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다나 태자

스다나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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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신앙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태자수대격경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인도에 요하라는 큰 나라가 있어 六十개의 작은 나라와 八백 개의 마을이 그에 속하고 있었다. 그 나라 왕은 싯파라고 하였고 四十명의 대신을 거느리고 五백 마리의 큰 코끼리를 가지고 있었다.
왕은 五백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아들은 하나도 없었다. 왕은 이것을 걱정하고 하루는 여러 신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기도했다. 그 효염이 있었는지 한 부인이 왕의 씨를 잉태하였다.
왕은 이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여 손수 부인을 간호하고 침구도 음식도 모두 부드럽고 감미롭게 해주었다. 달이 차서 구슬 같은 태자가 태어났다. 그래서 궁중에 五백명의 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춤추어 기뻐한 나머지 자연히 젖이 넘쳐흐를 정도였다. 이 태자에게는 스다나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네 사람의 유모가 딸렸다. 한 사람은 태자에게 젖을 주고 한 사람은 안아주는 역할, 한 사람은 목욕물 담당, 한 사람은 놀이의 담당이었다.
이렇게 해서 태자가 十六세가 되자 왕은 따로 궁전을 지어 거기에 살도록 하였다. 태자는 모든 학문을 익히고 모든 기예()에 통달하여 부모 섬기기를 신을 모시듯 하였다 태자는 어릴 때부터 보시를 즐겨하고 인간은 물론 새나 동물까지도 사랑하여 누구에게든지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태자는 커서 마지라는 공주를 태자비로 맞이하였다.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이었다.
태자와 태자비 사이에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태어났다.
어느 날 태자는 왕의 허락을 받아 성을 나가서 사방을 즐겁게 구경하고 다녔다. 태자가 납시었다는 말을 듣고 거지와 귀머거리, 장님과 벙어리들이 길에 모여들어서 보시를 빌었다. 태자는 이것을 보자 차를 돌려 궁정으로 돌아가더니 시름에 잠기고 말았다.
이것을 걱정한 왕은 태자를 불러,
『너는 즐겁게 성밖을 구경하고 돌아오고나서 무엇을 그렇게 근심하고 있는가?』
『저는 성 밖에 나가서 많은 거지와 장님과 귀머거리, 벙어리를 보고 나서는 그들이 불쌍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태자를 사랑하는 왕은 이 말을 듣고 쾌히 승낙했다.
『어떤 소원인지 모르겠으나 네가 부탁하는 것은 다 들어줄터이니 말해봐라.』
『제 부탁은 창고에 있는 진기한 보물들을 모두 성문과 네거리에 쌓아두고 누구든지 희망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일입니다.』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그래서 태자는 부하에게 명령하여 수레에 가득히 진기한 보물을 모두 성문과 네거리로 나가 누구든지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귀중한 보배라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 소문은 곧 사방으로 퍼져 백리, 천리, 만리나 되는 먼 곳으로부터 태자의 덕을 흠모하여 모이는 사람이 구름과도 같았다 태자는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이 소문을 들은 적국(敵國)의 왕은 많은 신하와 도사를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싯파왕은 스덴이라는 큰 백상(白像)을 가지고 있다 이 코끼리는 힘이 센데다가 아주 날쌔어서 어떠한 전쟁이든지 이 코끼리 때문에 이긴다고 한다. 누가 가서 이 코끼리를 태자에게서 얻어올 사람은 없겠는가?』
많은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무리 태자가 보시를 즐겨 한다해도 그 코끼리만은 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八명의 도사(道士)들은 그럴리 없다고 하며 왕 앞에 나서서,
『우리들이 얻어가지고 오겠습니다. 아무쪼록 양식을 지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왕은 당장에 그들에게 양식을 주고 도사에게 말했다.
『그 코끼리를 가지고 온 자에게는 많은 상을 내리겠다.』
도사들은 용기 백배하여 왕과 이별하고 많은 산천을 건너서 요하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태자에게 달려가,
『궁전 앞에 八명의 도사가 지팡이를 짚고 한 발을 들고 서서 태자에게 부탁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자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친히 마중을 나가 정중히 대접을 하고 물었다.
『당신들은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八명의 도사는 입을 맞추어,
『태자께서 보시를 즐겨하시고 어떠한 물건이든 거절하시지 않는다는 소문은 사방에 퍼져 태자의 덕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소문은 참말인지요, 만약 정말로 어떠한 물건을 부탁해도 상관이 없다면 큰 백상인 스덴을 얻고 싶습니다마는.』
태자는 코끼리를 한 마리 끌고 와서 도사에게 주었다. 그러나 八명의 도사들은,
『우리들은 큰 백상인 스덴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그 코끼리를 받지 않았다. 태자는,
『부왕께서 저 코끼리를 사랑하시기를 나를 사랑하시는 것과 다름 없다. 그 코끼리만은 당신들에게 드릴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코끼리를 드린다면 나는 부왕으로부터 어떤 꾸지람을 들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단 이렇게 말하고 거절했지만 다시 생각하기를,(나는 어떠한 물건이든 절대로 거절하지 않고 보시를 하기로 맹세했다. 만일 그 코끼리를 주지 않는다면 나의 맹세에 어긋나고 만다. 내 맹세를 배반할 수는 없다.)
