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에 초청된 학생

용궁에 초청된 학생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신앙설화

• 주제 : 신앙
• 국가 : 한국
• 지역 : 황해도
• 참고문헌 : 금오신화

송도(지금 개성) 천마산에 용추(龍楸)가 있는데 이름을 표연(誤淵)이라 한다. 주위는 얼마 되지 않으나 깊이는 알 수 없어 항상 넘치는 물이 백 여 길이나 되어 폭포를 이루고 있다.
경치가 수려하여 유람객이 많이 오는데 예로부터 이 못 속에는 용신이 살고 있다. 하여 나라에서는 때를 맞추어 소를 잡아 제를 지냈다.
옛날 한생(韓生)은 문사로서 유명 하였는데 하루는 서재에 앉아 날이 저물도록 글을 읽고 있노라니 푸른 옷을 입고 두건을 쓴 낭관(郎官) 두 사람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뜰 앞에 엎드려 말했다.
「표연에 계신 용왕님의 분부로 선생님을 맞으려 왔습니다.」
한생은 크게 놀라 얼굴빛을 변하며,
「신과 인간이 서로 길이 막혔는데 어찌 능히 서로 볼 수 있으리오. 또한 물길이 멀고 물결이 험한 터에 어찌 가히 평안히 갈수가 있겠는가.」
「문 밖에 천리준마(千里駿馬)가 있사오니 그것은 염려치 마시옵소서.」
그들은 한생의 소매를 잡고 문을 나오니 과연 준마 한 마리가 황금 안장에 옥굴레가 훌륭한데, 붉은 비단으로 안장 옆에 달았다.
밖에는 또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이고 비딘옷을 입은 자 십여명이 한생을부축하여 말 위에 태우는 것이었다.
일산(曆傘)을 앞세우고 기악(妓樂)을 뒤에 따르게 하여 두 사람이 홀(朝會(조회) 출입시에 일을 기록하려고 가지는 手版(수판))을 잡고 이를 따라가게 하였다.
그 말이 하늘로 나는데 자못 구름이 말굽 아래에 보일 뿐이요, 땅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깜짝할 사이 이내 궁밖에 이르른 모양으로 말에서 내려서 있으니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대개 방게, 새우 자라의 갑옷을 입고 창과 칼이 삼엄하고 눈이 길게 째어졌는데 한생을 보더니 다 머리를 낮추어 서로 절하며 자리에 올라 쉬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이 들어가더니 얼마 안되어 청의동자(靑衣童子)들이 나와서 한생을 인도하여 안으로 들게 하였다.
한생이 길을 옮겨 나아가며 궁문을 우러러보니 현판에 쓰이기를 함인지문(含仁之門 ― 漢陽朝(한양조)의 興仁之門(흥인지문)이라 하는 것과 같음)이라 하였다.
한생이 계속하여 겨우 문으로 들어가니 용왕(龍王)이 절운관(切雲冠 -갓이름)을 쓰고 칼을 차고 홀을 가지고 뜰아래 내려와 맞이하여 대궐 위에 올라앉기를 청하니 곧 수정궁(水晶宮) 안의 백옥상(白玉床)이었다.
한생은 엎드려 사양하며 말하였다.
「하토우민(下土愚民)은 초목과도 같이 썩을, 변변치 않은 존채 이온데 어찌 감히 신위 (神威)를 범하여 외람되이 결에 뫼실 수 있사오리까?」
용왕이 말하였다.
「높으신 성화(聲華)는 들은 지 오래였고 이제 다행히 존안을 뵈옵게 되니 별로 의아히 생각하실 것은 없소이다.」
드디어 손을 이끌어 자리에 앉게 하니 한생은 세번 사양하다가 앉았는데 용왕은 남향하여 칠보(七寶)의 화려한 상에 걸터앉고 한생이 서향하여 앉으려고 할 즈음에 문지기가 여쭤 오매.
「손님이 또 오시나이다.」
하니, 용왕이 문을 나와 맞이하였다. 세 사람의 손이 오는데 붉은 도포를 입고 채색수레를 탄 그 위의 (戒儀)와 행차가 마치 군왕과 흡사하였다.
한생은 들창 밑에 은신하였다가 그들이 좌정하기를 기다리어 뵙기를 청하였다. 용왕은 세 사람을 권하여 동향하여 앉게 하고 밝아서 말하였다.
