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희
[ 觀優戱 ]
〈관우희(觀優戱)〉는 송만재(宋晩載, 1788-1851)가 그의 아들 송지정(宋持鼎, 1809-1870)의 등과(登科)를 축하하는 문희연을 대신해 지은 한시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작품에는 판소리를 비롯해 줄타기, 땅재주 등 당대 유행했던 여러 연희의 내용이 담겨있어, 19세기의 놀이 문화는 물론 한국 연희사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작품을 지은 송만재는 순조-헌종 대의 문인으로,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자송(子松), 호는 취송(醉松)이다. 뒤늦게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해 1948년에 원릉참봉(元陵參奉)이 되었으며, 이후 금부도사(禁府都事), 순릉직장(順陵直長)의 벼슬을 역임했다. 그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아들 송지정이 1843년에 진사시에 합격해 서부도사(西部都事)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창우(倡優)를 불러 각종 연희를 벌이면서 성대하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지만,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송만재는 아들 지정을 위한 문희연을 베풀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잔치를 열지 못하는 서운함을 달래며, 당시 문희연에서 주로 행해졌던 여러 연희들을 자세히 묘사한 〈관우희 오십수(觀優戱五十首)〉를 짓는 것으로 그 마음을 대신했다.
〈관우희〉의 이본은 현재까지 연세대 중앙도서관 소장본과 구사회의 개인 소장본 총 2종이 보고되었다. 연세대 중앙도서관 소장본 〈관우희〉는 이혜구가 1955년에 발굴한 것으로, 여기에는 신위(申緯, 1769-1845)의 〈소악부〉가 함께 필사되어 있다. 구사회가 2012년에 새롭게 발굴한 〈관우희〉는 연세대본에 비해 선본(善本)이자 선본(先本)으로, 이 자료를 통해 연세대본의 필사 과정에서 잘못 기록되었던 글자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구사회본의 출처는 『판교초집(板橋初集)』으로, 송만재가 지은 24수의 한시 작품집인 〈옥전잉묵(玉田媵墨)〉과 같이 실려 있다. 한편 구사회본에는 작품 하단에 '자하비평(紫蝦批評)'이라는 어구가 적혀 있다. 이는 송만재가 〈옥전잉묵〉과 〈관우희〉 오십수를 창작한 이후, 신위가 그의 작품을 검토하며 부분적으로 바로잡거나 손질했음을 의미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위는 〈관극절구십이수(觀劇絶句十二首)〉의 저자이다. 송만재와 신위가 이러한 관계에 놓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색의 영향이 있었다. 조선조 문인들 사이에서는 이념이나 당색에 따라 인간적으로 교류하거나 문화를 공유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신위의 당색은 소론이었으며, 여산 송씨였던 송만재의 집안 역시 소론 가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관극팔령(觀劇八令)〉을 남긴 이유원(李裕元, 1814-1888) 역시 소론계열에 속했다.
〈관우희〉는 〈서(序)〉와 〈발(跋)〉, 그리고 칠언절구 50수의 본시(本詩)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연세대본과 구사회본은 이 본시의 구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연세대본은 '(1) 영산(靈山) : 제1수-제8수 (2) 타령(打令) : 제9수-제20수 (3) 긍희(緪戱) : 제21수-제35수 (4) 장기(場技) : 제36수-제42수 (5) 총론(總論) : 제43수-제50수'의 항목으로 되어 있으며, 윤광봉은 이를 다시 편제해 '(1) 서사(序詞) : 제1수-제2수 (2) 영산(靈山) : 제3수-제8수 (3) 타령(打令) : 제9수-제25수 (4) 긍희(緪戱) : 제26수-제35수 (5) 장기(場技) : 제36수-제42수 (6) 총론(總論) : 제43수-제50수'로 구분해 논의했다. 구사회본은 '(1) 영산(靈山) : 제1수-제8수 (2) 타령(打令) : 제9수-제20수 (3) 요령(要領) : 제21수-제28수 (4) 긍희(緪戱) : 제29수-제35수 (5) 장기(場技) : 제36수-제42수 (5) 총론(總論) : 제43수-제50수'로 구성되어 있다. 연세대본의 '긍희'가 구사회본에서는 '요령'과 '긍희'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요령의 의미는 판소리나 줄타기의 주체인 광대들의 너름새나 동작, 본 레퍼토리에 속하지 않은 재담, 노래 등 여흥의 장기 등으로 해석된 바 있다.
연세대본을 중심으로 그 구성 및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수-제2수에서는 본격적인 문희연을 베풀기 전 무대와 객석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으며, 제3수-제8수에서는 본사가(本事歌) 즉 판소리 이전에 불리는 단가(短歌)의 가창 장면을 그려냈다. 제9수-제25수에는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 및 시적 화자가 관객으로서 느끼는 심경이 담겨있다. 제9수는 〈춘향가〉, 제10수는 〈적벽가〉, 제11수는 〈흥보가〉, 제12수는 〈강릉매화타령〉, 제13수는 〈변강쇠타령〉, 제14수는 〈무숙이타령〉, 제15수는 〈심청가〉, 제16수는 〈배비장전〉, 제17수는 〈옹고집타령〉, 제18수는 〈가짜신선타령〉, 제19수는 〈수궁가〉, 제20수는 〈장끼타령〉을 소개한 관극시이며, 나머지 5수는 그 감흥을 정리하는 마무리시에 해당한다. 제26수부터는 줄광대와 땅재주꾼의 무대에 대한 묘사로 전환된다.
제26수-제35수에서는 줄타기가 처음 시작될 때의 모습, 줄광대가 묘기를 부리며 행하를 바라는 모양, 아슬아슬하고 신출귀몰한 갖가지 줄타기 재주, 구성진 재담과 노래 등이 그려진다. 제36수-제42수는 땅재주 무대를 묘사한 시인데, 살판을 놀면서 재담을 늘어놓고, 공중으로 몸을 날리며, 연속으로 재주를 넘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걷는 광대들의 묘기가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제43수에서는 검무희(劍舞戱)를 다루었으며, 제44수-제47수에서는 상경한 여러 놀이패들이 문희연에 초청받기 위해서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삼일유가와 문희연에는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과거가 임박하면 지방의 연희자들이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러면 급제자 측에서는 이들 중 가장 잘하는 놀이패를 선택해 초청했다. 여기에는 판소리도 당연히 주요한 종목으로 포함되었고, 이로부터 문희연이 양반층의 판소리 향유가 확산되는 계기로 기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48수에는 그렇게 선발된 창자가 소리하는 모습과 관중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표현되어 있다. "장안에서 우춘대를 너도나도 일컫는데(長安盛說禹春大), 지금은 누가 그 소리를 잘 잇고있나(當世誰能善繼聲). 한 곡조 뽑으면 술잔 앞에 천 필의 비단(一曲樽前千段錦), 권삼득, 모흥갑이 어릴 적부터 이름 날렸지(權三牟甲少年名)"라는 내용의 제49수에는 우춘대, 권삼득, 모흥갑 등 판소리 명창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다. 앞 수에 대한 부연에 해당하는 제50수에서는, 재주 있는 광대는 어느 시대에나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작품을 매듭짓고 있다.
참고문헌
- 구사회 외,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 연구』, 보고사, 2013.
- 윤광봉, 『(개정판)한국연희시연구』, 박이정, 1997.
- 이혜구, 「송만재의 관우희」, 『중앙대학교 30주년 기념 논문집』,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