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리순장무덤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용산리순장무덤

[ 龍山里殉葬墳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고분 · 왕릉>무덤
유물유적시대 청동기
행정구역 평안남도>성천군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75호

평안남도 성천군 용산리에 있는 옛 무덤. 단군조선의 형성과정과 그 국가의 사회적성격을 해명하는 데서 중요한 실물자료로서 현재 북한 경내에서 처음 알려진 순장무덤이다. 용산리순장무덤은 단군릉으로부터 동북쪽으로 11.5km 떨어져 있으며 무덤의 동남쪽에는 단군조선시기의 ‘신지성’이라고 전해오는 토성이 있다. 그리고 동쪽에는 산성, 서남쪽에는 비류강이 흐르고있다. 강 건너편에는 20여 기의 고인돌무덤들이 분포되어 있다. 무덤은 반지하로 만들었는데 바닥을 다진 다음 무덤칸 벽을 세우고 뚜껑돌을 덮었다.

용산리순장무덤은 한가운데에 동서방향으로 놓인 노예주의 무덤칸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과 서쪽 부분에 대칭으로 3개씩, 북쪽과 남쪽에 대칭되게 각각 2개씩의 노예들의 무덤칸이 있는 11칸짜리 무덤이다. 무덤은 동서가 4.7m, 남북이 3.6m이다. 노예주의 무덤칸은 장방형으로 길이는 2.17m, 너비는 1.04m, 천장까지의 높이는 1.46m이다. 노예들의 무덤칸은 크기가 대체로 비슷하나 그 가운데서 큰 것은 길이 1.3m, 너비 1,22m, 높이 1,58m이다. 노예주의 무덤칸은 한 장의 판돌로 바닥을 만들었으나 노예들의 무덤칸은 돌조각들로 한벌 깔아 바닥을 만들었다. 노예주의 무덤칸바닥은 노예들의 무덤칸바닥보다 한단 높게 하였다.

무덤뚜껑돌은 지금 남아 있는 것만 하여도 길이 3.35m, 너비 2.9m, 두께 0.2m이다. 이 뚜껑돌은 노예주의 무덤칸을 포함하여 북쪽에 2칸, 남쪽에 2칸으로 모두 5칸을 덮고 있다. 남쪽에 있는 무덤의 출입구는 납작한 석회암판돌로 차곡차곡 쌓아 막았다. 11개의 모든 무덤칸에 사람뼈가 남아 있었다. 노예주의 무덤칸에서는 2개체분의 사람뼈가 나왔고 노예들의 무덤칸들에서는 보통 3~4개체씩의 사람뼈가 드러나 모두 30여 명의 노예가 순장되어 있었다. 무덤은 여러 차례 도굴당하였기 때문에 유물은 많지 않다. 노예주의 무덤칸에서는 청동조각들이 나왔고 노예들의 무덤칸에서는 돌거울 1개, 돌도끼 1개, 돌도끼반제품 1개, 팽이토기조각들이 발굴되었다.

용산리순장무덤은 순장무덤으로서의 특징이 뚜렷하다. 그것은 무덤의 짜임새에서의 주종관계, 작은 무덤칸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되는대로 묻은 장법상 특성, 노예주와 노예들의 무덤에서 드러난 유물의 질적차이 등에서 나타난다. 무덤에서 드러난 사람뼈의 절대연대는 단군의 뼈의 절대연대보다 58년가량 앞선다. 따라서 이 순장무덤은 단군조선 성립직전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5,000여 년 전의 무덤인 용산리순장무덤은 당시에 이미 노예주와 노예가 있었고 노예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기구, 권력기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기초 위에서 노예소유자국가인 단군조선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실증하여 준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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