「마침 문사 한 분이 양계(陽界) 에서 오셨기에 맞이하였으니 당신들은 의아치 마시오.」
하고, 좌우에 명령하여 한생을 들어 오게하고, 상좌에 앉기를 권했으나,
「여러분은 존귀하신 신(神)들이시고 저는 한 사람의 가난한 선비이온대 감히 높은 자리에 않으리까? 진실로 사양하는 바로소이다.」
여러 사람이 일시에 말하였다.
「음양의 길이 비록 달라 서로 통제할 권리도 없거니와 또 용왕님의 위엄이 중하시고 사람을 보심이 밝사오니 선생은 반드시양계의 문학대가이실 것이라, 왕께서 명하시는 대로 ane는 것이 어떠하리까」
용왕이 말했다.
「모두 앉으시오.」
세 사람이 일시에 자리에 앉으니 한생은 끝까지 겸양하여 말석에 꿇어앉았다. 용왕이 다시,
「편히 앉으시오.」
자리가 완전히 좌정이 된 뒤 차가 한 번 돌고 난 다음 용왕이 말 하였다.
「과인에게 무남독녀 외딸 하나 홀로 있는데 벌써 혼인할 시기가 되어 미구에 예를 치를 작정이긴 하나 집이 누추하여 화촉을 밝힐 곳이 없으므로 방금 별당 한 채를 지어 가회각(佳含間 ― 아름다운 모임 하는 집이란 뜻)이라 명명하고 목수들이 모여 건축재를 다 갖추게 되었는데 거기 모자라는 것이 있으니 그게 상량문(上愷丈-들보를 올리는 때 축하하는 글월)이라 소문에 의하면 선생은 고명이 삼한에 드날렸고 재주가 백가(百家)에 으뜸 한다 하기로 특별히 멀리서 초청 하였으니 과인을 위하여 상량문을 지어 주기 바라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푸른 옥벼루와 소상(瀟湘) 반죽(班竹)으로 만든 붓과 이름난 비단 한 폭을 받들어 앞에 꿇어앉는지라 한생은 곧 일어나 붓에 먹을 찍어 줄줄 써내려가니 구름과 내가 얽힌 듯하였다. 그 글월에
「가만히 생각하건댄 이 세상 안에서는 용신이 가장 영험하시어 인물의 사이에서도 배필이 가장 중하시니라. 이미 물건을 윤택케 하신 큰 공이 있으니 어찌 복 받을 터전이 없음이랴.
이러므로 관유(關唯)는 시경(詩經)에 읊었었고 나는 용은 주역에 말함이라.
이리하여 새로 집을 세우고 아름다운이름을 높이 불러 힘을 내고 조개를 모아재목을 삼으며 수정과 산호로 기충을 세우고 용골(絹骨)과 낭간(琰-옥 같은 돌의 이름)으로 들보를 하고 주련을 거두우면 메빛이 푸르르며 구슬 들창을 열 때 골 구름은 둘렀세라.
부부화락하여 백년복록을 누리고 금슬(琴瑟) 상화(相和)하여 금지(金枝-皇談을 이름)가 만세에 뻗게 해 다오.
풍운(風雲)의 별화를 도우며 조화의 공덕을 나타내어 하늘에 오를 때나 낮데 잠길 때나 상제(上帝)의 어지신 마음 돕고 백성들의 목마름을 소생케 해주며 위풍이 친지에 높고 공덕이 원근에 풍족하여 검은 거북과 붉은 잉어는 뛰며 소리치고 나무귀신과 메도깨비도 모두 치하할지라 마땅히 짧은 노래를 지어 들보를 들어 보리라.
들보 동쪽에
「예물을 던지오니, 드높은 산봉우리 저 하늘이 솟았구나. 어느 날 우뢰소리 시냇가에 들려올제 만길 푸른 벼랑 구슬같이 빛나도다.」
들보 서쪽에
「예물을 던지오니, 높은 바위 그윽한 길 산새들은 조잘대고
깊고 맑은 붉은 용추는 몇 길인지 모를래라
푸른 우리 한 이랑이 봄빛 깊어 어리우네」
들보 남쪽에
「예물을 던지오니, 십리 뻗은 송림 남기(濫氣)는 서려오고
뉘 있어 알아 주리 굉장할 손 이 신궁을
푸른 유리 맑은 모양 그림자만 잠겼구나.」
들보 북쪽에
「예물을 던지오니, 새벽 빛 치솟을제 못물은 거울인양
천 베자치 깔렸는 듯 삼백 길 높은
공중 하늘 위 은하수가 여기 편 듯 의심쿠나.」
들보 위에
「예물을 던지오니, 푸른 하늘 횐 무지개손 뻗어 매만질 듯
발해와 부상 땅이 천만리나 되단 말가
인간세계 굽어보니 손바닥만하게 보여」
들보 아래에
「예물을 던지오니, 가련타 봄밭 이랑 아지량이 삼삼할제
원컨대 영원비를 이곳에 가져다가
온 누리에 단비 되어 흩뿌려 주리로고」

