어 토끼를 다시 설득하고, 무사히 수궁에 도착한다.

토끼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것을 듣고서야 토끼는 제 간을 약으로 쓰기 위해 별주부가 자신을 데려왔음을 알게 된다. 이에 토끼는 간을 빼어 육지에 두고 왔다는 거짓말로 용왕을 감쪽같이 속이고, 수궁에서 극진한 대접까지 받는다. 별주부가 항의해보지만 이미 토끼의 꾀에 제대로 속아 넘어간 용왕은 토끼를 육지로 돌려보낼 것을 명한다. 별주부의 등에 업혀 육지로 돌아온 토끼는 어서 간을 가지고 나오라고 사정하는 별주부를 조롱하며 자신의 똥을 싸서 던져주고 달아난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기쁨도 잠시, 토끼는 사람이 놓은 그물에 걸리고, 독수리에게 쫓기는 등 여러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토끼는 그때마다 절묘한 꾀를 써서 용케 위기에서 벗어난다. 별주부의 충성으로 용왕은 쾌차하고, 토끼는 산중에서 살다가 월궁으로 간다.

〈수궁가〉의 주제는 관점에 따라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별주부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수궁가〉가 충(忠)의 이념을 강조한 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송만재는 〈관우희〉의 관극시에서 토끼의 지략을 '요설'로 폄하하는 반면 별주부의 충심을 '일심(一心)'으로 미화해 유교적인 충의 가치를 부각시킨 바 있다. 경망스럽고 불경(不敬)한 토끼와 충성스럽고 우직한 별주부를 대립적인 구도에 놓음으로써, 봉건사회에서 절대적인 이념인 충을 권장한 것이다. 송만재가 〈수궁가〉의 주제를 충의 권장으로 보는 것과 달리, 정현석은 〈수궁가〉라는 작품 자체가 권선징악적 구도에서 벗어난다고 보았다. 그는 〈증동리신군서〉에서 권선징악을 다룬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제외한 나머지 소리는 들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밝혔는바, 〈수궁가〉를 권선징악적인 작품으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감히 절대 권력으로 표상되는 용왕을 속이고 탈출한 토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했다는 점에서는 송만재의 관극시와 통하는 면이 있다.

한편 자신의 수명 연장을 위해 목숨을 걸고 육지로 나가 약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린 용왕과 그 명을 충실히 받들어 수궁까지 토끼를 데려온 자라의 행위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유원은 관극시에서 어리석게도 신령스러운 토끼를 속이고자 헛된 노력을 한 용왕과 자라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형상화했다. 이로부터 충성만을 앞세우는 봉건 사회 지배층의 무능과 위선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측면에서 〈수궁가〉의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다. 물론 이때 지배층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과 반항적인 풍자의 주체는 토끼로 표현되는 피지배층, 서민들이다. 그들은 비록 힘없고 나약하나 지혜와 낙천성으로 삶의 질곡을 헤쳐 나간다. 용왕의 병을 온갖 잡스러운 병들의 집합으로 열거하는 장면은 봉건 국가의 말기적 증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부패하고 무능한 용왕, 국가가 더 이상 회생의 가망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별주부는 맹목적인 충성을 보인다. 그러나 토끼는 불합리한 희생을 거부하며,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지배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수궁가〉는 강자와 약자의 대립 관계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우화이다. 용왕과 자라로 대표되는 수궁 세계가 강자, 즉 통치자·지배층의 세계라면, 토끼와 여우로 대표되는 육지 세계는 약자, 즉 서민·피지배층의 세계이다. 또 수궁의 어족회의로부터 관료사회의 모습, 육지의 모족회의로부터 향촌사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도 있다. 〈수궁가〉의 등장인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강자-약자의 대립 구도는 훨씬 다양하다. 강자인 용왕 및 별주부와 약자인 토끼의 대립, 강자인 호랑이와 약자인 별주부의 대립, 강자인 호랑이와 약자인 작은 동물들 간의 대립, 강자인 사람 및 독수리와 약자인 토끼의 대립 등이 그 예이다. 여기서 강자인 용왕이나 호랑이는 현실 사회의 왕이나 수령과 같은 지배층, 약자인 토끼나 작은 동물들은 현실사회의 피지배층을 대변한다. 〈수궁가〉 작품 전체는 이러한 공간 및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과 갈등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강자가 쉽게 이기는 듯하지만,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약자의 승리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수궁가〉가 풍자성과 발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기능한다.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풍자가 〈수궁가〉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지만, 우화라는 장르의 기본적인 성격상 작품 전편에 넘쳐흐르는 해학과 웃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특징이다.