하고 결심하여 도사에게 향하여,
『좋습니다. 큰 백상인 스덴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신하에게 명령하여 금으로 만든 안장을 얻어서 코끼리를 끌어오고 왼손에 물을 들고 도사의 손을 씻어주고 오른 손으로 코끼리를 끌어 도사에게 주었다. 도사는 태자에게 감사를 드리고 백상을 타고 용약 제 나라로 돌아갔다.
그들과 헤어지게 되자 태자는 도사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빨리 이 나라를 떠나십시오. 만약 국왕께서 이것을 아신다면 다시 빼앗고 마실 겁니다.』
八명의 도사는 코끼리를 끌고 날 듯이 도망가 버렸다.
곧 여러 신하들이 이것을 알고는 크게 놀래었다.
『우리나라는 이 코끼리 때문에 적국을 막고 있었는데 그 코끼리를 적에게 넘겨주다니 큰일났다.』
여러 신하들은 왕에게 달려가서,
『임금님, 태자께서 나라의 보배인 큰 백상을 적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왕도 놀래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러 신하는 태자의 잘못을 비난하면서 말했다.
『임금님께서 천하를 다스리게 된 것도 그 코끼리의 덕택이 아닙니까. 그 코끼리는 능히 六十마리의 코끼리와 상대해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태자는 그것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제 요하국의 멸망은 눈앞에 다가온 셈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태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보시를 하여 국고(國庫)는 나날이 비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二,三년 내에는 나라도 처자도 모두 남에게 베풀어 주어버리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은 여러 신하의 호소를 의심하여 남몰래 근신()을 불러 그 사실 여부를 알아보게 하였다. 조사를 한 근신이 왕에게 말했다.
『틀림없이 태자는 코끼리를 적국의 도사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설마하니 생각하고 있었던 왕은 너무나도 놀랜 나머지 의자에서 일어나서 기절하고 말았다. 근신들의 간호 덕택으로 얼마 후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五백명의 부인도 이 말을 듣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왕은 곧 여러 신하를 모아 놓고 태자의 처치를 협의했다.
한 신하는,
『발로써 코끼리 마구간에 들어갔으니까 그 발을 잘라야 한다. 손으로 코끼리를 끌고 나왔으니까, 그 손을 잘라야 한다. 눈으로 그 코끼리를 보았으니까 그 눈을 도려내야 한다.』
한 신하는,
『머리를 베어야 한다.』
여러 신하는 모두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왕은 이 무서운 말들을 듣고
『내 아들은 도를 깨우치기 위해서 보시를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극형에 처할 수 있겠는가.』
고 말하고 여러 신하들을 달래었다. 그중에 한 대신이 일어서서 여러 신하의 주장을 물리치고,
『그럴 수는 없다. 임금님에게는 오직 한 분의 태자가 아닌가 그런 처참한 형은 내릴 수 없다.』
고 말한 다음에 왕에게 말했다.
『태자를 十二년 동안 내쫓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산중에 들어가서 죄를 참회하도록 해주십시오.』
왕은 할 수 없이 이 대신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곧 태자를 불러냈다.
왕은 태자에게,
『너는 백상을 적국의 도사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그게 참말인가?』
『네, 주었습니다.』
『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백상을 적에게 주었는가.』
『저는 아버님으로부터 아버님의 것이면 무엇이든 주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보물은 허가했지만 그 백상만큼은 예외이다.』
『그러시다면 그 백상은 아버님 것이 아닙니까?』
왕은 태자와 입씨름을 해봤자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여하튼 너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十二년 동안 단도무산에 들어가서 살도록 하라.』
고 명령했다. 그러자 태자는 왕에게,
『알았습니다. 말씀은 절대로 어기지 않겠사오니 제게 이곳을 떠나기 전 七일 동안 최후의 보시를 베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냈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거냐, 네가 하는 보시 때문에 국고는 텅텅비고 더구나 나라의 보배인 백상을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너를 국외로 추방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다시 七일간 보시를 하겠다고 하니, 어떻게 그것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빨리 이곳을 떠나도록 하라.』
『아버님 말씀에 배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에게는 약간의 재산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보시하고 나서 떠나고 싶습니다. 절대로 국가의 재산은 축내지 않겠습니다.』
五백명의 부인들도 왕 앞에 나서서 태자의 최후의 소원을 들어주도록 간청했다.