원컨대 이 집을 지은 뒤 첫날밤을 치른 뒤에 만복이 찾아와 온갖 상서 모두 모여들어 요궁(瑤宮) 옥전(玉殿)에 구름이 찬란하고 원앙이불과 봉황베개에 즐거움이 비할데 없으리로다.
그 덕을 굳이 나타내지 않사오나 그 영험스러움을 빛내 주옵소서.」
이 때 용왕은 크게 기뻐하여 세 사람 손님에게 보이니 모두들 탄상(嘆賞)치 않는 이가 없었다.
용왕은 곧 윤필연(潤筆宴 ― 人作品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베푸는 잔치)을 열었다.
한생이 꿇어앉아,
「모든 신께서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높으신 존함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하니, 용왕이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양계(陽界)의 사람이라 모르실테지요, 한 분은 조강신(組江神 - 視i江(한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의 신)이요, 두 번째 분은 낙하신(消河神-淋河(한강의 속칭)의 신)이요, 셋째분은 벽란신(斜淵神― 碧瀾渡(禮成江의 中流에 있음)의 신)이오며 선생과 즐기며 놀게 하기 위하여 초대한 것이오.」
이어서 술이 들어오고 풍악을 잡히며 아름다운 여인 십여명이 푸른 소매를 떨치며 꽃을 머리에 이고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춤추며 벽담(榮潭)의 가락을 노래하였다.
「청산이여! 창창하고 푸른 못이여! 출렁이도다.
나는 폭포는 우렁차서 은하수에 닿은 듯 하고
가운데 님 계신 곳 환패 소리 쟁쟁코나
빛나는 위풍이요 거룩하신 얼굴이라
좋은 때와 길한 날에 봉황새 울음 울제
이 집 지어 나는 듯이 천가지 상서 다 모이네
선비를 모셔다가 이 글월 지으시니
높은 덕 노래하여 긴 들보를 올리누나

향기로운 술을 빛음이여 우상을 날릴거나
가벼운 제비처럼 봄볕 향해 뛰노느니
화로엔 매운 향내 낭비에 옥장 끓여
어고를 칠거나 용적으로 행진곡
용왕님 높이 않아 위엄이 장엄하다
높으신 덕 우러러 길이 잊지 못할래라.」
춤이 끝나매 다시 총각 십여명이 왼쪽에서 피리를 가지고 오른 쪽에서는 일산을 들고 회풍곡(回風曲)을 불렀다.

