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아들과 그의 아버지

가출한 아들과 그의 아버지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신앙설화

• 주제 : 신앙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법화경

석존께서 사밧티국(舍티國)의 기원 정사(祈園精舍)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設法)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릴 때에 아버지와 헤어져 집을 떠나 타국(他國)으로 행방불명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낯선 이국(異國)땅을 전전한 것이 어느덧 四O년이란 세원이 흘러 나이는 이미 五十이 넘었지만 생활 터전을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면서 겨우 품팔이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발길은 무심 히 도 그의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외아들을 잃은 그의 아버지는 깊은 수심에 잠겨 사방 팔방으로 어린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 해 보았으나 도저히 행방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중심가에 큰 저택을 마련하고 혹시나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그는 부유한 사람으로 재산이 수백억이나 되어, 금, 은, 유리(瑜璃), 산호(珊瑚), 호박(琥珀), 파리주(坡璃珠)같은 보물이 창고(倉庫)에 가득 차 있었으며, 많은 일꾼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무역상(貿易商)을 경영하는 대 사업가였다. 사업도 상당히 번창하여 돈도 많이 벌고 있었으므로 국왕이나 군신(群臣), 귀족들도 그를 극진히 대접할 정도였고, 수레, 코끼리, 말, 소, 양(洋)들도 대단히 많이 기르고 있어 무엇하나 부러운 것이 없는 재산가였다.
그러나, 아무리 재물이 많고 권세가 당당하더라도 해방이 묘연한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늙어감에 따라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아버지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고 더없이 쓸쓸하기만 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것 같았으나, 항상 마음속에서는 원망과 뉘우침과 한탄의 눈물을 남몰래 흘리고 있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나도 이젠 늙어서 죽을 날도 멀지 않았다. 설사 재물은 창고에 가득 차 있다지만 눈을 감을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아! 못난 내 자식은 집을 나 간지 이미 四O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이다지도 돌아오지 않을까! 만일 사랑하는 내 아들을 찾아내서 재산을 맡길 수만 있다면, 남은 여생이나마 마음을 놓고 편안치 살다 죽을 텐데』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집념은 다시 한번 새로운 슬픔에 젖어 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집을 나간 그의 아들은 날품팔이 신세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쳐 나쁜 병에 걸린 몸으로 우연히도 자기 아버지의 집 문전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핏줄을 나눈 부자간의 인연이라 할 것이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사자상(獅子床)에 몸을 의지하고 발을 옥대(玉坮)위에 올려놓고 편히 쉬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서는 여러 사람의 바라문과 거사(居士)들이 장자(長者)의 시중을 들고 있었고, 그는 진주(眞珠)와 영락(瓔珞-구슬목걸이)등 천만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로 몸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방안도 온통 진기한 보배로 둘러 싸여 있었고, 그윽한 향내음이 방안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정원에는 백화가 만발하여 그 아름다움을 다트고 있었다. 장자는 문득 일어나서 집안 물건을 손질하고 있었다.
이 때, 문전에 선 아들은 저택의 웅장함과 집 주인의 위엄한 모습, 궁전 같은 집안의 광경을 멀리서 보고,
『이 사람은 국왕일지도 모른다. 아니 국왕은 아닐지라도 왕족이나 귀족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내가 왜 이런 곳에 왔을까?』
하고 후회를 하며,
『이런 집에서 나 같은 사람을 고용할리 만무하다.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붙잡혀서 강제 사역을 시킬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든 그는 급히 몸을 돌려서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그곳을 떠나갔다.
아까부터 사자상에 앉아서 이 모양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인 장자는 아들의 어렸을 때의 모습을 회상하며, 아들의 성장한 모양을 머리 속에 그리며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연히 직감적으로 그가 자기의 아들임을 깨달았다. 멀어져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의 재산은 이제 상속자를 만났다. 나는 四O년이란 오랜 세월을 두고 저 자식을 몽매간(夢昧間)에도 잊지를 않았는데 오늘까지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렇게 그리던 내 아들이 홀연히 눈 앞에 나타났다. 나의 소원은 이제야 이루어졌다. 나는 이미 다 늙었지만 아직 이 많은 재산에 집착을 가지고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급히 사람을 시켜서 그의 뒤를 쫓도록 했다. 사자(使者)는 곧 그에게로 달려가서 그를 잡았다.
아들은 놀라움에 눈물을 흘리며,
『아무 까닭 없이 나를 잡아가려는 것을 보면 필경 죽이려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왜 이런 일을 당한단 말인가!』
라고 생각한 그는,
『저는 아무 것도 나쁜 짓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잡아가려는 것입니까? 제발 용서하여 주십시오.』
불쌍하게도 그 아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 기절하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그의 아버지는,
『이제 그 사람은 필요 없다. 억지로 데리고 오지 않아도 괜찮다. 빨리 찬물을 얼굴에 끼얹어서 정신이 들게 해 주어라, 상대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인 장자는 사랑하는 자기의 자식이 오랜 고생 끝에 천한 사람이 되고 우둔한 사람으로 변하였음을 보고 자기의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지금 당장 여기서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하여도 그는 도저히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인을 시켜서,
