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끼타령

장끼타령

정의 및 이칭

〈장끼타령〉은 까투리의 만류를 무시하고 콩을 먹으려던 장끼가 덫에 치어 죽고, 홀로 남겨진 까투리가 개가를 시도한다는 내용의 실전판소리 작품이다. 〈자치가(雌雉歌)〉라고도 부른다.

유래 및 역사

〈장끼타령〉의 근원설화로는 『어우야담』·『순오지』 등에 수록된 〈두더지의 혼사 설화(野鼠婚說話)〉가 지목된 바 있으며, 이는 인도의 『판차탄트라(Panchatantra)』·『마하바라타(Mahabharata)』·『히토파데샤(Hitopadesa)』 등에 수록된 〈쥐 설화〉, 중국의 〈치자반가(雉子班歌)〉, 일본의 『사석집(砂石集)』 중 〈쥐의 혼인〉 및 『기담일소(奇談一笑)』 중 〈늙은 쥐 부부 설화〉와 유사한 계열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두더지의 혼사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두더지의 부모가 사랑하는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신랑감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평소 가장 높은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하늘에게 자신의 딸과 혼인해 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하늘은 구름에게, 구름은 바람에게, 바람은 과천 거리에 있는 돌미륵에게, 돌미륵은 두더지에게 그 혼사를 양보했다. 각편에 따라 두더지 부부가 '해→구름→바람→벽', '옥황→구름→바람→미륵', '해→구름→바람→은진미륵' 등의 순에 따라 혼인을 청하는 경우가 있으나, 결국 두더지를 사위로 맞게 된다는 결말은 동일하다.

한편 〈나이 자랑 설화〉 즉 〈쟁장설화(爭長說話)〉를 〈장끼타령〉의 근원설화로 보기도 한다. 〈나이 자랑 설화〉는 불전(佛典)의 영향을 받은 설화로, 여러 동물들이 등장해 자신의 나이가 가장 많다며 서로 다투는 구조로 되어 있다. 〈두더지의 혼사 설화〉는 〈장끼타령〉에서 까투리가 부엉이, 기러기, 물오리 등 뭇새들의 청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동류의 다른 장끼와 재혼하는 장면, 〈나이 자랑 설화〉는 장끼의 장례식에 찾아온 여러 새들이 까투리에게 장가들 목적으로 자신이 가장 연장자라고 주장하며 자랑을 늘어놓는 장면에 수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두 설화의 흔적이 〈장끼타령〉 서사의 후반부에만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모두 작품 형성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친 삽입설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 외에 〈장끼타령〉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요인으로 꿩과 관련된 민요들이 거론된 바 있다. 우선 "꿩꿩 장서방 아들낳고 딸낳고 뭣먹고 사는가 앞집이가 콩한되 뒷집이가 풀한되 그럭저럭 먹고 사는디 앞집이 총쟁이놈이 뚱땅거려서 못살겄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꿩꿩 장서방〉은 꿩의 생태를 소재로 한 민요이다. 이 민요는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지만, 각편들의 세부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다만 처자식을 거느린 꿩이 포수의 위협 속에 살고 있으며, 꿩의 모양이나 생김새가 구체적인 사설로 묘사된다는 공통점으로부터 이러한 류의 꿩 노래가 〈장끼타령〉을 성립시키는 근간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학규(李學逵, 1770-1835)는 김해에서 유배 중이던 1807-1808년경에 자신이 직접 들은 민요를 〈치기사(雉機詞)〉 즉 〈꿩덫노래〉라는 제목의 한시로 옮긴 바 있다. "꿩덫을 놓았더니(雉機釋), 꿩이 머리를 비비면서 날개를 퍼덕거린다(雉頭挼挼翔磔磔). 모여든 꿩들은 서로 잘 알기에(東鶅北鵗久相識), 꿩이 애타게 하소연하니 저절로 슬프다(雉訴以臆自羅慽). 산과 들에 먹을 것이 없고 산에는 눈이 쌓였는데(山田無食山雪積), 산촌의 아이가 재주 좋게 잡았구나(山民之子巧利射). 붉은 콩이 벌어진 꼬투리에 아주 탐스럽고(紅豆坼莢甚肥澤), 소록소록 눈이 내려 인적이 없는데(簁簁下雪無人迹), 다가가 쪼자 천둥치는 듯(向前一啄抨礔礰). 오호라 명이 끊어지니 오늘 저녁이구나(鳴呼命絶秪今夕). 화려한 모습 이제 아끼지 않아도 되고(錦襜繡襦不復惜), 둔덕에서 죽으니 부질없고 쓸쓸하다(平陂隕蘀謾蕭槭). 산중에 깃들 곳 있어 자적할 만하고(山中有棲亦安適), 아가위가 선명하니 딸 수 있을텐데(棠毬紅子粲可摘). 까투리떼가 그 둔덕을 두려워하여(群雌粥粥以同垞), 오래도록 보리밭에서 회한스러워 하며 동동거린다(從來悔躤田中麥)"라는 시에 드러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겨울에 눈 내린 산에 꿩덫을 놓았더니, 붉은 콩을 먹으려던 꿩이 그 덫에 걸렸다. 그 덫의 임자는 산촌의 아이이다. 덫에 걸린 꿩은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고, 아내인 까투리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 줄거리 간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이 민요는 판소리로서의 〈장끼타령〉이 성립되기 직전 단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장끼타령〉은 힘없고 나약한 서민들의 비극상을 다룬 〈치기사〉에 가까운 노래였으나, 후대로 갈수록 장끼의 허세와 위선을 풍자하는 방향으로 그 성격이 변모했을 것으로 보인다.