「높은 언덕에 오르시어 온갖 향초 옷을
입고 날은 저물고 맑은 물결 이는도다
물결의 잔주름일랑 비단결 고운 무늬
바람이 쌀쌀함이여 살쩍 위를 스치어라
구름이 너울거림이여 춤추는 양 소매 같아라
수의 자락 휘날림이 뱀의 혀 놀림 같구나
곱고 예쁜 웃음 하냥 몰래 지나가고
나의 홑옷일랑 여울 위에 벗어 놓고
물러 찼던 옥환조차 모래밭에 풀었다네
금잔디에 이슬 젖고 높은 산에 안개 아득
높고 낮은 저 뫼뿌리 밀리서 바라보니
강 위에 푸른 소라 그와 정녕 같을시고
울려 온다 우렁차게 그윽한 동라소리
취한 꿈 너울너울 술은 익어감이여
강물처럼 넘치고 안주는 쌓임이여
저 언덕과 흡사해라 손님도 취하셨네
새 노래 불러 볼까 손 잡고 서로 안고
어깨 치며 웃음 웃고 옥항아리 치는 소리
무진무진 먹사이다 흥겨운 날이여」
춤이 끝나니 용왕은 기뻐 술잔을 다시 부어 권하며 스스로 옥룡저(玉龍笛)를 불고 수령음(水令吟 ― 곡조의 이름) 한 가락을 노래하여 그 기쁜 흥취를 더하게 하였다.

「풍악 소리 유랑한데 또 한 잔을 그득 부어
기린 그린 항아리에 이름난 술 토하도다
처량한 저 피리로 비껴 쥐고 한번 불어
하늘 위에 푸른 구름 쓸어 본들 어떠하리
우렁찬 산울림은 물결을 충동이고
가락은 풍월을 띄워 한가로운 경치
인생은 늙어가네 애닯다 빠른 세월
풍류 또한 꿈이런가 기쁨도 간 데 없네
시름도 많았구나 서산에 끼인 안개
언뜻 선뜻 사라지고 동녁엔 달이 솟네
술 잔 높이 들어 저 달께 물어보세
티끝 세상 온갖 것을 몇 번이나 보고 왔나
금준(金樽)에 술을 두고 님은 벌써 취했고나
옥산(玉岫)이 무너진들 위 있어 밀어제껴
고우신 님을 위해 십년진토 근심 잊고
푸른 하늘 높은 곳에 유쾌하게 놀아보세」
「이 고장의 놀음놀이도 인간 세상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들은 귀중하신 손님을 위해가진 재주를 다 부려봄이 어떠하냐?」
그 중 한 사람이 곽개사(郭介士-게를 말함)라 하며 발굽을 들고 비긴 걸음으로 나와 말하였다.
「저로 말씀하면 바위 굴 속에 숨어 사는 은사(隱士)요, 모랫구멍에서 사는 한가한사람이라, 팔월 바람이 맑고 동해가에 도망(輪芒)을 운수하고 구천(九天)에 구름이 흩어지면 빛을 남정(南井)의 곁에 토하였거니와 속은 누르고 밖은 둥글며 굳은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창을 가졌었소.
재미와 풍류는 가히 장사(壯士)의 얼굴을 좋게 하며 곽삭(郭索-게의 다니는 모습)한 꼴은 부인들의 웃음을 끼치었소. 조륜(趙倫)이 비록 물 가운데서 싫어하나 전비(錢毘)가 항상 외군(外郡)을 생각하였고, 죽으매 이부(吏部)의 손에 마치었으나 신기하여 한진공(韓조公)의 붓을 의탁했도다.
제 장소를 만나서 작회(作戱)하였고 다리를 희롱하여 춤추리라.」
곽개사는 곧장 그 자리에서 갑옷을 입고 창을 잡아 침을 흘리며 눈을 부릅뜨고 사지를 흔들면서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섰다하며 팔풍(八風)의 춤을 추는데 그의 동류가 수십명이고 춤추는 태도는 모두 법에 맞추어 추었다.
이에 노래를 불러 읊었다.
「강과 바다 의지하여 구멍에서 살망정
기운을 토할시면 범과 함께 다투리라.
이 몸이 아홉 자라 임금께 조공하고
겨레는 열 종류니 이름이 호화롭다.
용왕님을 기쁘게 한 구름 같은 이 모임에
발굽 들고 비낀 걸음 깊이 잠겨 있었더니
강나루에 등불 놀라 은혜를 갚으려고 슬피 움이 아니런가
원수를 갚기 위한 빗긴 창이 아니런가
무장공자(山中에서 게를 말함) 웃지 마소. 쌓인 덕이 군자라니
온 몸에 배어 있어 그윽할 손 그 향기여
오늘밤이 어인 밤 요지 (瑤池-서왕모가주목왕을 맞아 잔치한 곳) 잔치 내왔더니
님이여 노래하세 손은 취해 오락가락
황금전 백옥상에 잔을 들어 마시면서
풍악 소리 쉴새 없이 이름난 술 취하도다.
산귀(山鬼)도 춤을 추고 물고기들 뛰놀것다.
메 개암(임금을 섬기는 말)과 들 복령은 님 생각이 절로 난다.」

