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왕

시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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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신앙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보음본생론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하셨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인도에 시비라는 왕이 있어서 데바테성이라고 하는 도성(都城)에 살고 있었다. 八백여개의 조그마한 나라들을 다스렸는데 토지는 비옥하고 백성들은 생활이 넉넉하였다. 궁중에는 二백명의 왕비와 궁녀들이 있어서 五백명의 태자를 거느리고 一만명의 신하가 그를 받들고 있었다.
왕은 백성을 사랑하기를 친 자식과 같이 하여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번창하여 왕의 덕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때 하늘 나라에서는 三十三千(王)의 주인인 제석천왕(帝釋天王)의 수명이 다하려고 하여 오쇠(五衰)의 상(相)의 얼굴에 나타났다. 천왕은 천계(天界)의 쾌락을 버리고 죽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수심에 잠겨 있었다.
천왕의 근신(近臣) 비슈천자(天子)는 그것을 보고,
『천왕님, 왜 그렇게 수심에 잠겨 계십니까.』
하고 위로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천왕은,
『나는 머지않아 죽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죽는 것은 나의 운명이니까 한탄하지 않지만 다만 불법(佛法)은 이미 망하여 버리고 보살(菩薩)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 생사(生死)의 큰 일을 의탁하고 해탈(解脫)의 도를 얻지 못하는 것을 걱정할 따름이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비슈천자는,
『인계(人界)에 시비라는 왕이 있습니다. 그는 한결같이 불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왕에게서 구하신다면 해탈의 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제석천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으나 그 시비왕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것이 진실인지, 그가 참다운 보살인지 내가 그를 시험해 보겠다. 너는 까치가 되어라 나는 매가 되겠다. 그래서 왕에게로 가서 참으로 나를 구해줄지 어떨지 시험해보자.』
비슈천자는 그 말을 가로막고 말했다.
『그 왕은 참다운 보살입니다. 능히 공양을 할 사람으로 시험을 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제발 그 왕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제석천은 이에 대답해서 말했다.
『불이 금(金)을 시험해보듯
이 보살의 마음을 시험해 보련다.
나에게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진실을 알려고 할 따름이죠.』

그래서 두 사람은 하계(下界)에 내려와 비슈천자는 한 마리의 까치로 둔갑을 하고 제석천왕은 한 마리의 매가 되었다. 매는 까치를 잡아 먹으려고 쫓아갔다. 까치는 잡히지 않으려고 시비왕의 겨드랑이 밑으로 숨었다.
매는 왕 앞으로 나가,
『그 까치는 내 먹이이다. 나는 몹시 굶주리고 있다. 제발 그 까치를 돌려주기 바란다.』
이렇게 말하고 왕에게 달려들었다. 왕은,
『나는 일체의 것을 구해주고 싶다는 서원(誓願)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구원을 청하여 온 이 까치를 건네줄 수는 없다.』
이렇게 부러지게 거절했다. 그러자 매는,
『일체의 것을 구한다고 왕은 말했는데 내 먹이를 빼앗아 내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것은 일체의 것을 구하는 길이 아니지 않소.』
이렇게 말하고 그를 몰아세웠다. 왕은 할 수 없이,
『그러면 다른 고기로는 만족할 수 없겠는가.』
하고 매에게 말했다. 그러나 매는,
『날고기가 아니면 나는 먹지 않는다.』
왕은 생각했다. (날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죽인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희생시킬 도리 밖에 없다.)
왕은 칼을 뽑아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다. 그러자 매는 까치와 똑같은 중량이 아니면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왕은 저울을 가져오게 하여 한쪽 접시에 까치를 얹고 또 한쪽 접시에 허벅지의 살을 얹어 저울에 달아보니 까치 쪽은 무겁게 내려앉는데 살이 있는 쪽은 가벼워 올라와 있다. 그래서 허벅지의 살을 더 베어 얹었는데 그래도 가벼웠다.
그래서 허벅지의 살을 전부 베어 얹었는데도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왕은 팔의 살을 베고 겨드랑 밑의 살도 베었는데 그래도 부족했다. 최후로 온 몸을 들어 접시 위에 올라서려고 했는데 기진맥진하여 땅에 쓰러지고 기절을 하고 말았다. 잠시 후에 정신이 들자 스스로를 책망하며 말했다.
『먼 옛날부터 얼마나 이 육체 때문에 망설이고, 이 육체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인가. 이제야 이 망설임의 근원, 괴로움의 뿌리인 육체를 버리고 더구나 그 육체로 남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는 안간힘을 다하여 접시 위에 올라서고 마음속으로 다시없는 기쁨과 만족을 느꼈다.
이 때 대지는 진동하고 천계의 궁전은 모두 기울었으며 하늘에서 연꽃이 내려오면서 찬탄의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의 매와 까치는 순식간에 제석천과 비슈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왕에게 말했다.
『왕이여, 당신은 이런 고행(苦行)을 닦아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지상을 정복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범천(梵天),제석(帝釋)의 자리에 올라 천계의 쾌락에 잠기고 싶기 때문입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깨우침을 얻고자 할 뿐입니다.』
제석천은 다시 물었다.
『왕이여, 당신은 지금 한참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습니까?』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후회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왕은 맹세하며 말했다.
『나는 지금 털끝만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구하고 있는 부처님의 길의 참된 길이라면 내 육체를 그전 모습으로 되돌려 주십시오.』
왕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의 신체는 옛 모습으로 돌아갔다.
제천도, 사람도 이것을 보고 찬탄하고 그지없이 기뻐하였다고 한다.

이 때의 시비왕은 지금의 석가모니이다.

<菩蔭本生 論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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