〈장끼타령〉에 대해 언급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문헌은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1843) 중 "푸른 꽁지 수놓은 가슴, 장끼와 까투리(靑楸繡臆雉雄雌) 밭이랑에 흐트러진 붉은 콩을 의심하네(留畝蓬科赤豆疑), 한 번 쪼곤 덫에 걸려 푸드덕거리니(一啄中機紛幷落), 추운 산 마른 가지에 눈 덮인 때에(寒山枯樹雪殘時)"라는 관극시이다. 여기서는 한겨울에 굶주린 상태에서 콩을 먹으려다 덫에 걸려 죽어가는 장끼의 비극적 정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를 슬퍼하는 까투리의 모습은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관극팔령(觀劇八令)〉에도 〈장끼타령〉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한 관극시가 남아 있다. 이유원 역시 "온 산에 눈 덮여 새조차 날지 않는데(雪積千山鳥不飛), 꿩들이 어지럽게 내려앉아 셀 수 없네(華蟲亂落計全非). 까투리의 간곡한 부탁 저버리고(抛他兒女丁寧囑), 구복이 구구해 덫을 건드렸구나(口腹區區觸駭機)"라 하여 장끼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을 주요하게 포착했다. 그러나 장끼의 성급한 행동을 막고자 그를 간곡히 만류하는 까투리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관우희〉와는 차이가 있다. 또 "구복이 구구해"라는 표현으로부터 장끼 가족의 비참한 생활상이 드러나는 점도 특징적이다.

〈장끼타령〉은 판소리사의 초기에 활약한 전기 팔명창 중 한 명인 염계달(廉季達)에 의해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창극사』에 전하는 일화에 따르면, 염계달이 10년 공부를 작정하고 길을 떠났는데 가던 도중에 길에서 〈장끼전〉 사설이 적힌 책을 습득했다고 한다. 물론 염계달이 길에서 얻었다는 〈장끼전〉은 판소리 형태에 선행하는 소설본이라기보다, 판소리 창본 혹은 판소리 사설의 정착본 정도였을 것이다. 그는 감격해 "하늘이 나를 암연히 도움이라"라 말한 뒤 10년 동안 소리 공부에 매진해 명창이 되었고, 〈장끼타령〉을 장기로 인정받았다.

〈장끼타령〉이 염계달에 이르러 비로소 완정한 판소리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보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염계달의 소리 수련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장끼타령〉의 명창은 헌종-고종 연간의 인물인 한송학으로, 그의 생몰연대를 고려할 때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장끼타령〉이 판소리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장끼타령〉 중 '까투리 해몽 대목'이 그의 더늠이라고 하는데, 『조선창극사』에 수록된 그의 더늠 사설은 구활자본 〈장끼전〉에 있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여기에는 구활자본 〈장끼전〉이 기존에 전승된 판소리 창본을 모본으로 해 만들어졌을 가능성,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이 『조선창극사』를 집필하면서 당시에 유행했던 구활자본의 해당 부분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공존한다.