〈수궁가〉의 주요 등장인물은 별주부(鼈主簿), 토끼, 용왕이라 할 수 있다. 별주부는 용왕이 중병에 걸리자 목숨을 걸고 육지로 나아가 약으로 쓸 토끼를 잡아오는 인물이다. '별(鼈)'은 자라를 뜻하며, '주부(主簿)'는 조선시대에 각 아문의 문서와 부적(符籍)을 주관하던 종육품의 관직명이다. 별주부는 용왕으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다가 결국 배신당하는 봉건 관료로 형상화된다. 목숨까지 걸고 용왕을 위해 충심을 다했으나, 토끼의 거짓말에 완전히 넘어간 용왕은 별주부를 '보신탕감'으로 우롱하며 홀대했다. 용왕의 신하로 지배층의 일원에 속하나, 한편으로는 토끼와 같은 범주에 놓여 있는 약자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별주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반성이나 회의가 없는 경직된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수궁가〉에 나타난 별주부의 충성은 유교적 충의 이념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역설적으로 충의 헛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다만 별주부의 우직한 면은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수궁의 다른 신하들이 어전 회의에서 보여준 언행과 비교할 때 더욱 부각되는데, 육지에 나가 토끼의 간을 구해오라는 용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부분의 신하들은 각자의 안위를 우선시해 서로에게 임무를 미루기에 바빴다. 이때 자신이 나가보겠다며 스스로 자원하는 상소를 올린 인물이 말석에 있던 별주부이다. 큰 공을 세워 자신의 한미한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별주부의 또 다른 계산이 여기에 깔려 있을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랑이를 만나 죽게 된 때에 용왕의 건강을 먼저 염려하고, 토끼를 찾기 위해 정성스레 산신제까지 지내며, 토끼를 놓친 후에도 용왕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를 탓하는 그의 우직한 충심은 자기 한 몸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육지행을 기피했던 다른 신하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별주부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꿋꿋하게 행동하는 인물이며, 유교적인 규범 윤리로 볼 때 전형적인 충신에 해당한다. 용왕으로 표상되는 봉건 체제를 신봉하고, 이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이념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토끼는 별주부의 꼬임에 빠져 수궁으로 잡혀가지만, 영리한 꾀로 위기를 모면하고 육지로 돌아오는 인물이다. 그는 자기보다 몸집이 크고 힘센 동물이나 인간들에게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이다. 산중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팔난(八難)'의 위험을 낱낱이 열거하며 별천지 같은 수궁으로 인도하겠다는 별주부의 유혹에 토끼가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난에 찬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토끼의 열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러나 부푼 기대를 안고 수궁에 도착하자마자 토끼는 간을 내어놓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용왕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명하고, 다른 신하들도 이런 요구가 갖는 정당성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토끼는 이를 매몰차게 거부하고 꾀를 생각해낸다. 더 이상 차별적인 인간관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민층의 각성된 인식이 〈수궁가〉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토끼는 간을 육지에 꺼내두고 왔다는 대담한 거짓말로 용왕을 포함한 수궁의 신하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오히려 융숭한 대접까지 받고 육지로 돌아온다. 토끼는 비록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지만 삶의 지혜를 갖춘 서민층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육지로 돌아온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냉혹한 '팔난'의 현실이었지만, 토끼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과욕을 부리지도 않으면서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침착하게 헤쳐 나간다.