이에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꺾이어 앞과 뒤로 달리고 뛰고 하는 꼴을 본 만좌 사람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춤추기가 끝마치자 그 중에 한 사람이 스스로 현선생이라 일컬으며 꼬리를 끌며 턱을 느리고 눈을 부릅뜨고 나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시초(蓍叢)에 숨은 자로 연잎에서 노는 사람이오라 낙수(落水)에 글을 지고나오매 성스러운 하우(夏禹)의 공로를 나타내고 송원군(宋元君)이 꾀를 나타내었었소.
신기한 점은 세상의 보배되고 삼엄한 무기는 장사의 기상이라 노오(盧敖―秦나라때의 雇士)도 나를 바라 위에 걸터앉게 하고 모보(毛寶-晋나라때 豫州刺使)는 나를 강물에 내쳤었소.
살아서는 보배요. 죽더라도 영도(靈道)의 보배가 되오리라. 마땅히 한가락의 노래를 불러 천년이나 쌓인 회포를 풀어 보오리다.」
하고, 현선생은 여럿 앞에서 기운을 토하매 실오리 모양 길이가 백여 척이나 되며 그것을 마시며 자취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혹은 그 모가지를 뽑기도 하고 주리기도 하고 물러갔다가 흔들기도 하며 갑자기 뛰기도 하고 천천히 하기도 하다가 이에 구공(九功-본시이름은 功成慶善(공성경선))의 춤을 추는데 홀로 나왔다 홀로 물러가기도 하면서 노래를 읊으니 그 노래에 하였으되

「산과 못을 의지하여 호흡으로 길이 살아
일천년 긴 세월에 다섯번 모이것다.
꼬리는 열인데 흔들어 멋 있을사
내 비록 긴 꼬리를 진흙 속에 끌지라도
묘당에 두어 둠은 내 소원이 아니라
약 없어도 오래 살며 배움 없이 영장이라
성스러운 님을 만나 온갖 상서 풀어내려
수국에서 어른인데 숨은 이치 연구하여
문자 그려 등에 지고 길흉 화복 점치것다.
지혜 비록 많다 해도 곤액이야 어이 하랴
기능을 믿지 말라 못 미칠 일 있으리라
어하들과 벗을 삼아 함께 놀며 지낸다네.
목을 뽑고 발을 들어 높은 잔치 참예하고
님의 조화 변화 무쌍 그것을 지니 (眷)노라
무서운 붓의 힘을 완상하여 마지 않고
술 들이자 풍류 지어 기쁨일랑 그지 없네.
도룡뇽이 춤을 추네 뫼 도깨비 물 신령들
강과 내의 어른들이 빠짐없이 다 모였다.
앞뜰에서 춤을 출 때 혹은 웃고 손벽 치네
날 저물고 바람 불어 고기 뛰고 물결 찬데
좋은 때를 늘 얻으라 내 마음이 감개로워.」

곡조가 끝이 나매 황홀한 그들의 춤은 뛰고 놀고 춤추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이를 구경턴 이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 뒤를 연이어 숲속의 도깨비며 뫼에 사는 괴물들이 각각 그 기능을 자랑하여 휘파람과 노래로써 불고 읊으며 혹은 글을 외우는 자도 있어 그들의 꼴은 다르나 음율은 비슷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이에 강과 내의 어른들인 세 손님도 꿇어앉아 각각 시 한 수씩을 지어 드리었다.
첫째 자리에 앉았던 조강신이 노래를 읊으니

「푸른 바다 조종이라 장할 손 그 기세여
힘찬 물결 이는 속에 가벼운 배 띄웠겄다.
구름이 흩어진 뒤 달은 둥실 솟는고야
조수는 일려 하고 건들바람 섬에 그득
날씨가 따사로니 구어가 출몰겠다.
물결이 맑노라니 오명가명 해오라기
해마다 험한 파도 시달리던 이 몸인데
기쁘도다 오늘 저녁 근심 걱정 다 녹았네.」