한편 정노식은 『조선창극사』에 한송학의 더늠 사설이라 하고, 첫 대목 이후 장끼의 장례에 따오기가 축문을 읽는 대목까지 싣고 있는데, 이는 분량상 거의 작품 전반부 전체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창극사』의 〈장끼타령〉 수록 사설이 작품의 초두에서 시작해 장끼의 죽음으로 끝나고, 송만재와 이유원의 관극시 두 편이 모두 장끼가 죽는 장면에서 마무리된다는 사실에 근거해, 19세기 중반까지 향유되었던 판소리 〈장끼타령〉 자체가 본래 장끼의 죽음 언저리에서 일단락되는 작품이었으리라고 추정하는 학설도 있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이후 판소리 〈장끼타령〉이 가사나 소설로 전환되면서 까투리의 개가와 관련해 다양한 결말을 보유한 작품으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규방가사나 구활자본 소설로 전환된 〈장끼타령〉의 이본은 〈장끼전〉, 〈꿩전〉, 〈화충전〉, 〈화충선생전〉, 〈자치가〉, 〈까투리가〉, 〈장끼가〉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향유되었으며, 그 인기는 현전하는 필사본의 분량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다. 특히 〈장끼타령〉은 실전판소리 가운데 판소리계 소설 이본의 수가 가장 앞서는 작품이기도 하다. 구활자본 소설 〈장끼전〉은 1915년에 덕흥서림, 1922년에 대창서관, 1925년에 경성서적업조합, 1951년에 세창서관 등에서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장끼타령〉이 소설로 정착된 〈장끼전〉의 각편들은 크게 까투리의 개가와 관련한 서사가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둘로 나뉘며, 세부 내용에 따라 크게 다음의 네 군으로 분류된다. 첫째, 장끼가 덫에 치어 죽는 장면에서 끝나는 작품군, 둘째, 장끼가 죽은 후 여러 새들이 까투리에게 청혼을 하지만 까투리가 거절하는 장면에서 끝나는 작품군, 셋째, 까투리가 동류인 장끼와 재혼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작품군, 넷째, 장끼의 죽음 이후 까투리가 수절하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군이 그것이다. 규방을 중심으로 향유된 가사 〈자치가〉 역시 까투리의 개가 사건으로부터 파생되는 결말이 다양하다. 많은 자녀를 거느린 채 홀로 남겨진 여성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여성 독자들의 관심이 〈자치가〉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조선창극사』에서 정노식은 판소리 열두 마당을 소개하면서 첫 번째 작품으로 〈장끼타령〉을 들었다. 그러나 『조선창극사』가 집필된 1940년대 무렵은 이미 판소리로서의 〈장끼타령〉이 음악성을 거의 잃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1910년대부터 활자본으로 출간된 소설 〈장끼전〉이 인기를 얻고 있었으며, 1940년에 오케 레코드에서 발매된 김연수의 〈쟁끼전〉 음반도 구활자본을 대본으로 삼아 새로 짠 창작판소리였다. 음반 4매에 작품 전편을 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제약에 의해 부분적으로 축약·재편된 측면이 없지 않고, 여러 새들이 통혼하는 후반부 대목이 빠져 있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 작품은 전체적인 구성이나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 세창서관 간행 〈장끼전〉과 일치한다. 1970년대에는 박동진(朴東鎭, 1916-2003)이 실전판소리 복원 작업의 일환으로 〈장끼타령〉을 발표했으며, 2005년에는 국립창극단에서 창극 〈장끼전〉을 공연했다.

실전판소리 일곱마당은 지나치게 기괴한 내용으로 되어 있거나, 정상적이지 못한 인물이 부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끼타령〉의 장끼 역시 뒤틀린 성향의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특이한 인물이나 기괴한 내용은 순간적인 흥미를 끄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즐기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여타의 실전판소리 작품들이 전승 경로에서 점차 이탈하게 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편 중고제의 세력 약화도 〈장끼타령〉의 실전에 영향을 미쳤다. 〈장끼타령〉의 경우 가사나 소설로의 활발한 전승이 지속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보다 음악적 측면에서 경쟁력을 잃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장끼타령〉을 판소리로 완성한 염계달은 중고제의 표준을 마련한 명창이었으며, 『조선창극사』에서는 〈장끼타령〉의 '까투리 해몽 대목'을 더늠으로 보유한 한송학을 중고제 명창으로 분류했다. 중고제의 전승력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그간 중고제 계보를 중심으로 내려온 〈장끼타령〉이 자연스럽게 창을 잃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내용 및 특성