한편 토끼와 별주부는 지략과 어리석음, 욕망, 허위의식 등의 측면에서 서로 공유하는 부분도 많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열린 구조 안에서 두 주인공의 성격이 닮게 된 것이다. 별주부는 호랑이와 맞닥뜨린 위기에서 벗어나고 토끼를 수궁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토끼 못지않은 지략을 펼친다. 반대로 꾀 많고 영악한 토끼는 별주부에게 유혹당하는 과정에서 멍청해 보일 정도의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별주부가 남생이에 대한 질투로 부인에게 성적 욕망을 드러낸 것과 유사하게, 토끼는 수궁에 가서 높은 벼슬과 미인을 취하겠다는 욕망을 노출한다. 토끼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산중 세계를 자랑하는 대목이나 별주부가 육지에 나가겠다고 자원하는 대목에는 이들의 허위의식, 허영심이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다.

용왕은 자신의 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신하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토끼의 간을 구해올 것을 요구하는 권위적인 인물이다. 용왕에게 신하들이란 절대 권력자인 자신을 위해서라면 희생마저 영광으로 알고 감수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가 신하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충성심이다. 별주부가 육지로 나갈 뜻을 밝히자마자 그를 고귀한 충신으로 대접했지만, 토끼의 거짓말에 속은 뒤로는 바로 별주부를 홀대하고 토끼를 찬양하는 태도를 보였다. 끝까지 자신의 권력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착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용왕은 가장 비판적인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탐욕적이고 부도덕한 지배층을 형상화한 용왕은 〈수궁가〉 내에서 철저하게 조롱·희화화된다.

〈수궁가〉의 대표적인 눈대목으로는 '약성가(藥性歌)', '토끼화상', '고고천변(皐皐天邊)', '범피중류(泛彼中流)', '토끼 배 가르는 대목' 등이 있다.

'약성가'는 용왕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중에 도사가 나타나서 맥을 짚어본 뒤, 여러 탕약과 약제, 침구 등으로 치료하는 장면에서 불리는 소리대목이다. 도사가 나타나 약을 일러주는 대목에 '병 사설(병 타령)', '진맥 사설', '침 사설', '약 사설' 중 '약명(藥名) 사설', '약 조제 사설', '약 처방 사설', '약성가' 등이 실려 있으며, 이 중 '약성가'는 대개 자진모리장단우조로 되어 있다. 본래 〈약성가〉는 약재(藥材)에 대한 정보를 읊기 쉽게 가결(歌訣) 형식으로 기록하거나 한시체로 지어 암송함으로써, 약물의 성질과 효능을 요약해서 쉽게 기억하도록 했던 시가의 일종이다. 〈수궁가〉의 '약성가'는 의서(醫書)인 『제중신편(濟衆新編)』에 수록된 〈약성가〉 중 1·3·5수를 차용해서 원문에 현토하고 한글로 음독(音讀)한 것이다.

'토끼화상'은 육지로 가는 별주부가 토끼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화공이 토끼의 외양을 자세히 그려준다는 내용의 소리대목이다. 『조선창극사』에 김찬업(金瓚業)의 더늠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는 송흥록(宋興祿)의 제자인 박만순(朴萬順, 1830?-1898?)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경쾌한 분위기의 중중모리장단곡인 '토끼화상'은 가야금병창이나 단가로도 불리며, 경기잡가 〈토끼화상〉으로도 파생되었다.

'고고천변'은 별주부가 토끼의 간을 구하려고 처음 육지에 나왔을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을 묘사하는 중중모리장단의 소리대목이다. '고고천변'이라는 대목명은 아침 해가 떠오를 때 동쪽 하늘의 환한 모습을 뜻하는 말로, 이 대목 가사의 첫머리인 "고고천변 일륜홍(日輪紅)···"에서 따온 것이다. 역시 가야금병창곡이나 단가로도 불린다.