왕도 할 수 없이 이를 허락하였기 때문에 태자는 신하에게 명령하여,
『재산을 얻고자 하는 자는 七일 동안 태자궁(太子宮)의 성문으로 오라.』
고 사방에 알리도록 했다. 이에 가난한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태자는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진기한 보물을 주었다. 이리하여 七일동안에 태자의 재산은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드디어 궁성을 떠날 날이 왔다.
태자는 태자비인 마지를 불러,
『나는 대왕님의 노여움을 사서 十二년 동안 단도무산에 가서 살아야 한다.』
고 말했다. 태자비는 놀래어,
『무슨 일로 노여움을 사셨습니까.』
『내가 너무나 보시를 했기 때문에 나라가 가난해지고 또 큰 생상인 스덴을 적의 손에 넘겨주어 나라가 약해졌다. 그 때문에 부왕과 대신이 화를 내며 나를 내쫓는 것이다.』
마음이 고운 마지는 이 말을 듣고 빌었다.
『아무쪼록 나라가 풍요해져서 대왕님을 비롯하여 나라안 백성들이 편안해 지시기를......』
『우리들은 함께 산중에 들어가서 열심히 도를 닦읍시다.』
태자는 이 가련한 소원을 물리치고,
『단도무산은 무서운 산이다. 호랑이와 늑대 등의 맹수가 많고 비바람과 눈이 심하여 추울 때는 아주 춥고 더울 때는 굉장히 덥다. 땅에는 가시덩쿨과 자갈 독벌레가 많이 있어서 편안한 궁중생활을 해 온 너는 도저히 살 수 없다. 가벼운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만을 먹고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풀밭에서 자고 나무열매를 따먹고 살수 있겠는가.』
그러나 마지의 결심은 굳었다.
『아름다운 옷과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 당신에게 시집온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당신과 헤어서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하시든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당신이외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당신이 보시를 할 때는 나도 같이 했습니다. 당신이 이 나라를 떠나신 후 보시를 베풀어 받고자 오는 사람들에게 저는 뭐라고 대답을 하란 말입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 올 때마다 나는 당신 생각에 말라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태자는 마지에게 말했다.
『나는 어떠한 물건이든 그것을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아들을 욕심내면 아들을 주어야 하며 아내를 갖고자 하면 당신도 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의 보시는 허사가 되고 만다. 그래도 너는 나하고 함께 가고 싶다는 것인가.』
『당신 말씀을 따르겠으니 저를 데리고 가 주십시오.』
『그만한 결심이 있으면 따라오시오.』
이리하여 태자는 태자비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 앞에 나가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대왕님이 그릇된 정치를 할 때는 이를 타이르시고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어머니는 태자와의 이별을 슬퍼하여,
『나는 대왕님을 모신 후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오직 하나 뿐인 내 아들이 나를 버리고 간다. 내 심장이 터져서 죽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너를 낳아 이렇게 키울 때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던 것일까, 이제 와서 나를 버리고 가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다른 부인들은 마음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대왕님도 앞으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빨리 네가 돌아오도록 제전(제전)에 기도하고 있겠다.』
태자는 태자비와 두 아이를 데리고 눈물 속에 어머니 방을 나섰다.
五백명의 부인은 각각 한 묶음의 진주를 四천명의 대신은 칠보(七寶)의 꽃을 이별의 선물로 시 태자에게 주었다. 태자는 그것을 받고 정든 궁전을 떠나 고행(苦行)의 첫발을 내디뎠다. 성문을 나서기까지에 견주와 보화(寶貨)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었다. 전송하는 수심만의 백성들은 모두,
『태자는 이 나라의 보배이다. 왜 이 보배를 국외로 추방하는 것일까. 슬픈 일이다.』
하고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태자는 성문을 나서자 큰 나무 밑에 앉아서 그곳까지 전송해 준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되돌려 보냈다.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되돌아갔다.
태자는 마차에 태자비와 두 아이를 태우고 자기는 말에 올라타 멀고 먼 단도무산을 행해서 출가했다. 얼마큼 가 어느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한 바라문이 와서 말을 달라고 빌었다.
태자는 마차의 말을 끌러 주었다. 그리고 두 아이를 수레에 태워 태자비로 하여금 뒤를 밀게 하고 자기는 앞에서 끌며 걸어왔다.
얼마동안 가니 또 한 사람의 바라문이 와서 수레를 달라고 빌었다. 태자는 당장에 두 아이들을 내리게 하여 수레를 주었다. 또 얼마동안 가니 또 한사람의 바라문이 와서 보시를 빌었다. 태자는 베풀 길이 없어서,
『뭣이든 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 미안스럽게 말하자 욕심이 사라운 바라문은,
『아무것도 없다면 당신 옷을 벗어주십시오.』
태자는 당장에 옷을 벗어 주었다. 또 얼마만큼 가니 바라문이 와서 보시를 빌었다. 태자는 태자비의 옷을 벗겨 주었다. 또 얼마동안 가니 바라문이 와서 보시를 빌었다. 태자는 두 아이들의 옷을 벗겨주었다.
