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진
[ 鄭權鎭 ]
정권진(鄭權鎭, 1927-1986)은 전남 보성군 회천면에서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이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 정재근(鄭在根)의 종손이자, 판소리 명창 정응민(鄭應珉, 1896-1963)의 아들,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전수교육조교 정회천(鄭會泉, 1957- )·대금 연주자 정회완·판소리 명창 정회석(鄭會錫, 1964- ) 형제의 아버지이다.
정권진
보성소리 정통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흥얼거리면서 자랐지만, 아버지 정응민은 아들이 '대우도 못 받고 힘만 드는' 소리를 배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버지에게 소리를 배울 수 없었던 정권진은 아버지의 수제자 박기채(朴基采)를 찾아가 판소리를 배우고, 강진의 고성사라는 절에 들어가 5년 정도 독공을 했다. 아버지의 초기 제자인 김준섭(金俊燮, 1913-1968)에게도 토막소리를 익혔다. 뒤늦게 아들이 판소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응민은 고향인 보성으로 아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역시 자식을 직접 가르칠 수는 없다 하여 자신과 아들 사이에 제자 박춘성(朴春城, 1921-1995)을 앉혀놓고, 그를 가르치며 동시에 소리를 전수했다고 한다. 김소희(金素姬, 1917-1995), 성우향(成又香, 1935-2014), 정춘실(鄭春實, 1943- ), 안향련(安香蓮, 1944-1981), 이옥천(李玉千, 1946- ), 조통달(趙通達, 1945- ), 김영자(金榮子, 1951- ) 등이 그의 제자이다.
정권진 『정권진 심청가(북 : 이정업)』. 신나라레코드. 1992
정권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한동안 경찰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일을 과감히 정리하고 각지를 떠돌면서 국악원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29세(1955)에 군산의 전북국악원, 32세에 대구경북국악원, 34세에 충남대전국악원 강사로 재직했다. 35세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했으나 창극보다는 정통 판소리를 고수하고자 했다. 38세부터 국악예술학교 창악 교사, 56세부터 전남대 교수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가 부른 〈심청가〉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정재근-정응민으로 이어지는 바디이다. 본래 타고난 성음이 탁하고, 성량이 다소 부족하며, 상청도 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창법상의 변화를 적절히 구사하는 방식으로 구성 있는 성음을 내어, 애절한 대목을 탁월하게 소화해내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강산제 보성소리의 정통 계승자로서, 보성소리의 전승과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참고문헌
- 유영대, 「강산제 판소리와 정권진의 보성소리 : 정권진 창 심청가」, 『한국음악사학보』 10, 한국음악사학회, 1993.
- 정권진, 『정권진 심청가(북 : 이정업)』 1-3, 신나라레코드, 1992.
- 최동현, 『판소리명창과 고수연구』, 에디터,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