〈장끼타령〉의 구체적인 줄거리는 여러 필사본 및 구활자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본에 따라 후반부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이 가운데 김연수가 구활자본 〈장끼전〉을 바탕으로 1940년에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한 〈쟁끼전〉의 서사는 다음과 같다. 보라매와 몰이꾼, 사냥개, 포수들이 둘러싼 산중에 꿩 부부가 자식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엄동설한에 내내 굶주렸던 장끼는 덩그렇게 놓인 붉은 콩을 발견하고 기뻐서 그것을 먹기 위해 다가간다. 그러자 까투리는 아무리 보아도 수상하니 그 콩을 먹지 말라고 남편을 만류한다. 그러나 장끼는 자신이 지난밤에 옥황님께 문안하고, 콩 한 섬을 상급으로 받는 꿈을 꾸었으니 그 콩을 먹어야 한다고 큰소리친다. 까투리는 이경 초에 쌍무지개가 칼이 되어 장끼의 머리를 베어 떨어뜨리는 흉몽을 꾸었으니, 콩을 먹지 말라고 재차 만류한다.

장끼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것은 자신이 장원급제할 꿈이라고 해몽한다. 그러자 까투리는 자신이 지난 삼경에 장끼가 무쇠 가마를 머리에 쓰고 물에 빠지는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하고, 장끼는 그 또한 자신이 승전대장 될 좋은 꿈이라고 말한다. 까투리는 지난 사경에 장대가 부러져 스물두 폭 구름이 내외의 머리를 덮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지만, 장끼는 우리 내외가 운우지정을 나눌 꿈이라며 오히려 기뻐한다. 까투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명시에 자신이 과부 되어 상복 입을 꿈을 꾸었다는 마로 말리자, 장끼는 크게 화를 내면서 아내를 욕하고 때린다. 까투리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 번 남편을 설득해 보지만, 장끼는 까투리의 말을 모두 무시하고 콩을 먹다가 결국 덫에 치인다. 까투리는 이미 세 명의 남편과 사별한데 이어 네 번째 남편까지 잃게 된 자신의 불쌍한 신세를 자탄하며 목 놓아 울음을 운다.

그 곁에서 함께 탄식하던 장끼는 까투리에게 자신의 맥을 짚고 눈동자를 살펴봐 달라고 한다. 장끼는 자신이 꼼짝없이 죽게 되었음을 깨닫고, 까투리에게 수절할 것을 당부한다. 그때 마침 탁첨지가 나와 덫에 치인 장끼를 발견하고 잡아간다. 탁첨지는 기쁨에 겨워 춤을 추면서 산을 내려가고, 장끼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홀아비 새들이 조상(弔喪)을 핑계로 까투리를 찾아온다. 부엉이, 백두루미, 까마귀 등이 앞 다투어 까투리에게 청혼하지만, 까투리가 선택한 신랑은 홀아비 된 지 3년 되었다는 장끼이다. 다른 새들은 무안해 하며 날아가고, 까투리는 새로 맞은 낭군과 아홉 아들, 열두 딸과 같이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 이듬해 봄, 자식들을 모두 혼인시킨 까투리 부부는 명산대천을 다니며 행복하게 살다가 함께 물에 빠져 조개가 된다. 이를 '치입강수위합(雉入江水爲蛤)'이라 한다.

초기 연구에서는 〈장끼타령〉의 주제를 대개 봉건적 인습과 유교윤리에 대한 여성의 항거에서 찾았다. 봉건적인 가족제도에 대한 여성의 각성과 여권(女權)의 주창, 개가 금지라는 인습에 대항하는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주제를 부각시켰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끼라는 인물은 가부장적 횡포를 일삼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정적인 인물로 풍자되었다. 반면 까투리는 상부(喪夫)를 거듭하는 삶 속에서도 희망과 의욕을 잃지 않는 주체적인 인물로 평가되었고, 까투리의 진지한 성격과 장끼의 뒤틀린 성격은 〈변강쇠타령〉에서 옹녀와 변강쇠가 보여준 성격적 특징과도 비교되었다.