'범피중류'는 별주부가 토끼를 유인해 용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진양조장단으로 그려낸 소리대목이다. '범피중류'라는 대목명은 배가 넓은 강이나 바다의 중간쯤에 둥둥 떠있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로, 이 대목 가사의 첫머리인 "범피중류 둥덩실···"에서 따온 것이다. 대개는 심청이 남경 선인들에게 인당수 제수(祭需)로 팔려 바다로 가는 장면에서 불리는 〈심청가〉의 '범피중류'를 차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박봉술(朴鳳述, 1922-1989) 바디 〈수궁가〉에서는 독특하게 이 대목을 따로 짜서 넣었다.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거짓말이 탄로 날 위험에 처하자 토끼가 오히려 자신의 배를 갈라 보라고 큰소리치는 내용으로 된 진양조장단의 소리대목이다. 이 대목과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조선창극사』에 전한다. 송흥록(宋興祿)이 부름을 받고 소리를 하러 떠났다가, 부인인 맹렬과 약속했던 일정에서 3일 늦게 돌아왔다. 남편이 다른 기생과 정을 통한 것으로 오해한 맹렬은 그 사이 진주 병사 이경하의 수청기생으로 들어갔다. 송흥록이 이 소식을 듣고 진주로 찾아가자, 이 사실을 안 맹렬은 이경하에게 송흥록을 데려다 소리를 시켜볼 것을 청했다. 대신 소리는 웃기고 울리는 대목이 별로 없어 '바싹 마른' 〈수궁가〉로 하되, 이것으로 이경하를 한번 웃기고 울리면 3백 냥의 상금을 내리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는 조건이었다. 송흥록은 우스운 재담과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의 슬픈 곡조로 이경하를 웃기고 울려 상금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경하의 양해를 얻어 맹렬도 되찾아 왔다. 송흥록의 조카인 송우룡(宋雨龍)도 진양조장단에 우조로 된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을 잘 불렀다. 한편 '토끼 배 가르는 대목' 가운데 용궁에 잡혀간 토끼가 별주부를 꾸짖는 장면은 신만엽(申萬葉)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연희본

〈수궁가〉 주요 연희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심정순·곽창기 창본 〈토의 간〉 : 심정순과 곽창기는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두 사람의 〈수궁가〉 사설을 저본으로 한 〈토의 간〉이 이해조의 정리를 거쳐 『매일신보』에 1912년 6월 9일-7월 11일간 연재되었다. 6월 9일부터 27일까지의 연재본에는 창과 아니리가 구분되고 창조도 표시되어 있으나, 그 이후의 연재본에는 그러한 구분 없이 소설본 형태로 되어 있다. 등장하는 장단 명칭은 대부분 현재 판소리 장단 명칭과 유사하다.

(2) 이선유 창본 〈수궁가〉 : 이선유는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동편제 명창이다. 그의 〈수궁가〉는 송우룡에게 전수받은 동편제 바디로, 1933년 김택수가 펴낸 이선유의 판소리 사설집인 『오가전집』에 들어 있다. 소리대목마다 이름을 붙이고, 장단을 적어놓았다.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는 '날짐승 상좌다툼 대목'과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없고, 모족들이 회의를 위해 모이며, 토끼의 수궁행을 방해하는 인물이 여우가 아닌 너구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고제 소리로 볼 수 있다.

(3) 박봉술 창본 〈수궁가〉 : 박봉술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동편제 명창이다. 송만갑(宋萬甲, 1865-1939)-박봉래로 이어지는 동편제 바디 〈수궁가〉를 전수받았으며, 그의 〈수궁가〉 창본은 뿌리깊은 나무 편 『판소리 다섯 마당』(한국브리태니커, 1987)에 실려 있다. '소상팔경'이 간단한 형태로 들어 있고, 모족들이 회의가 아닌 잔치를 벌이기 위해 모이며, 토끼의 수궁행을 방해하는 인물이 너구리가 아닌 여우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선유 창본보다 후대 창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나중에 삽입된 '날짐승 상좌다툼 대목'이 없다는 점에서 정광수 창본보다는 시기적으로 앞서는 창본이라 할 수 있다. '범피중류'는 다른 〈수궁가〉 창본들처럼 〈심청가〉의 것을 수용하지 않고, 다른 내용의 사설로 간략하게 짜 넣었다.

