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삼동 유적

동삼동 유적

[ 釜山 東三洞 遺蹟 ]

지역 부산
조합식작살(組合式石銛)

조합식작살(組合式石銛)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에 있는 신석기시대 조개무지 유적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1930년대 초반부터 널리 알려져 당시 경성제대 예과의 교수로 있던 橫山將三郞 및 몇몇 일본인들이 소규모로 시굴한 바 있으며, 1962-64년에는 미국인 L.L.Sample이 발굴하였다. 1969-71년 사이에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3차례에 걸쳐 공동 발굴하였다.

석기, 토기, 뼈도구, 고래뼈, 물고기, 조개 등의 자연유물, 치레걸이 등 다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남해안지방에서 주로 출토되는 덧무늬토기의 출토빈도가 매우 높아 한국 신석기에서 덧무늬토기가 차지하는 위치, 해당시기, 덧무늬토기의 출자와 기원문제를 해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더욱이 도도로끼식 토기 등 일본의 죠몽(繩文)토기들도 출토되어 당시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개의 두개골과 턱 뼈. 전체길이 16.4cm

개의 두개골과 턱 뼈. 전체길이 16.4cm

유적에 대한 관심도나 그 중요성에 비하면 동삼동의 발굴 보고서는 많지 않은 편이어서 광복 이전의 것으로는 橫山將三郞과 及川民次郞의 것이 있으며 광복 이후에는 L.L. Sample의 것이 있다. L.L.Sample의 보고서는 橫山將三郞과 及川民次郞의 보고서를 자세히 검토하고 이들의 보고와 자신의 발굴결과를 대비한 것이어서 치밀한 편이므로 오늘날 동삼동 유적에 대한 시기구분 및 이를 기초로 한 남해안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그리고 동삼동의 신석기시대 살림살이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L.L.Sample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L.L.Sample은 동삼동에서 2개의 구덩을 발굴하였으며 모두 5개의 문화기를 구분하였는데 이른 시기부터 조도기, 목도기, 부산기, 두도기, 영도기의 5개 문화층의 발달순서를 거친다고 하였다. 가장 이른 시기인 조도기의 유물이 가장 적은 편인데 토기로는 민토기와 덧무늬토기가 주체이며 슬립(slip : 덧입힘)이 발달하였고, 납작밑이 주로 나오고 있다. 석기로 찍개 1점이 있다. 가장 많이 잡은 짐승은 사슴 종류(대륙사슴, 고라니 등)이나 고래, 돌고래, 바다사자 등 바다짐승도 많다. 물고기뼈로는 상어, 참돔, 다랑어 등이 있다. 새뼈도 나왔으며 조개는 홍합, 굴, 가무락조개, 눈알고둥, 큰가리비 등 13종이 나왔다.

한국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 유적들을 보면 대부분 굴이 주체를 점하나 동삼동에서는 전 시기를 통해 굴 보다 홍합이 더 우세하며 그밖에도 이매패류 보다는 복족류의 전복, 소라, 고둥 등이 우세한데 이것은 암벽해안이 많은 이곳의 입지와 관계되는 특징이라고 보인다. 조도기에서는 물고기와 조개류의 이용도가 낮고 사슴 등 뭍짐승의 비율이 높다.

다음 시기인 목도기에는 민토기, 덧무늬토기와 함께 다량의 지두문(指頭文 : pinched) 토기가 나온다. 목단지와 손잡이그릇, 귀때토기 등이 나와 토기의 모양이 다양해지며 둥근밑 토기가 나온다. 석기로는 돌낚시허리와 긁개, 찍개 등이 나왔다. 뼈연모로는 송곳, 묶음낚싯바늘, 긁개, 뼈바늘, 고래뼈, 투박조개로 만든 팔찌 등이 나왔다. 고래뼈, 상어뼈 등을 손질한 가공품이 많으며 뼈바늘, 송곳 등의 존재로 보아 가죽이나 천에 대한 손질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석기와 뼈연모를 볼 때 물고기잡이 도구가 부산기 보다 많아지며, 무엇보다 짐승뼈, 새뼈, 물고기뼈, 조가비 등 자연유물의 증가가 두드러져 동삼동의 여러 문화기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이시기의 대표적인 사냥감으로는 바다사자가 가장 많으며 고래, 돌고래, 사슴 종류, 멧돼지 등의 포유류와 상어, 참돔, 대구, 다랑어, 방어 등의 물고기, 겨울 철새 등이 나타난다. 조개로는 역시 홍합이 가장 많고 소라, 굴, 백합, 가무락조개, 전복 등 31종이 나타난다. 목도기의 위에쓰 문화측정값은 5890 B.P.이다.

