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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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출토 多利作鉻銀製釧

무령왕릉 출토 多利作鉻銀製釧

팔에 착용하는 치레걸이로, 신석기시대 조개팔찌에서 비롯하였으며, 구슬의 성행 후 더욱 많이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팔찌는 주로 금속제로서, 그 선구가 되는 예는 삼한시대의 영천 어은동과 경주 사라리 130호분 출토 청동팔찌로 8개씩 포개어 출토되었는데 착용법이 신석기시대의 조개팔찌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팔찌의 재료로는 금, 은, 금동, 청동이 있으며, 착용풍습은 백제와 신라에서 주로 성행하였다. 형태는 둥근 고리의 표면에 아무 장식을 하지 않은 것과 톱니모양의 각목을 새긴 것이 일반적이다. 착용법은 2개가 1쌍인 것이 대부분이며 간혹 1개씩 출토되는 예도 있다.

고구려의 팔찌는 청동제와 은제가 있다. 형태는 톱니모양의 각목을 새긴 것, 은봉 혹은 청동봉을 간단하게 구부려 만든 것이 있다.

백제의 팔찌는 금·은·동제가 있으며 일반적인 팔찌의 형태 외에 무녕왕릉에서는 9절목걸이와 같은 형태인 4절의 은제팔찌가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왕비의 것으로 보이는 은팔찌는 안쪽 둘레에 2마리의 용을 양각하고 내면에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州主耳’ 라는 명문이 있어 경자년(庚子年)에 왕비를 위하여 제작한 것을 알려준다.

신라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팔찌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황남대총 북분에서는 금제팔찌 10개와 함께 넓은 금판으로 만든 것이 1점 출토되었다. 이 팔찌는 금판의 위·아래 끝을 말아 붙이고 그 표면에 다시 금판을 덧붙였으며, 그 표면에 누금세공으로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녹색, 청색의 옥을 박은 팔찌가 특이하다. 또 서봉총에서는 녹색의 유리옥으로 된 팔찌가 있다.

참고문헌

  • 三國時代 耳飾과 帶金具의 分類와 編年(李漢祥, 三國時代 裝身具와 社會相, 1999년)
  • 考古資料를 통해 본 우리 나라 古代의 冠(咸舜燮, 三國時代 裝身具와 社會相, 1999년)
  • 羽毛附冠飾의 始末(申大坤, 考古學誌 8, 1997년)
  • 高句麗考古學硏究(東潮, 1997년)
  • 신라와 가야의 裝身具(李仁淑, 韓國古代史論叢 3, 1992년)
  • 裝身具(윤세영, 한국사론 15, 국사편찬위원회, 19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