태자는 말도 돈도 의복도 모두 다 주어버렸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태자는 아들을 업고, 태자비는 딸을 업고 하여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단도무산을 향하여 걸어갔다.
단도무산은 요하국에서 천여리나 떨어져 있다. 걸어가는 동안 태자 일행은 사막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아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생하면서도 계속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갔다.
하늘은 이것을 보고 불쌍히 여겼음인지 사방 한가운데에 환상(幻相)의 도성(都城)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 앞에는 엄중한 성벽이 둘러있고, 아름다운 집들이 줄지어 서고 푸른 숲을 가진 도성이 나타났고 아름다운 음악도 들려왔다. 성문에 이르자 안에서 한 사나이가 나와서 일행을 맞이하고 성안으로 안내했다. 태자는 여기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부드러운 잠자리에서 몸을 풀고 즐거운 음악으로 마음을 위로하여 겨우 한숨을 돌렸다.
마지는 크게 기뻐하여 태자에게 말했다.
『여기서 얼마동안 묵고 갑시다.』
그러나 엄격한 태자는 이 말을 가로막고,
『부왕님은 나에게 단도무산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머문다면 아버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되어 안 된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두 아이를 등에 업고 즐거운 도성을 뒤로 하여 여행을 계속했다. 도성을 나와 되돌아보니 있었던 성이 자취도 없어 사라지고 말았다.
도성에서 용기를 얻은 태자일행은 마침내 단도무산 모퉁이에 도착했다. 산밑에 깊은 강이 있어서 건너가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자 마지는 태자에게,
『잠시 이곳에서 살면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립시다.』
그러나 엄격한 태자는 듣지 않았다.
『부왕님은 나에게 단도무산으로 가라고 하셨다. 여기에 머문다면 아버지의 명령에 어긋난다.』
이렇게 말하고 태자는 눈을 감고 정좌(靜坐)하고 빌었다. 그러나 강 속에서 큰 바위가 솟구쳐 올라오더니 물을 막았다. 태자와 태자비는 두 아이들을 얻고 바지자락을 걷어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가자마자 태자는 강을 향하여,
『옛대로 다시 흘러가라, 만약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이 있거든 그는 건네라.』
이렇게 말하자 바위는 없어지고 강은 그전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우러러보니 산은 험하게 하늘에 솟구쳐 있고 나무가 우거져 갖가지 새가 숲속에서 울고 있고 맑은 물은 바위틈에 흐르고 나무열매도 많으며 물은 맑았다.
태자는 태자비를 돌아다 보고,
『 이 산은 참으로 자연의 낙토(樂土)가 아닌가, 이 맑은 물을 마시고 이 맛있는 나무열매를 먹고 이 산중에서 도를 닦고 있는 신선이 틀림없이 있는 것이다.』
산중의 새와 짐승들은 태자를 즐겁게 맞이했다. 태자가 생각했던 대로 산 위에는 아슈다라는 한 신선이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五백살이 되었고 이상한 덕을 갖추고 있었다. 태자는 먼저 신선을 방문하여 산의 사정을 물었다.
『신선님, 저는 도를 닦기 위해서 이 산에 들어왔습니다만 어디에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샘물도 가깝고 나무열매도 많은 곳은 어딥니까.』
『이 산은 복지(福地)이다. 어디에서든 살 수 있다.』
그는 태자가 처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이 산은 성역(城域)이다. 구도(求道)의 장소이다. 어째서 처자를 데리고 오셨는가.』
태자가 미쳐 대답을 하기 전에 마지가 신선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 산에 들어오셔서 도를 닦은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제 四,五백년은 될 것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수행하고 계셨군요.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어서는 영원히 깨우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이 산중에 계셨다지만 여기에 있는 나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일에서 떠나면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승(小乘)의 도를 닦고 있었던 신선은 마지의 말을 듣고 감동하였다.
『저는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신선과 태자비와의 문답이 끝나자 태자는,
『당신은 요하국의 태자 스다나라는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소문은 자주 들었습니다만 아직 뵌 적은 없습니다.』
『내가 바로 그 스다나입니다.』
『아아 그러십니까. 그런데 태자께서는 어떤 도를 구하고 계십니까?』
『저는 대승(大乘)의 도를 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보시의 행위야 말로 대승의 도입니다. 당신은 머지않아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깨우침을 얻으셨을 때는 저를 첫 번째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신선은 친절하게 살기 좋은 장소를 지시해 주었다. 태자는 신선과 같이 머리를 따고 샘물을 마시고 나무 열매와 풀의 열매를 먹으며 이 산에서 살게 되었다.