신석기 전기의 늦은 시기인 부산기에 오면 여전히 덧무늬토기가 나오나 찍은 무늬(押捺文, 押印文)토기가 주체를 이루게 되며 토기밑은 둥근 것과 납직한 것이 모두 출토된다. 토기의 양도 그 전시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아진다. 석기는 돌낚시허리와 안팎날 돌칼, 긁개, 찍개, 돌도끼, 숫돌 등으로 이전 보다 다양한 석기들이 출토된다. 뼈로 만든 묶음낚싯바늘과 뼈바늘, 투박조개 팔찌 등의 양도 늘어난다. 특히 석기나 뼈도구 모두에서 낚시도구가 늘어나는데 이는 물고기, 조개 종류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하여 바다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황오리, 농병아리 등의 겨울철새가 나오며 홍합, 굴, 전복, 소라 등 조개류는 23종이 출토되었다. 소라, 전복 등 수심 2-5m에 사는 것들이 잡히는 것으로 보아 잠수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있다. 부산기의 방사성탄소연대 값은 4945 B.P.가 얻어졌다.

신석기 중기에 해당하는 두도기가 되면 새김무늬(陰刻文)토기로 바뀌게 된다. 특히 남해안지방 두도기의 새김무늬는 선이 매우 굵고 뚜렷하여 태선문이라고 불리우며 토기의 밑창은 뾰족하여 한강유역의 빗살무늬토기와 거의 같은 생김새를 지닌다. 즉 이때에 와서 남해안지방과 한강유역과의 관련성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두도기의 토기들은 이전보다 매우 커지며 석기는 이전보다 다양해져서 돌낚시허리, 돌칼, 긁개, 찍개, 돌도끼, 괭이, 숫돌, 갈판, 흑요석, 흑요석 화살촉 등이 나오고 있다. 뼈도구도 다양하여 송곳, 긁개, 묶음낚싯바늘, 뼈바늘, 사슴뿔도구, 투박조개나 피조개로 만든 팔찌 등이 있다. 전기(부산기)에 비해 사냥도구가 증가하는데 이전의 짐승상에 새로이 멧돼지뼈가 추가되는 현상과 더불어 주목된다.

한편 두도기와 부산/두도기에 나온 괭이, 반달칼 등의 존재로 조심스럽게 농사의 시작이 논의되었다. 주로 잡힌 물고기와 조개류, 새뼈 등은 전(前)시기의 것들과 거의 같다. 말전복(Haliotis gigantea) 종류로 추정되는 것은 남방계로서 겨울 수온이 12℃ 이상인 곳에서 사는 것이다. 이 자료는 궁산의 물소뼈, 상노대도의 바다거북, 수가리의 산호조각 등과 함께 한국 신석기시대의 기후가 따뜻했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위에쓰 문화로는 3400 B.P.가 있는데 이웃한 수가리 유적의 연대를 참고하거나 동삼동 중기에 대한 坂田邦洋의 연대(4690, 4510, 4140, 3800 B.P.)를 고려하면 3400 B.P.의 연대는 두도기의 하한(下限)으로 여겨진다.

동삼동 문화기의 마지막 단계이며 신석기 후기인 영도기에는 겹입술토기가 출현한다. 뾰족밑(尖底)의 이 토기들은 바탕흙도 완전 모래질로 바뀌며 검게 그을리는 방법을 써서 모두 불완전연소된 색을 띄고 있다. 부피도 매우 커진다. 석기, 뼈도구의 수량은 이전보다 줄어들며 자연유물도 이전보다 줄어드는 현상을 보인다. 반대로 사슴사냥의 비율은 늘어나며, 위에쓰 문화 값은 3400 B.P.가 있다.

동삼동 사람들의 생업경제는 바닷가의 자원이용에 높은 비중을 두었으나 뭍짐승사냥도 상당하며 때로는 바다자원 이용보다 더 높은 비중을 두었다고 여겨진다. 한편 동삼동 유적이 입지한 곳이 온난대성 늘푸른 넓은잎나무가 자라는 곳이므로 채집의 몫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중기 이후 농사짓기도 일부 이루어졌을 것으로 주장되고 있으나 농사도구의 수량을 생각할 때 암사동이나 궁산·지탑리 등의 서해안지방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적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남해안지방의 신석기 살림은 물고기, 조개잡이와 사냥, 채집 및 약간의 농사짓기(중기 이후)로 구성된다. 깊은 곳에서 딸 수 있는 조개류와 먼데서 잡는 물고기류로 인해 잠수와 배만들기 등의 노동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동삼동의 신석기문화는 서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상 보다는 양양 오산리나 선봉 서포항 지역의 문화상과 가까운데 이것이 바닷가지역의 살림살이로서 공통된 것인지 교류 등에 의한 것인지 등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동삼동 조개무지는 1999년 다시 발굴되었는데 전체 층위는 7층이며 덧무늬토기로부터 겹입술토기가 나오는 점에서 남해안지방 빗살무늬토기의 발달경향은 같다고 보인다.

참고문헌

  • 동삼동패총(부산광역시립박물관, 1999년)
  • 韓國隆起文土器の硏究(坂田邦洋, 1978년)
  • Tongsamdong:A Contribution to Korean Neolithic culture history(L.L.Sample, Arctic Anthropology 11-2, 1974년)
  • 南朝鮮牧の島東三洞貝塚(及天民次郞, 考古學 4-5, 1933년)
  • 釜山府絶影島東三洞貝塚報告(橫山將三郞, 史前學雜誌 5-4, 193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