『너를 놓아줄 터이니 어디건 마음대로 가라.』
하고 그를 놓아주고 하인으로 하여금 그의 뒤를 밟게 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은 죽을 줄로만 알았던 목숨이 살아나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므로, 매우 기뻐서 발길을 급히 옮기며 빈촌에 찾아 들어 전과 같이 날품팔이 일을 구해가며 그날 그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장자는 사랑하는 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곁으로 데려오려고 한 가지 계책을 꾸몄다.
그래서 애꾸눈이고 키가 작고 바싹 마른 보기에도 천하게 생긴 사람, 두 명을 불러놓고 자기의 뜻을 설명하고 아들에게 보냈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우리와 함께 해보지 않겠나?』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나?』
『우리와 같이 쓰레기와 변소 청소를 하는 것이다. 일당이 보통 일의 두 배는 된다.』
장자의 계책은 들어맞았다.
아들은 그런 일이라면 자기에게 적당하다고 생각이 되었으므로 두 사람을 따라서 선금을 받고 청소 인부로 고용이 되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열심히 청소를 하고 오물을 날랐다. 아버지인 장자는 이렇게까지 천하게 변해버린 아들의 모습을 보고 한층 더 측은한 마음이 들어 슬며시 창문에서 내다 보니까, 몸은 여위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우둔하고 또 먹고 살기 위하여 천한 일을 마다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자는 또 한 가지 생각을 해내서 자기가 몸에 걸치고 있는 영락(瓔珞)과 좋은 옷과 훌륭한 장식품을 모두 떼어 버리고 일부러 더럽고 찢어진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먼지를 몸에 뒤집어쓰고 청소 도구를 손에 들고 청소 인부들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얼렁뚱땅 한 패거리인양 능청스럽게,
『열심히들 일하게, 게으름을 피면 안 되지.』
장자는 이렇게 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아들에게 접근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을 보고 슬며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친구 자네는 언제까지든지 여기서 일하게,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일랑 말게, 그 대신 월급을 많이 줄 테니까. 그리고 가재 도구와 양식, 소금, 식초 같은 필수품도 주겠네. 자네는 비굴하게 생각하거나 사람을 꺼릴 필요도 없네. 또 늙은 고용인을 자네에게 붙여줌세. 마음 턱 놓게나. 나는 자제를 내 자식 같이 생각하네.
나는 이렇게 늙었지만 자네는 아직도 젊네. 일을 하는데 사람을 속이거나, 꾀를 피거나, 화를 내거나, 원망하거나, 잔소리를 하면 못쓰네. 자네에겐 이러한 여러 가지 결점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자네를 보통 고용인 같이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일세. 오늘부터는 자네를 친자식 같이 대하겠네.』
그리고 장자는 그 자리에서 그를
『자식』
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아들은 월급이 많아지는 것과 발에 바르는 기름(油),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분에 넘치는 고마운 대우를 매우 기뻐하였지만, 그래도 자기는 천한 고용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十년이란 세월은 두 사람의 마음을 융합 시켜서 서로 아무 꺼림이 없게 하였다.
또 얼마큼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중 장자는 병을 앓게 되었고 이제는 죽을 날이 머지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는 아들을 보고,
『나는 많은 금은과 보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창고에 가득 차 있다. 너는 나의 재산의 세목(細目)과 지불해야 할 액수를 모두 잘 알아 두어라. 나는 어디까지나 너를 믿고 있으므로 나의 뜻을 받들어 만사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며, 재산을 축 내지 않도록 명심해 주기 바란다.』
아들은 장자의 분부를 받고 금은 보재의 출납, 창고의 관리 등 집안의 제반사를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 재물들을 조금도 탐내지 않았고 여전히 자기의 신분을 지키고 비천하다는 마음을 씻어버리지를 않았으며, 그래도 역시 문밖의 초라한 집에서 기거하면서 자기의 가난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아들의 마음도 차차로 변해서 먼저의 천한 마음가짐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알게 된 장자는 바야흐로 임종도 가까웠으므로 머리맡에 친척과 거사들을 모두 모아 놓고 비로소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여러분,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오, 지금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은 실은 나의 핏줄을 나눈 친자식입니다. 그 옛날 나의 곁을 떠나서 四O년이란 오랜 세월을 무딘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의 본명은 ○○이고 나의 본명은 아무개 입니다. 고향의 벽지에서는 찾기가 어려우므로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인도하심 인지 다행히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친아들이며, 나는 그의 친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을 나의 아들에게 상속함을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둡니다. 따라서 앞으로 일체의 재산권은 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기도 합니다.』
장자의 숙원은 달성이 되었고 부자의 인연은 새로 맺어졌으며, 아들의 소개도 끝났다. 이러한 뜻하지 않은 사실에 직면한 아들은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기뻐하였으며, 예기치 않았던 재산을 상속 받고,
<나는 빈곤하고 천한 몸으로 아무 것도 탐내는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재물이 자기의 것이 되리라고 꿈엔들 생각했으랴!>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이제 새사람이 되어서 갱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대장자는 석존을, 아들은 불제자(佛第子)를, 방랑 생활은 생사계(生死界)의 고뇌(苦惱)와 비유한 것이다.

<法華經 第二>

연관목차

1599/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