(4) 김연수 창본 〈수궁가〉 : 김연수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명창으로, 동초제의 법제를 마련했다. 〈수궁가〉는 동편제의 명창 유성준에게 배웠다. 판소리 사설에 오자와 와전이 많은 것에 문제를 느껴 이를 바로 잡고, 한문어구를 한자로 표기한 창본집을 발간했다. 그의 〈수궁가〉 창본은 『창본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문화재관리국, 1974)에 실려 있다. 아니리와 창을 분리하고 장단을 표기하는 한편, 창 첫머리에 도창에 해당하는 '효과'라는 뜻의 [효], 용왕이 부르는 대목이라는 뜻의 [왕], 별주부가 부르는 대목이라는 뜻의 [별], 토끼가 부르는 대목이라는 뜻의 [토]와 같은 기호를 붙였으며, 장단상의 기교를 ○, ×, △, ▲와 같은 음악 부호로 설명했다. 김연수의 창본에는 오랜 기간 창극 활동에 참여했던 그의 경험이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다. 신재효본의 내용을 대폭 수용해 사설을 바꾸거나 새로 짜 넣은 부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수궁 회의 도중 벌덕게가 나서는 대목에 여러 신하들의 공론을 넣어 무능한 정치 행태를 비판했으며, 산중에서 벌어진 상좌다툼 대목에서는 짐승들의 권력 관계를 풍자적으로 드러냈다. 별주부가 가족들과 하직하는 대목에서는 남생이를 등장시켜 골계미를 확대시키기도 했다.

(5) 정광수 창본 〈수궁가〉 : 정광수(丁珖秀, 1909-2003)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서편제 명창이다. 〈수궁가〉는 동편제 명창 유성준의 문하에서 전수했다. 정광수는 직접 판소리 다섯 마당 사설의 오자와 와전을 바로 잡은 사설집을 발간했다. 그의 〈수궁가〉 창본은 『전통문화오가사전집』(문원사, 1986)에 실려 있다. 아니리와 창을 나누는 한편 장단을 밝혔으며, 장단 옆 괄호에 조(調)를 표기했다. 정광수 창본은 "수궁가로 말할진대 우의소설이다. 짐승으로 이명붙여 우의저작하니 대의명분 이 아니냐. 이 가사를 들으시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면 그 아니 좋을쏜가"라는 교훈적인 사설로 마무리된다.

(6) 박초월 창본 〈수궁가〉 : 박초월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여성 명창이다. 유성준 말년에 소리를 배웠으며, 이후 정광수와 임방울(林芳蔚, 1904-1961)에게서도 〈수궁가〉를 배웠다. 1962년 기독교 방송국에서 방송용으로 녹음한 테잎과 1970년 일부 보완한 것을 합해 편보·정리한 〈수궁가〉 창본이 『한국음악』 6집(전통음악연구회, 1981)에 실려 있다. 『판소리연구』(정음사, 1986)에도 박초월의 〈수궁가〉 창본이 실려 있는데, 앞의 창본과 사설은 동일하나 대목 구성에 차이가 있다. 묘사나 설명을 자제하고 필요한 내용만을 간략히 전개한 것이 특징이다. 용왕이 별주부의 정성으로 쾌차하고 토끼는 다시 본래의 생활로 돌아간다는 결말에서는 용왕에 대한 비판이 드러나지 않으며, 통쾌한 풍자나 주제 의식도 부각되지 않는다. 박초월의 〈수궁가〉는 유성준 바디로 동편제 계열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전형적인 계면성음 위주의 서편제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7) 박동진 창본 〈수궁가〉 : 박동진(朴東鎭, 1916-2003)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명창이다. 동편제의 명창 유성준 문하에서 〈수궁가〉를 학습했으나, 그가 부른 다른 판소리 작품들의 성격을 감안할 때, 개인적인 윤색이나 다른 바디의 삽입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 완창 공연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데, 〈수궁가〉는 1972년에 발표했다. 1988년에 나온 『인간문화재 박동진 판소리 대전집』에 〈수궁가〉 창본이 수록되어 있다.