그들은 나무와 풀로 세 개의 조그만한 오막집을 지었다. 그 하나에는 태자가 살고, 다른 하나에는 태자비가 살며, 나머지 하나에는 두 아이들이 살았다. 아들은 이름을 야리라고 하여 일곱 살이었고 딸은 케나인이라고 해서 여섯 살이었다. 야리는 풀로 만든 옷을 입고 아버지와 함께 출입하고 케나인은 사슴가죽의 옷을 입고 어머니와 함께 다녔다.
태자가 이 산에 살게 되면서부터는 산 전체가 화기에 가득찼다. 산중의 짐승들은 즐겁게 태자의 뒤를 따르고 메말랐던 못에서도 물이 솟고, 시들었던 나무에서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졌으며 독충도 없어졌다. 지금까지 고기를 먹고 살던 짐승들은 풀을 먹게 되고 과일은 예전보다 많이 열려 갖가지 새들은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마지는 물을 깃고 나무 열매를 따서 태자와 두 아이들을 길렀다. 두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서 물가에서 새와 짐승들과 즐겁게 놀다가 지쳐서 그곳에서 쓰러져 자는 일도 있었다.
하루는 야리가 사자의 등에 업혀서 놀다가 사자가 뛰는 바람에 떨어져서 얼굴에 상처를 입어 피가 약간 나왔다. 사자는 곧 나뭇잎을 따서 야리의 피를 닦아 주고 물가에 데리고 가 씻어주며 야리를 위로했다. 태자는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금수에게도 저렇게 착한 마음씨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이 인적이 없는 먼 산에서 참으로 즐거운 세월을 보냈다.
마침 이 무렵 쿠르라는 나라에 한 가난한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데다가 굉장한 추남이었다. 온 몸은 칠흑 같은 새까맣고, 얼굴은 야위어 세모꼴에 뼈만 남아 있고, 코는 납짝하고 두 눈은 튀어나오고, 입술이 두껍고 입이 크며, 거기에다 말더듬이고, 배는 앞으로 나왔고, 허리뼈는 뒤로 굽고, 발은 뒤틀리고, 머리는 벗겨져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추하고 무서운 모습이었다.
이 바라문은 四十살이 넘어서 한 여자를 얻었는데 그 여자가 격에도 맞지 않은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추한 얼굴을 싫어해서 그가 죽어 주었으면 하고 남편을 저주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가 물을 길러 나가자 젊은이들이 여럿이 모여서,
『너같은 미인이 어째서 저런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느냐?』
하고 조롱했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 모습과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웃어댔다.
그러자 그녀는 젊은이들에게,
『그놈의 늙은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쉽게 죽을 것 같지가 않단 말야.』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집에 돌아가 엉엉 울면서 바라문에게 말했다.
『오늘 물을 길러 나갔더니 젊은 놈들이 나를 비웃어 죽고 싶었어요. 머슴이나 식모를 두세요. 그러면 내가 물을 길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물을 길러 나가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비웃지도 않겠지요.』
『나는 가난뱅이다. 이런 집에 식모나 머슴이 올 사람이 있겠는가.』
『식모나 머슴을 구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과 같이 살지 않겠어요. 참 당신은 스다나 태자의 이야기를 들었소. 임금한테 쫓겨서 지금 어딘가 산에 들어가 있어요. 태자에게는 사내아이와 계집애가 있어요. 그들을 얻어오면 되지 않아요.』
『농담하지 마소 거처도 모르고 어떻게 찾아간단 말이요. 딴데서 한 번 구해보도록 합시다.』
『가주지 않는다면 좋아여. 내가 죽어버릴테니.』
『알았어, 가지. 네가 죽으면 난 어떻게 하라고. 갈테니 음식을 준비해 주게.』
『그냥 가요. 음식이 어디 있어요.』
바라문은 할 수 없이 자기 손으로 음식준비를 하고 태자를 찾아 나섰다.
바라문은 먼저 요하국에 가서 궁성 앞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물었다.
『스다나 태자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문지기를 곧 왕에게 보고했다.
『지금 문밖에 어떤 바라문이 와서 태자의 거처를 묻고 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 놈들 때문에 태자는 쫓겨나간 거야. 또 왔단 말이지.』
왕은 그 바라문을 들게 하여,
『불은 장작을 지피면 더욱 타오른다. 나의 괴로움은 지금 불과 같다. 태자를 찾아오는 사람은 장작이다.』
이렇게 말하고 바라문을 타일렀다.
