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고린도

[ Corinth ]

‘뿔’이란 뜻. 아덴 서쪽 64㎞ 지점,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아가야 주(州)의 수도이며 항구 도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상 교통과 무역 중심지였고, 동시에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각 나라민족우상들이 총집결한 현란한 우상 도시였다. 한창 번성할 때는 2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고대 운동 경기 등이 치뤄지기도 했다. 또 고린도에는 대략 1천 명 정도의 신전 여사제(창녀)들을 거느리고 있던 사랑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어 온갖 음행이 자행되기도 했다.

바울의 고린도 방문

학문(철학)과 우상 숭배가 극명하게 대립되며 조화를 이루던 고린도에 사도 바울이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제2차 선교여행 때였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베뢰아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본도 출신의 신실전도자요 천막 제조업자인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의 도움을 받으며 고린도에서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다. 고린도에서 마게도냐로부터 온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고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회심으로 복음 사역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다(행 18:1-8).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은 18개월을 체류하며 사역하였다(행 18:11).

고린도

바울 이후의 고린도

고린도의 복음화가 진행될수록 유대인들의 방해도 가열되었다. 결국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로 귀환했다. 이후 고린도 교회는 아볼로가 사역했으나 유대에서 건너온 자들로 점점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고전 3:1-15).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접하고 서신(고린도전서, 55-56년경)을 발송하였다. 그후 마게도냐(빌립보)에서 다시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보냈다(고린도후서, 56년 말경). 그리고 바울은 귀환 길에 고린도에 들러 3개월을 체류하며 교회를 지도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전도하고 개척한 교회 중 가장 큰 교회에 속하고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은 교회였지만 또 가장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던 교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문제 많고 말썽 많은 현대 교회에 좋은 답안을 제시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

고린도 교회 개척자요 설립자인 사도 바울이 떠난 뒤 고린도 교회에는 파벌이 생겨 분쟁이 발생했다(고전 3:3).

① 바울파 - 설립자인 바울을 지지하며 추종하던 분파. 화술이 뛰어났던 아볼로와 달리 바울은 언변(말재주)이 다소 부족하였는데(고후 11:6), 아볼로파 사람들은 이를 빌미로 삼아 바울파를 공격하였다.

② 아볼로파 - 바울의 후임자로 고린도 교회를 지도한 유대 출신 학자 아볼로를 추종하는 무리(행 18:24-28). 성경 지식과 언변이 뛰어나 철학 지식과 체계적 사고를 특별히 좋아했던 헬라 출신 성도들이 여기 속했던 것 같다.

③ 게바파 -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인 베드로(‘게바’는 그의 아람 식 이름)를 추종하는 파. 생전에 주님과 동행하여 주님으로부터 직접 배운 12제자 중 수제자인 베드로야말로 바울이나 아볼로를 능가하는 인물이라 생각하였다. 유대 출신 성도들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리스도 파 -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주장하는 파. 주님의 가르침이나 교훈을 직접 들었다든가, 아니면 오병이어의 기적 등을 체험했다거나, 아니면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다거나 하는 등 주님의 공생애 기간 중 주님과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던 사람들일 것으로 추정된다(Hilgenfeld).

고린도의 우상 숭배

고린도의 우상 숭배는 오늘날 불신 현대인들에게까지 회자(膾炙)될 정도로 유명하다. 고린도는 지중해 연안을 항해하는 헬라, 애굽, 시리아, 가나안, 아시아 출신 선원들이 모두 다 체류하는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세운 신전들이 도시 도처에 있었다. 애굽 사람들이 세운 이시스(Isis)와 세라피스(Serapis) 신전, 에베소를 대표하는 아데미(Artemis) 신전, 수로보니게(Syria-Phoenicia) 사람이 세운 아스다롯(Astarte) 신전, 브루기아 사람들이 세운 마그나 마터(Magna Mater) 신전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유명한 것은 고린도 광장 남쪽의 데메트(Demeter, 풍요여신) 신전, 고린도 해협 북동쪽의 포세이돈(Poseidon, 바다의 신) 신전, 고린도 광장 북서쪽의 아폴로(Apollo) 신전 등이었다.

이 가운데 고린도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고린도 광장 남쪽 아크로고린도(Acro-Corinth) 언덕에 우뚝 솟은 아프로디테(Aphrodite, 사랑의 여신) 신전이다. 고린도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해발 575m 높이의 암반(아크로고린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신전에는 당시 무려 1,000여 명의 여사제(女司祭, sacred prostitute)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사 의식의 일환으로 온갖 음란행위를 자행하였다. 이렇게 음행과 우상 숭배가 일상 생활처럼 만연하다보니 고린도 교인 중에도 아버지의 첩과 동침하는 자들이 있어 교회에 큰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고전 5:1). →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보라.

원어이해

(코린디아조마이)는 ‘고린도인처럼 되다’, ‘고린도 방식으로 산다’는 뜻이다. B.C. 4-5세기경 그리스 시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가 성적(性的)으로 타락하고 부도덕하게 되는 것을 가리켜 처음 사용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영어 ‘Corinthian’(고린도 사람)은 ‘사치하고 방탕한 사람’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