(8) 정권진 창본 〈수궁가〉 : 정권진(鄭權鎭, 1927-1986)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명창이다. 정재근(鄭在根)-정응민(鄭應珉, 1896-1963)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 집안의 후손으로, 정응민 문하에서 〈수궁가〉를 전수받았다. 1970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펴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1집 78호에 정권진의 〈수궁가〉 창본이 실려 있다. 정권진 창본에서는 별주부가 수궁으로 돌아가 토끼에게 속은 일을 고하고, 용왕이 토끼 한 마리를 보내줄 것을 청하는 글을 산신전에 보낸다. 산신이 수국(水國)과 진세(塵世)의 화친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늙은 토끼를 보내주고, 용왕은 그 간을 내어 먹은 뒤 쾌차한다. 이러한 결말은 용왕의 권위와 별주부의 충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기인하며, "이러한 미물들도 진충보국 이 같으니 하물며 우리 인생이야 말을 즉키 헐 수 있나. 우리도 진충보국을 허여보세"라는 말미의 가사는 다시 한 번 유교적 충의 가치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9) 『신오위장본집』 수록 〈토끼타령〉 : 전남 영광 출신의 판소리 명창이자 명고였던 김종길(金宗吉)의 소장본 〈토끼타령〉을 저본 삼아 필사한 창본이다. 필사기의 기축년은 1949년으로 추정되며, 전체 26장 51쪽 가운데 아홉 번째 장이 낙장이다. "동리선생소작 옥천거사 장단, 동리(桐里)=신오위장(申五衛將)의 호(號)"라는 부기(附記)로부터 이것이 신재효의 〈토별가〉 사설을 바탕으로 윤색한 창본임을 알 수 있다.

역대 명 연희자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신만엽이 '토끼가 배를 가르라고 발악하는 대목', 송우룡이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꾀부리는 대목', 김거복(金巨福)이 '용왕이 병이 나서 탄식하는 대목', 김수영(金壽永)이 '자라가 토끼를 유인해 가는데 여우가 방해하는 대목', 백경순이 '토끼가 위기를 벗어나 육지로 돌아오는 대목', 김찬업이 '육지에 가는 자라에게 토끼화상을 그려주는 대목', 신학준(申鶴俊)이 '용왕이 토끼에게 간을 내 놓으라고 호령하는 대목', 유성준이 '육지에 온 자라가 토끼를 처음 만나 문답하는 대목'을 장기 혹은 더늠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이외에 송흥록, 윤영석(尹永錫), 김질엽(金質燁, 1850-?), 이선유, 정학진(丁學珍, 1847-1919), 임방울, 오태석(吳太石, 1895-1953), 장판개(張判盖, 1885-1937), 정응민, 조몽실(曹夢實, 1900-1949), 박봉술 등도 〈수궁가〉를 잘 불렀다.

현재 전승되는 〈수궁가〉에는 유성준 바디, 송만갑 바디, 정응민 바디 등이 있다. 유성준 바디와 송만갑 바디는 송흥록으로부터 내려오는 동편제 〈수궁가〉이며, 정응민 바디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으로부터 내려오는 서편제 〈수궁가〉이다. 중고제 〈수궁가〉는 김창룡(金昌龍, 1872-1943)을 끝으로 전승이 끊어졌으며, 정창업(丁昌業, 1847-1889)-김창환(金昌煥, 1855-1937)-김봉학(金鳳鶴, 1883-1943) 및 이날치(李捺致, 1820-1892)-김채만(金采萬, 1865-1911)으로 내려오던 서편제 〈수궁가〉도 더 이상 불리지 않고 있다.

