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

금란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강원도 통천군의 옛 지명

일반정보

금란(金蘭)은 현 강원도 통천군 일대의 옛 지명이다.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휴양군(休壤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금양군(金壤郡)이 되었다가, 고려 충렬왕대 통주(通州)로 고쳐졌다. 지금의 지명인 통천은 조선 태종 13년(1413)에 이르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란 본문 이미지 1

전문정보

금란(金蘭)은 현 강원도 통천군 일대의 옛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5 강원도 통천군 군명조에 보이는 통천군의 여러 명칭 중 하나로 금란을 언급하고 있다.

『삼국사기』 권35 잡지4 지리2 신라 삭주 금양군조에 따르면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휴양군(休壤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쳐 금양군(金壤郡)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통천군 연혁조에는 고려 초 현령(縣令)을 두었고, 충렬왕 11년(1285)에 통주방어사(通州防禦使)로 승격하였으며, 조선 태종 13년(1413)에 이르러 현재의 이름인 통천으로 고치고 군(郡)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금란은 화랑의 유람(遊覽) 활동과 관련된 지역으로 두 차례 등장한다. 먼저 『삼국유사』 권3 탑상 백률사(栢栗寺)조에는 신라 제32대 효소왕(孝昭王, 재위 692-702) 때 국선(國仙)이었던 부례랑(夫禮郞)이 무리를 이끌고 금란에 유람하러 가는 도중에 적적(狄賊)에게 잡혀간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책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에는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 때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 4명의 국선(國仙)들이 함께 금란을 유람하다가 왕을 위해 가사 세 수를 지었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
… 國仙邀元郞譽昕郞桂元叔宗郞等 遊覽金蘭 暗有爲君主理邦國之意 乃作歌三首 使心弼舍知 授針卷 送大炬和尙處 令作三歌 初名玄琴抱曲 第二大道曲 第三問群曲 入奏於王 王大喜稱賞 歌未詳 (『三國遺事』 卷2 紀異2 四十八景文大王)
(전략) 국선(國仙)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이 금란(金蘭)을 유람할 때 몰래 임금을 위하여 나라를 다스릴 뜻이 있었다. 이에 노래 세 수를 지어, 심필(心弼) 사지(舍知)를 시켜 공책을 주고 대거화상의 처소에 보내어 세 가지 노래를 짓게 하였다. 첫 번째 곡의 이름은 “현금포곡(玄琴抱曲)”이요, 두 번째는 “대도곡(大道曲)”이며, 세 번째는 “문군곡(問群曲)”이다. 왕에게 들어가 아뢰니 왕은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노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