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항 유적

서포항 유적

[ 先鋒 西浦項 遺蹟 ]

지역 선봉
24호 집자리 평ㆍ단면도

24호 집자리 평ㆍ단면도

함경북도 선봉군(舊地名:웅기군) 굴포리 서포항동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1960~64년 사이에 발굴하였다. 유적은 서포항동 마을 동북쪽 해발 5.0~7.0m에 걸치는 얕은 산비탈에 수만 평방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유적 언저리는 조산만(造山灣)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으며 앞에는 석호(潟湖)가 발달해 있고 뒤로는 산을 등지고 있어,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먹거리가 풍부하여 살림살이에 알맞은 곳이다. 유적은 구석기시대의 2개 문화층과 신석기시대의 5개 문화층,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문화층 2개 등 시기를 달리하여 퇴적된 9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서포항 유적 출토 남성흙인형. 높이(中) 9.7cm

서포항 유적 출토 남성흙인형. 높이(中) 9.7cm

신석기시대 1기층에서 나온 집자리(住居址)는 9호 집터로,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이며 장축, 단축, 깊이가 12.0×6.0×1.0m로서 매우 큰 편이다. 집자리 바닥은 굴껍데기를 깔고 강자갈과 흙을 섞어 다진 다음, 불을 피워 바닥을 구운 것이다. 화덕자리(爐址)도 5개가 있는데 양쪽 끝의 2개는 강돌(川石)을 돌려 만든 것이며, 가운데 3개는 돌을 깔아놓은 것이다. 유물로는 괭이, 간돌화살촉(磨製石鏃), 긁개, 그물추(漁網錘), 숫돌(砥石) 등 다양하며 수량도 많다. 뼈 도구로는 사슴뿔을 쪼개서 만든 창끝과 작살, 삿바늘, 찔개살, 송곳 등이 있으며, 치레걸이도 있다. 토기는 모두 입술 가까이에 찍은무늬(押印文)를 돌린 것이다.

2기층에서는 3·17·19·23호 4기의 집자리들이 드러났다. 집자리들은 대개 원형(圓形)이며, 원추형의 꼬깔지붕으로 복원된다(3호). 움의 깊이는 60~70㎝ 정도이며 기둥자리(柱孔)들이 있고 계단식으로 된 출입문이 있다. 석기는 1기층과 같은 종류로서 수량도 많다. 그 외에 뼈로 만든 치레걸이나 조각품도 나오는데 이들은 양이 많지 않은 한국 신석기시대의 조각이나 예술품으로서 비중이 크다. 토기는 2기층에서 매우 많이 나와 완형(完形)만 20여 개체가 나왔다. 동북지방의 특징적인 깊은바리(深鉢) 이외에 입술이 바라진 그릇이나 목단지가 나오며 아주 작은 컵 모양도 있다.

3기층에서는 8·12·13·20·26·30호 등 9개의 집자리가 드러났다. 이때부터 집자리의 형태는 방형(方形)으로 바뀌고, 크기가 이전보다 약간씩 작아져 한 변이 3.0~4.0m 정도이나 집자리 바닥 처리법, 기둥구멍, 화덕자리 등은 이전과 같다. 석기는 2기층의 것에다 삽, 갈돌(石棒), 갈판(碾石), 창끝, 자귀(手斧), 끌 등 간석기(磨製石器)류가 더해지며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도 새로이 출현한다. 토기는 그릇 종류가 다양해져 항아리, 단지, 보시기, 컵모양, 목단지 등 여러 형태가 만들어졌다. 새김무늬와 덧무늬 및 곡선무늬인 타래무늬가 등장한다. 대개 작은 그릇에는 무늬가 없다. 가락바퀴(紡錘車)도 처음 나타나는데 원추형과 주판알 모양의 2가지가 있다. 그 외 뼈로 만든 예술품과 치레걸이가 있다.

4기층에서는 11·15·18·21·22호 5기의 집자리가 나왔다. 석기 가운데 곰배괭이가 나와 주목을 끄는데 이는 3기층의 삽과 함께 신석기 중기 이후 서포항에서 농사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뼈 도구는 이전과 같으며 조각품, 치레걸이는 매우 다양하다. 토기는 여전히 새김무늬가 주류이나 아래 문화기에 비해 무늬없는 그릇들이 늘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번개무늬 그릇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무늬는 청천강 이북의 서북지방과 동북지방에 걸쳐 신석기 늦은 시기에 나타나기 때문에 늦은 시기의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5기층에서는 7·16호 2기의 집자리가 나왔다. 아래 문화기에서 보이던 석기들과 함께 대패날이 나온다. 뼈 도구에는 바늘이 들어있는 뼈바늘통과 함께 뿔괭이 등이 새로이 나오는 종류이다. 토기무늬에는 덧무늬의 비중이 크나 무문토기의 양보다는 적다. 신석기 말기로 가면서 무늬 없는 토기의 비중이 늘어나 다음 시기인 청동기시대에로 접속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무늬가 적어지는 대신 토기의 겉면을 반질반질하게 가는 마연 수법이 늘어나 마침내 간토기(磨硏土器)가 출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포항유적의 개시연대는 최근에 와서 B.C. 6000년으로 편년되며 1·2기층은 신석기 전기, 3기층은 신석기 중기, 4·5기층은 신석기 후기로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 문화층은 크게 나누면 위층과 아래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집자리 9기를 발굴하였다. 아래 문화층에서는 2·5·6·14·25호 집자리, 위 문화층에서는 1·4·10·24호 집자리가 잘 남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장방형(長方形) 평면의 반움집으로 진흙이나 조가비를 깔고 바닥을 다져 만들었다. 화덕자리는 불규칙하게 위치하고 있으나 모든 집자리에서 발견된다. 위층의 집들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출토유물로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와 붉은간토기(紅陶)가 있고, 민무늬토기에는 신석기시대의 새김 무늬 전통이 일부 보이기도 한다. 석기로는 돌도끼(石斧), 자귀, 끌, 곰배괭이 등이 있고 뼈낚시, 찔개살, 장신구 등이 보인다.

그밖에 뼈피리, 흙인형, 돼지 조각품 등 예술품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위 문화층과 아래 문화층에서 나온 유물에 큰 차이는 없다. 아래 문화층에서는 움무덤(土壙墓)이 2기 드러났는데 조가비층(貝塚)을 파고 무덤을 만들었다. 하나는 여성, 하나는 남성의 무덤이었는데 부장유물로는 여성 무덤에서 뼈바늘과 바늘통이 나왔다.

아래층은 B.C. 2000년기 전반기, 위층은 B.C. 2000년기 후반기로 각각 연대가 정해졌다.

참고문헌

  • 북한의 선사고고학 3-청동기 시대와 문화(장호수, 백산문화, 1992년)
  • 서포항 원시유적 발굴보고(김용간·서국태, 고고민속논문집 4, 1972년)
  • 서포항 조개무지 발굴보고(김용남, 문화유산 61-3, 196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