〈장끼타령〉의 주제 연구에 전환이 있게 된 것은, 장끼의 성격적 결함만을 지적하는 데서 나아가 그러한 성격적 결함을 초래한 배경적인 측면에 주목한 이후부터이다. 장끼는 미끼로 놓은 콩을 끝까지 단념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었지만, 이는 극한의 궁핍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장끼가 까투리에게 스스로를 기둥서방이라고 밝힌 데서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이 정상적인 형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까투리가 하룻밤 사이에 잇달아 흉몽을 꾸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장끼의 장례를 치르는 도중에 새끼가 독수리에 채여가고, 장례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겁혼하려는 부류가 나타나는 것도 이들의 빈민적 삶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엄동설한에 먹이를 찾아 위험한 들판을 헤매는 장끼와 까투리는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해 생계가 불안정한 소작농 혹은 일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농촌의 임노동자에 비유된다. 이로부터 봉건 해체기 향촌사회를 살아갔던 하층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에서 〈장끼타령〉의 주제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관련해 〈장끼타령〉과 〈수궁가〉를 비교할 수도 있다. 〈장끼타령〉의 장끼와 까투리가 보라매, 사냥꾼, 몰이꾼 등에게 추격당하는 급박한 상황은 〈수궁가〉 중 '토끼 팔난(八難) 대목'의 내용과 유사하다. 자라는 무서운 총소리도 없고 높은 벼슬도 얻을 수 있는 별천지로 용궁을 묘사하며 토끼를 유인했고, 탁첨지는 덫 안에 붉은 콩을 미끼로 두어 굶주린 장끼를 유인했다. 그러나 〈수궁가〉의 토끼가 지혜와 기지를 발휘해 수궁 세계와 용왕을 조롱한 데 반해, 〈장끼타령〉의 탁첨지는 어떠한 비판도 받지 않았다. 〈수궁가〉가 궁민(窮民)의 문제를 국가 혹은 상층 권력과 연관시킨 작품이라면, 〈장끼타령〉은 죽음이라는 불행을 초래한 장끼 개인의 성격적 결함을 문제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탁첨지로 대표되는 세계의 횡포와 모순에 대한 고발은 없다.

〈장끼타령〉의 주요 등장인물은 장끼와 까투리라 할 수 있다. 장끼는 허위의식과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고집 센 인물로, 폭력적이고 뒤틀린 성격을 지니고 있다. 까투리가 장끼의 죽음을 경고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장끼는 견강부회적인 해몽으로 그 꿈들을 모두 길몽으로 해석한다. 까투리가 계속 만류하지만, 장끼는 이미 그 콩을 먹지 않고 굶어죽으나 먹다가 덫에 치어죽으나 일반이라는 식의 허무주의에 기울어 있다. 까투리의 설득력 있는 주장에도 장끼는 끝까지 아전인수격의 해석으로 일관하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장끼의 어리석은 고집은 〈옹고집타령〉의 옹고집이나 〈무숙이타령〉의 무숙이, 〈변강쇠타령〉의 변강쇠의 고집과도 비견할 만하다. 장끼는 자신을 말리는 까투리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폭력성은 옹녀에게 강짜를 부리며 그녀의 행실을 의심하고 때리는 변강쇠에게서도 볼 수 있다.