『태자의 덕은 도처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저는 멀리서 태자를 흠모하여 온 것입니다.』
『태자는 지금 깊은 산중에 홀로 살고 있다. 너에게 베풀어줄 것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
『저는 태자로부터 보석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번이라도 태자의 거룩한 모습을 뵙는다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왕은 바라문의 그럴듯한 말에 속아 단도무산에 이르는 길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는 겨우 단도무산에 이르러 산중에 들어가서 태자를 찾다가 한 사냥꾼을 만났다. 그는 사냥꾼에게,
『너는 이 산에 살고 있는 스다나 태자의 집을 알고 있는가.』
사냥꾼은 욕심이 많은 바라문들 때문에 태자가 이 산에 쫓겨 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당장 그를 붙잡아 나무에 묶고 피가 나도록 매질을 하고 저주하며 말했다.
『너를 주여서 네 살을 먹어버려야겠다. 태자님이 계시는 곳으로는 못 갈줄 알아라.』
바라문은 여기서 죽었다가 큰일이어서 꾀를 내어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 내 말을 들어주게.』
『무슨 말이야, 말해봐.』
『나는 부왕님의 명령을 받아 태자를 모셔가려고 온 사람이다.』
이 말을 듣고 정직한 사냥꾼은 크게 놀래어 곧 그를 풀어주고는 큰 절을 하고 사과하며 태자가 살고 있는 집을 자세히 일러주고 난처한 듯이 산을 내려가 버렸다.
그래서 드디어 바라문은 태자의 집으로 올라갔다.
태자는 바라문이 오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크게 기뻐하여 일어서서 그를 맞이하고 정중하게 절하며 말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얼마나 피로하십니까?』
『저는 멀리서 왔기 때문에 온 몸이 쑤셔서 견딜 수 없습니다. 또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죽겠습니다.』
태자는 바라문을 오막집으로 안내하여 나무열매와 풀 열매, 미움과 물을 내어 정중하게 대접했다.
기운을 차린 바라문은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쿠르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오래전부터 당신 이름을 듣고 그 덕을 흠모하여 왔습니다. 저는 대단히 가난하기 때문에 당신을 만나 보시를 베풀어 받고자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당신에게 보시를 할 수 없어 슬프게 생각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나는 지금 무일푼입니다.』
『그러시다면 당신의 두 아이를 급사로 쓰게 저에게 주십시오.』
바라문은 세 번 태자에게 요구했다. 태자는 결국,
『멀리서 일부러 찾아 오셔서 말씀하시니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놀러나가 있는 두 아이들을 불러 말하기를,
『이 아저씨가 저희들을 데려가고 싶다고 멀리서 오셨다. 아버지는 너희들을 줄 약속을 했으니 이 아저씨와 같이 가도록 해라.』
두 아이들은 놀라서 아버지 뒤로 숨으며,
『아버지, 이 사람은 바라문이 아니고 귀신입니다. 어머니는 아까 나무열매를 따라가서 아직 안올라 왔습니다. 그 동안에 이 귀신이 우리를 잡아먹는다면 어머니가 돌아 오셔서 얼마나 슬퍼하실까.』
이렇게 외치며 울었다.
『아버지는 이미 약속을 해버렸다. 이제 취소를 할 수는 없다. 저 아저씨는 귀신이 아니야. 너희들을 잡아먹는 않을 것이니 얌전하게 함께 가도록 해.』
바라문은 이 광경을 보고 태자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오면 도저히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당신도 마음이 변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보시를 하고 난 뒤에 후회한 일이 없다.』
태자는 물을 따라서 바라문의 손을 씻어주고 두 아이를 바라문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서 두 손을 땅에 짚고 말했다.
『우리들은 저승에서 무슨 나쁜 일을 했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일까요. 국왕의 집안에 태어나 남의 머슴과 식모가 되다니, 이승에서 우리의 죄를 멸하고 앞으로는 이러한 고통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태자는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은 서로 사랑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무상(無常)이다. 어떠한 것도 언젠가는 부서지고 만다. 나는 상주불멸(常住不滅)의 깨우침을 얻었을 때 제일 먼저 너희들을 구해주겠다.』
『어머님이 돌아오시거든 저희들 대신에 말씀해 주십시오.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다고. 우리들은 저승의 죄라고 체념하겠지만 뒤에 남는 어머니는 얼마나 걱정하실까요. 그것만이 걱정입니다. 그렇게 전하여 주십시오.』
인정도 모르는 바라문은 태자에게,
『나는 나이 늙어서 힘이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도중에 나를 버리고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도망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을 묶어서 저에게 주십시오.』
태자는 할 수 없이 두 아이들의 손을 묶어서 바라문에게 주었다 그는 두 가닥의 끝을 잡고 잡아끌었다. 그러나 두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라문은 화를 내어 매를 들어 쳤다. 피가 땅위에 흘렀다. 태자도 이것을 보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태자는 저승에서 정해진 일인가 생각하고 눈물을 닦고 많은 금수들과 함께 아이들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전송했다.