둘쨋번으로 낙하신은 읊기를

「오색 찬란한 꽃 그림자째 가리우고
대 그릇과 악기들은 질서 정연 벌려 있네
운모 휘장 둘린 곳에 노래 가락 흘러 나고
수정 주렴 드리운 곳 춤추는 양 더디어라
영험하신 용왕님이 이 못에만 계실것가
아름다운 문사 양반 자리 위에 보배로세
어찌하여 긴 끈 얻어 지는 해를 자아매어
이 좋은 봄 날씨에 취토록 놀고 가세.」

셋째 벽란신은 읊기를

「님께서 취하시와 금상에 의지했네
산 안개 자욱하여 해는 이미 저녁이라
고운 춤 묘한 가락 비단 소매 나부낄 때
맑은 노래 가늘어져 새긴 들보 안고 도네
몇몇 해 외론 삶이 이 섬 속에 보내졌나
오늘에사 기쁠시고 힘껏 취해 잔을 드네
흐르는 세월일랑 뉘라서 알 것인가
고금의 세상 일이 속절 없이 바쁘구나.」
용왕은 그 시를 읽고 저윽이 웃으며 한생에게 주는 것이었다. 한생이 받아 꿇어 앉아 읽어 세 번 다시 완상하고 용왕의 앞에 나아가 이십운(二十韻)을 제목한 긴 시로 성대한 잔치를 묘사하여 그 노래에 하였으되,
「천마산 높은 위에 나는 폭포 뿌리놋다.
바로 솟아 골을 뚫고 쏜살 같이 흐르는 물
시내를 이루었다 물 복판에 달은 잠겨
못 밑에는 용궁이라 변화 무쌍 신변 난사
님의 자취 신기하고 높이 올라 공을 세워
가는 안개 향내 일고 상서로운 바람 일어
상제 앞에 명령 받아 푸른 나라 보살필제
구름 탄 채 조회 받고 말을 달려 비 내리네
궁대궐에 잔치 열고 옥뜰 앞에 풍악 잡혀
흐르는 실안개로 이름난 술잔에 뜨고
맑은 이슬은 연꽃 잎새에 젖네
예법은 더욱 높아 거동은 찬란하고
환패 대홀 의관들이 성세(盛勢)를 자랑컸다
어별(魚瞥)은 축하오고 물신령은 모였세라
조화 황홀하다 숨은 덕이 높을시고
북을 치고 꽃이 되고 술잔 속에 쿠지래리
천녀는 옥저 불고 서왕모는 거문고를
술 한잔 다시 부어 만만세를 축수하리
얼음 같은 과실이요 소반 위에 수정과라
온갖 진미 배부르고 깊은 은혜 뼈에 스며
바닷물을 마신듯이 봉래산에 구경 온듯
즐거웁자 이별이라 풍류도 꿈인 것을.」