장끼는 자신의 성급한 행동으로 덫에 치여 꼼짝없이 죽게 되었음에도, 죽음의 원인을 까투리의 상부살로 돌리는 뒤틀린 성격의 소유자이다. 죽음에 임해 부인이 수절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재차 수절할 것을 당부하는 모습도 장끼와 변강쇠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장끼의 탐욕과 허황된 꿈, 아내를 향한 폭언·폭행과 같은 성격적 결함을 온전히 장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콩 한 알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장끼는, 보라매, 사냥개, 포수 등에게 쫓겨 대가족을 이끌고 겨울 들판을 헤매는 고단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장끼로 대표되는 무전(無田) 농민층은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과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농민층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나타난 몰락 계층에 해당한다. 물론 향촌사회의 빈민으로서 겪어야 했던 간고한 삶의 고통으로 인해 이러한 성격적 결함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장끼의 도를 넘은 허위의식, 고집, 폭력성까지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까투리는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으나, 삶에 대한 애착과 행복을 향한 열망이 강한 인물이다. 장끼가 콩을 먹기 위해 콩을 못 먹어 굶어죽으나 콩을 먹다 덫에 치어죽으나 일반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것과 달리 까투리는 어떻게든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생명력과 현실주의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까투리가 생존만을 중시해 자신의 존엄성까지 버리는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미천한 유랑민 부녀자의 처지를 표상하는 까투리에게 개가란,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과 자식들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까투리는 끝까지 주체적 판단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자 했다. 재물과 위력, 지체 등을 내세워 겁혼하려 드는 뭇새들의 청혼을 모두 물리치고 홀아비 장끼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까투리의 자존감과 주체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몇 차례 혼인을 하지만 남편들이 모두 비명횡사한다는 점, 가정을 영위하고자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는 점, 남편에 비해 비교적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까투리는 〈변강쇠타령〉의 옹녀와 유사한 인물형으로 볼 수 있다. 이본에 따라 홀아비 장끼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정욕을 내세우거나, 오리의 재물에 현혹되어 혼인하는 등 까투리의 돌발적인 형상을 볼 수 있는 사례도 있으나, 이는 까투리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장끼타령〉은 창이 실전되어 구체적인 소리대목이나 더늠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현전하는 소설본 형태의 〈장끼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장끼와 까투리의 수난을 묘사하는 부분은 〈수궁가〉의 '토끼 팔난 대목', 장끼가 죽은 후 문상하러 온 새들이 나이 다툼을 벌이는 부분은 〈수궁가〉의 '상좌 다툼 대목'과 유사하다.

조선창극사』에 한송학의 더늠으로 '까투리 해몽 대목'이 실려 있으나, 실제 내용은 작품 도입부터 장끼의 장례까지 전반부 전체에 걸쳐 있다. 또 사설도 활자본과 동일해, 한송학이 남긴 더늠의 실질로 보기 어렵다.

연희본

〈장끼타령〉의 연희본으로는 김연수(金演洙, 1907-1974)의 〈쟁끼전〉과 박동진의 〈장끼타령〉이 있으며, 이 두 본 모두 활자본 사설에 곡을 붙여 작창한 작품이다. 김연수의 〈쟁끼전〉은 1940년 오케레코드에서 4매의 음반으로 발매되었으며(Okeh 20126 唱劇調 쟁끼傳(一)·(二) 金演洙 長鼓丁元燮, Okeh 20127 唱劇調 쟁끼傳(三)·(四) 金演洙 長鼓丁元燮, Okeh 20128 唱劇調 쟁끼傳(五)·(六) 金演洙 長鼓丁元燮, Okeh 20129 唱劇調 쟁끼傳(七)·(八) 金演洙 長鼓丁元燮), 박동진의 〈장끼전〉은 『판소리연구』(이국자, 정음사, 1988)에 창본이 수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공연정보는 확인할 수 없다.

역대 명 연희자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중고제 명창 염계달한송학이 〈장끼타령〉을 잘 불렀다고 한다. 염계달은 소리공부를 가는 도중에 〈장끼전〉의 사설이 적힌 책을 습득했으며, 한송학은 '까투리 해몽 대목'을 더늠으로 보유했다. 현대 판소리 명창인 김연수박동진이 활자본 〈장끼전〉의 사설을 바탕으로 작창한 작품이 남아 있다.

의의

〈장끼타령〉은 유랑하는 하층민 장끼의 비극적인 삶과 또다시 험난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까투리의 개가가 가지는 현실적인 의미를 다룬 우화(寓話)적인 작품이다. 〈장끼타령〉은 하층민 부녀자의 비극적인 처지와 그 가운데서 야기될 수 있는 가부장제하의 질곡을 다뤘다는 점에서 〈변강쇠타령〉과 구조와 유사하며, 인격화된 동물을 등장인물로 내세워 조선 후기 세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수궁가〉와 비슷한 장르적 특질을 가진다. 판소리사적으로는 염계달한송학이 장기로 보유했던 중고제 위주의 소리이자, 창은 비록 잃었으나 복원을 위한 창작의 노력이 지속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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