두 아이들은 도중까지 가다가 아무래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대로 떨어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 자기들을 묶은 끈을 나무에 둘둘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바라문은 매를 들어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이 매질을 참지 못하여 두 아이들은 바라문에게,
『그렇게 때리지 마십시오. 이제 같이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보고,
『산의 신령님도 나무의 사령님도 꼭 어머니에게 전해 주십시오. 나무 열매는 고만 따고 저희들에게 달려와 달라고 말해주십시오. 우리들은 어머님을 만나지 못하고 먼 나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그들의 어머니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들은 바라문에게 끌려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숲속에서 나무열매를 따고 있던 마지는 이상하게도 왼쪽 발바닥이 간지러 오더니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양쪽 유방에서 젖이 흘러 나왔다.
『참 이상한 일도 있구나, 이것은 뭔가 나쁜 징조이다. 아이들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애써 딴 나무열매를 버리고 허겁지겁 돌아왔다.
도중까지 오자 길 한 가운데 사자가 한 마리 누워있어 앞으로 갈 수 없게 되자 마지는 사자를 보고,
『너는 짐승의 왕이 아니냐, 우리들도 안간의 왕이다 제발 내 소원을 들어다오, 우리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길을 비켜 내가 가도록 해 다오.』
그러나 사자는 일어서서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지는 그곳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 사이에 두 아이들은 바라문이 끌고 가버렸다. 이 사자야말로 태자의 보시를 완전히 끝낼 수 있도록 하늘이 보낸 것이었다.
마지가 돌아와 보니 태자가 혼자 않아 있을 뿐 두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막집안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항상 놀러가는 물가로 가 봤으나 거기에도 없었다. 함께 놀아주던 사슴과 원숭이와 사자는 있었으나 그녀가 두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미치다시피 태자에게 달려갔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태자는 묵묵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욱 겁이 나서,
『내가 돌아오면 아이들은 나에게 튀어오며 좋아합니다. 내가 앉아 있으면 내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주어버린 것이 아닙니까. 내 심장이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발 나를 미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녀는 세 번이나 하소연했다. 그래도 태자는 묵묵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참다 못해 태자를 흔들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당신이 한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는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태자는 고개를 들어 공손히 말했다.
『쿠르국의 바라문이 한 사람 와서 두 아이들을 달라고 하기에 나는 할 수 없이 주었소.』
마지는 이 말을 듣자 말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울었다. 몸을 비틀고 가슴을 치고 땅에 딩굴며 슬피 울었다.
『우는 것은 구만 두고 내 말을 들으시오.』
태자는 마지의 등을 어루만져 주면서 두 아이의 과거의 인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과거 제화갈라불(提和渴羅佛)의 시대에 우리들 두 사람이 어떠했는지 알고 있소. 나는 그때 하다이라는 바라문의 아이들이었소. 당신은 그때 스다라는 바라문의 딸이었소. 당신은 꽃을 일곱송이 가지고 있었소. 나는 은전 五백녕 가지고 있어서 그 돈으로 당신의 꽃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려 하였소. 당신은 그때 꽃을 두 송이 주면서 나에게 말했소.
「미래에서 영원히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나는 그때 당신에게 굳게 약속했소.
「내 아내가 되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거요, 나는 부모 이외의 모든 것을 청하는대로 보시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당신은 그때 대답했소.
「좋습니다. 비록 우리들 사이에 생간 아이들을 보시하신다 해도 절대로 불평을 하지 않겠습니다」고.』
태자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마지는 마침내 자기의 숙명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었다.
얼마 후 또 한사람의 흉악한 바라문이 찾아 왔다. 그는 두 아이를 데려간 바라문보다도 더 추하게 생긴 사나이였다. 그는 태자 앞에 절을 하고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당신은 어떠한 물건이든 청하는 대로 기꺼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부인을 얻으러 왔습니다.』
『좋습니다. 드리겠습니다.』
마지는 슬픔을 억누르고 말했다.
『저까지 남에게 주어버리신다면 누가 당신을 보살펴 드리겠습니까?』
『당신을 보시하지 않는다면 내 보시의 수행은 깨지고 마오. 그것을 알아주시오.』
태자는 물을 떠와 바라문의 손을 씻게 하고 마지를 주었다. 바라문은 태자비의 손을 잡고 일곱발자욱 걸어가더니 되돌아 와 태자에게 태자비를 돌려주며 말했다.
