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총

서봉총

[ 慶州 瑞鳳塚 ]

지역 경주
발굴광경(1926年)

발굴광경(1926年)

현재 경주시(慶州市) 노서동(路西洞)에 사적으로 지정된 터만 남아 있다. 원래는 남북으로 연접한 표형분(瓢形墳)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1926년 건축공사로 남분은 이미 훼손되고 북분만 일본인 小泉顯夫 등이 발굴하였다. 발굴당시 스웨덴의 구스타프황태자가 참관하였는데, 스웨덴의 한자명인 서전(瑞典)의 서자를 따고 발굴시 출토된 금관에 붙어 있던 봉황형장식에서 봉자를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라고 명명하였다.

발굴 전 이 고분은 주위의 건축물 때문에 원형이 훼손되어 남북장경 약 51.6m, 동서 약 34.5m, 높이 약 6.9m의 남북으로 긴 봉분이 남아 있었다고 하며, 발굴결과 봉분의 북쪽부분에 직경 약 36m로 추정되는 외부 둘레돌(護石)에 둘러 쌓인 동서로 긴 돌무지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고분이 북분, 곧 서봉총이며, 이 북분의 외부 둘레돌의 남단일부를 파괴하고 또 다른 돌무지가 있었으나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 고분은 외부 둘레돌과 돌무지와의 관계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원래는 2기의 봉분이 남북으로 연접해 있었던 표형분이 분명하며, 북분의 둘레돌과 남분의 돌무지와의 연접관계로 보아 북분이 선축되고 남분이 후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살펴보면, 3산입식금관, 금제귀고리, 금제허리띠일괄품 등 대규모 왕족릉급 고분에서 볼 수 있는 호화로운 유물들과 각종의 칠기류, 용기류들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들 가운데에는 이 고분의 축조연대와 관련하여 극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유명은제합(有銘銀製盒) 1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은제합은 십자형꼭지가 달린 뚜껑과 바닥이 편평한 바리모양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은합의 뚜껑안쪽과 그릇의 바깥쪽 밑바닥에 ‘연수원년신묘(延壽元年辛卯)’라는 침각명이 있어 주목을 받았다. 이 연호는 고구려의 연호로 추정되고 있고 451년으로 여겨지는데, 451년은 신라 눌지왕(訥祗王) 35년,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원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 고분의 연대는 은합에 보이는 연대보다는 조금 늦은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피장자는 여자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古新羅 瑞鳳塚의 年代問題 1(金昌鎬, 伽倻通信 13·14合集, 1985년)
  • 慶州瑞鳳塚の發掘(小泉顯夫, 史學雜誌 38-1, 192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