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인형

흙인형

야요이시대 사람 얼굴 모양 항아리 (茨城縣那珂町 출토)

야요이시대 사람 얼굴 모양 항아리 (茨城縣那珂町 출토)

흙인형〔土偶〕은 흙으로 형상을 빚어 구운 것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 수량도 많고 널리 알려진 편이다. 여기에는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각종 기물(器物)이 포함된다. 이를 무덤에 껴묻거리〔副葬品〕로서 넣는 것은 장송의례(葬送儀禮) 행위의 일부일 것이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흙인형은 많지 않다. 청동기시대의 껴묻거리로서 특징적인 것을 꼽자면 동검(銅劍)이나 돌검〔石劍〕, 그리고 옥(玉) 등이 해당되며 흙으로 빚은 조소품은 오히려 소수의 생활유적에서 찾아진 두어가지의 예가 있다.

흙으로 빚어 만든 조각품들은 구석기시대부터 나타난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나온 돌니 베스토니체(Dolni Vestonice) 비너스는 흙으로 빚은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마달레니앙(Magdalenien) 중기에 흙으로 빚은 들소 조각과 마달레니앙 말기에 흙으로 빚어놓은 두 마리의 들소 조각품 등이 있고 이런 조각품들은 시베리아 말타지방이나 코스텐키 유적 등에서도 보인다.

굴포리 유적 청동기시대 문화층의 흙사람(1. 퇴적층 출토, 2. 25호 집자리 출토)

굴포리 유적 청동기시대 문화층의 흙사람(1. 퇴적층 출토, 2. 25호 집자리 출토)

신석기시대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흙으로 빚은 조소품들이 자주 나온다. 사람 얼굴을 형상화한 것으로는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 찾은 것이 있고 청진 농포동 유적에서는 높이 5.6㎝의 여자 조각품이 발굴되었다. 농포동에서는 그 밖에도 개와 새 조각품이 나왔다. 울산 신암리 조개무지〔貝塚〕 유적에서는 흙으로 빚은 여성조각품과 흙귀걸이가 출토되었다. 선봉 굴포리 집자리에서는 주로 뼈로 만든, 뱀을 비롯한 동물형상을 한 조각품과, 여성을 상징한 것에 이견이 없는 몇가지 조각품들이 있다.

특히 사람얼굴의 반쪽부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각품은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 나온, 국자가리비 조개껍질에 구멍을 셋 뚫어 사람얼굴을 형상화한 것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이며 장식성도 부족한 편이다. 일본의 죠몬토기(繩文土器)를 보면 흙인형이 매우 많고, 때로는 토기 자체가 하나의 흙인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식성도 유별나다. 작은 흙인형을 만들어 토기에다 붙인 것들도 있다.

이런 현상은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줄어든다. 일본토기 조차도 야요이시대(彌生時代)로 접어들면 토기의 기형만 과장될 뿐 흙인형이나 장식성은 현저히 줄어드는데, 우리나라에서 보자면 흙인형의 범주에 넣을만한 것으로 두 번의 사례가 있다. 장차 이런 변화의 원인에 대한 추구도 필요할 것이다. 무산 호곡동 집자리에서 나온 돼지 조각품, 남자형상으로 유추되는 조각품과 굴포리 집자리에서 나온 이른바 ‘흙사람’이 그것이다. 북한에서는 굴포리 집자리 출토 조각품을 남성으로 풀이하며 이는 남자들이 주도권을 가진 부계씨족사회임을 시사한다고 한다. 굴포리 집자리의 흙사람과 함께 호곡동 집자리 남자 조각품도 이들이 남자라는 확증은 없다. 현대 고고학의 경향성 가운데 하나로 예술품이나 상징에 대한 관심과 해석의 요청이 심화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신숙정)

참고문헌

  • 무산 범의구석 유적 발굴보고(황기덕, 고고민속론문집 6, 1975년)
  • 土器の造型-繩文の動, 彌生の靜(東京國立博物館, 2001년)
  • 서포항 원시유적 발굴보고(김용간·서국태, 고고민속론문집 4, 1972년)

동의어

토우(土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