시를 지어 보이니 만좌가 탄복치 않는 이 없었다.
용왕이 사례하면서 말하였다.
「마땅히 이 시편을 돌에 새기어 길이 후세에 전하리로다.」
한생은 사례한 뒤 용왕께 청하였다.
「이번 용궁의 좋은 일을 잘 구경하였나이다. 또한 궁전의 광활함과 강역의 웅장함을 한번 구경할 수 있겠나이까?」
「그렇게 하시오 .」
한생이 명을 받고 문을 나오니 다만 오색구름이 주위에 둘려 있어 동서를 가리지 못하였는데 용왕이 명하여 구름을 쓸어 없애게 하자 한 사람이 뜰에 서서 입을 오무리고 공중을 향해 한 번 부니 천지가 별안간 명랑해지고 뫼와 바위들도 없어지며 다못 세계가 보일 뿐인데 평평하고 넓기가 마치 바둑판과 흡사하였다.
거기 온갖 화초가 널려 있으며 금모래가 펼쳐 있고 뜰이 가이 없이 넓은데 다 푸른 유리로 깔아 놓았다. 빛과 그림자가 얼룩이며 번쩍이는데 용왕이 두 사람에게 명하여 지휘하여 관람케하니 한 다락에 이른지라.
그 다락의 이름이 조원지루(朝元之樓-하늘에 조회하는 다락)라 하였는데 그 전체가 파려(拉黎-유리)로써 이루어졌다. 구슬과 옥으로 꾸민 뒤에 금벽(金碧)을 올린 것이었다.
그 위에 올라가매 마치 공중을 밟는 것 같고 층대는 10층이라 한생이 여덟째 층대에 오르려 할 때 사자는
「그만 오르시지요, 용왕님의 신력 (神力)이 아니시면 오르실 수 없습니다. 저희들도 아직 그 위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다락의 윗층은 구름 위에 솟아 보통사람으로는 도저히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한생은 할 수 없이 내려와 또 한 곳에 당도하니 곧 능허지각(凌虛之閒)이었다.
「이 건물은 무엇 하는 곳인가요?」
「상감께서 하늘에 국회하실 때 그의 의장을 정제하고 의관을 장식하시는 곳입니다.」
한생이 또 물었다.
「이것은 무슨 물건인가요.」
「그것은 운모(雲母)로 된 거울입니다.」
또 북이 있는데 크고 작은 것을 한 번 두드려 보고 싶었다. 사자가 한생의 행동을 제지시키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 번만 칠량이면 백가지 물건이다 놀래는 벼락귀신의 북입지요.」
또 하나의 물건이 있었다. 한생이 한 번 흔들어 보고 싶어 하니 사자가 제지하면서
「만약 한번 흔들면 산에 바위가 굴러 떨어 질 것이며 큰 나무도 뽑혀 질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물건이 있는데 빗자루와 같은 것이 항아리- 옆에 놓여 있었다. 한생이 그것을 뿌려보고자 하나 사자가 제지시키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번 부리면 크게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고 물난리가 날 것입니다.」
한생 이 말하였다.
「그럼 어찌하여 구름을 불러일으키는 기계를 마련하지 아니하였소?」
「그것은 상감께서 신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무슨 기계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면 우뢰, 번개, 바람, 비를 맡을 분들은 어디 있는 것이오?」
「네, 그것은 옥황상제께서 그들을 은근한곳에 숨겨 두었다가 왕께서 나오시면 한 곳에 모이게 하지요.」
그 밖에 남은 기구가 많으나 능히 다 알 수 없었다. 또한 긴 복도가 있었는데 길이가 수리(數里)나 되고 문에는 튼튼한 자물쇠를 잠궈 두고 있었다. 한생이 물었다.
「여기는 어디오?」
「이 곳은 용왕밀의 칠보(七寶)를 간수해둔 곳입니다.」
얼마동안을 두루 구경 하였으나 다는 볼 수 없었으므로 한생은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려 하매 문이 겹겹이 닫혀 있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사자에게 길을 인도하라 하고 본래 있던 곳에 이르러 용왕께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대왕의 덕택으로 좋은 경치를 유감 없이 구경 하였나이다.」
한생은 곧 하직하고 인사를 교환하였다. 이에 용왕은 산호반 위에 깨끗한 구슬 두개와 빙초(氷綃) 두 필을 담아서 노자로 준 뒤에 나와 전송할새. 그 세 손님도 일시에다 하직을 고하였다.
용왕은 다시 두 사람을 시켜 메를 뚫으며 물을 헤치는 기구로 한생을 송환하였다.
한 사람이 한생에게 말하기를
「저의 등에 타십시오. 그리고 눈을 감으시고 반식경만 계십시오.」
한생이 그 말대로 하였더니 한 사람이 기구로써 선도하는데 흡사 허공 위로 나는 듯하였다.
오직 바람과 물소리뿐이었다.
그러나 옮기는 소리는 들리지 아니하였다. 이윽고 소리가 끝나매 멈추어 눈을 뜨니 동방이 장차 밝으려 하였고 닭이 세 홰나 쳤고 오경 때가 되었다. 급히 그의 품속을 뒤지니 아까의 그 구슬과 빙초가 있었다. 한생은 그것을 깊이 간직하여 남에게 보이지 아니 하였다.
그 뒤 한생은 이 세상의 명리(名利)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아니하며 명산에 들어가 그 마친 바를 알지 못하였다

<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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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