『사람에게 태자비를 주시지 마십시오.』
태자는 미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데려가시지 않습니까. 마음에 드시지 않습니까. 이세상에서 이보다 훌륭한 부인은 없을 것입니다. 이 부인은 나를 위해서라면 물속이든 불속이든 뛰어듭니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아무리 힘든 일을 시켜도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보시는 바와 같이 얼굴과 모습이 뛰어나게 아름답습니다. 제발 데려가십시오. 저는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은 태자에게,
『나는 바라문이 아니다. 도리천( 利天)의 주인 제석천왕이다. 태자가 얼마나 보시의 수행에 철저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 온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눈부신 제석천의 모습을 나타냈다.
마지는 제석천 앞에 엎드려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는 바라문이 요하국 안에서 두 아이들을 팔도록 해주시옵고, 둘째로 아이들이 굶주림이나 목마름으로 고생하지 않도록 해주시옵고 셋째로 태자가 빨리 나라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제석천은 이 소원을 듣고 마지에게 말했다.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겠소.』
태자는 제석천에게 말했다.
『인간이 모두 깨우침을 얻고 이 세상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을 없애버리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제석천은 이 태자의 소원을 칭찬하며 말했다.
『참으로 위대한 소원이다 이것은 무사의 소원이다. 이 세상에서 당신만큼의 소원을 기원한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도저히 우리들이 따를 수가 없습니다.』
태자는 또 제석천을 향하여,
『나에게 또 하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물질적으로 적절하게 하여 항상 보시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왕과 대신들이 나를 이해하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이 지금의 내 소원입니다.』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제석천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바라문은 두 아이들을 데리고 겨우 쿠르국의 자기집에 돌아 왔다. 아내는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남편을 욕하면서 말했다.
『무얼하려고 이런 똘만이를 데리고 왔소. 이 새끼들은 임금님 아들이 아니요. 이런 고상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된단 말이오. 더구나 얼마나 때렸는데 온 몸이 상처 투성이 아니오, 그 상처에 부스럼이 생겨서 고름이 질질 나고, 이런 것들은 어디론가 데리고 가 팔아 넘기고 와요, 그 돈으로 좀 힘이 세고 튼튼한 머슴을 사오란 말이오.』
바라문은 또 두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팔러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이 두 아이들이 태자의 아이임을 알고 바라문에게,
『어떻게 이 아이를 데리고 왔소.』
하고 묻자,
『이것은 태자에게서 얻어온 거야, 무엇 때문에 그런걸 묻는 거요,』
『이 나라에 온 이상은 의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
많은 사람은 바라문으로부터 아이를 빼앗으려 했다. 그 중에 한 장자(長者)가 그것을 말리고,
『이 아이들은 태자가 보시하신 것이다. 지금 무리하게 빼앗으면 태자의 뜻에 어긋난다. 임금님께 말씀드려 임금님이 사시도록 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이 장자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장자는 광궁에 가서
『임금님, 바라문이 두 왕손(王孫)을 거리에서 팔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고 알렸다. 그러자 왕은 크게 놀래어 그 바라문을 불러 두 아이들을 왕궁으로 데리고 오게 하였다.
왕도 부인도 많은 대신도 두 아이를 보고 모두 흐느껴 울었다.
『어떻게 해서 이 아이들이 네 손에 들어왔는가?』
『태자에게서 얻었습니다.』
왕은 두 아이를 불러 안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울기만 하고 안기려 하지 않았다.
『돈을 얼마나 주면 이 아이들을 주겠는가.』
하고 왕은 바라문에게 물었다. 바라문이 대답을 하기 전에 사내아이가 대답했다.
『남자의 값은 은전 천장에 암소 백마리, 여자의 값은 금전 二천장에 암소 二백마리입니다.』
『남자가 비싼 것이 보통인데 왜 남자는 싸고 여자가 비싼가?』
이렇게 왕이 묻자 사내아이는,
『후궁의 궁녀들은 왕의 혈통이 아니고 천한 집에서 태어나 하녀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일단 왕의 마음에 들면, 이내 존귀(尊貴)한 자리에 올라 아름다운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됩니다. 임금님은 오직 하나뿐인 자기 아들은 깊은 산으로 내쫓고 매일 이곳에 있는 궁녀들과 환락에 잠겨 자기 아들 생각을 조금도 하이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남자가 값싸고 여자가 비싼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깊이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 왕은 울면서,
『내가졌다. 사과하겠다. 그런데 너는 왜 나에게 안기려고 하지 않는가, 나를 원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바라문이 무서운가.』
『대왕님을 원망도 하지 않고 바라문이 무섭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옛날에 대왕님의 손자였습니다만 지금은 남의 집의 머슴이며 식모입니다. 어찌 이 천한 머슴과 식모의 신분으로 국왕님의 무릎을 더럽힐 수 있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슬픔과 애처로운 마음이 복받쳐 당장에 그 바라문에게 돈을 주고 두 아이들을 불렀다. 두 아이들은 이제는 기꺼이 왕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두 손에 안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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