〈수궁가〉의 중요무형문화재 및 시·도무형문화재의 예능보유자·전수조교 인정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정광수·박초월이 1964년, 남해성이 2012년에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조통달(趙通達, 1945- )이 1988년, 김영자(金榮子, 1951- )가 1991년, 정영미(鄭英美, 1958- )가 1995년, 정옥향(鄭玉香, 1952- )이 2001년에 전수조교로 인정되었다.

홍정택(洪貞澤, 1921-2012)이 1984년, 박복남(朴福男, 1927-2004)이 1998년, 박양덕(朴良德, 1947- )이 2003년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박화순(朴花順, 1930- )이 1993년, 박정자(朴靖子, 1941- )가 2005년에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박방금(朴芳金, 1949- )이 2008년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선동옥(宣東玉, 1936-1998)이 1985년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정의진(丁意珍, 1947- )이 2013년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의의

형성 초기의 〈수궁가〉는 〈토끼타령〉이라는 제명으로 불린, 토끼 중심의 이야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이후 점차 사설·음악적으로 확충되어 창본 계열에서는 〈수궁가〉, 〈토별가〉 등 '-가(歌)'의 제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소설본 계열에서는 〈토생전〉, 〈토끼전〉, 〈별주부전〉, 〈토공사(兎公辭)〉, 〈토공전(兎公傳)〉, 〈별토전(鱉兎傳)〉, 〈토별산수록〉, 〈수궁록〉, 〈수궁전〉, 〈토처사전〉, 〈수궁용왕전〉 등 다양한 이본을 파생시켰다. 토끼의 지략담 위주로 구성되었던 골계적인 내용은 별주부의 충을 교훈적인 주제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모하게 되었다.

〈수궁가〉는 현재 전승되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유일하게 우화(寓話)적인 작품으로, 표면적으로는 충의 이념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조선 후기의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판소리 〈수궁가〉는 인도의 불전설화, 한역 불경 소재의 이야기에 발생의 근원을 두고 있지만,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빗댄 풍자와 재치가 가득한 작품이다. 한편 〈수궁가〉는 충이라는 교훈과 민중적 발랄함이 대비되는 논쟁적인 성격의 작품으로, 그 지향의 차이에 따라 수많은 이본이 파생·향유되었다. 〈수궁가〉는 다소 메마른 듯하면서도 진중하고 음악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바싹 마른' 까다로운 소리로 탄탄한 내공이 없이는 소화하기 어려워 〈소적벽가(小赤壁歌)〉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수궁가〉의 이러한 성격은 앞서 제시한 송흥록과 맹렬의 일화를 통해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수궁가〉는 청중들을 웃기고 울리는 판소리의 묘미가 잘 살아 있는 소리로, 지금까지 널리 향유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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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영 외, 『토끼전 전집』, 박이정, 199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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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환, 『토끼전·수궁가 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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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출헌, 「조선 후기 우화소설의 사회적 성격」,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 조동일, 「토끼전(별쥬전)의 구조와 풍자」, 『계명논총』 8, 계명대학교, 1972.
  • 최광석, 「토끼전 이본 계열의 구조와 근대지향 의식」,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 최동현·김기형 엮음, 『수궁가 연구』, 민속원, 2001.

관련이미지

판소리 수궁가 조상현

판소리 수궁가 조상현 1988년 대한민국국악제에서의 수궁가 공연장면으로 창은 조상현, 고수는 김명환이다. 수궁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어

고고천변, 범피중류, 별주부(鼈主簿), 약성가, 용왕(龍王), 토끼 배 가르는 대목, 토끼타령, 토끼화상, 토별가(兎鼈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