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질금

니질금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신라 상고기(上古期) 왕을 부르는 이칭. 노례왕과 탈해왕의 일화로부터 유래한 칭호.

일반정보

니질금(尼叱今) 혹은 니사금(尼師今)은 신라 상고기(上古期) 왕의 칭호로 제3대 노례왕부터 제18대 실성왕대까지 사용되었다. 이 칭호는 탈해왕과 노례왕의 대결에서 유래했다. 노례왕이 매부인 탈해왕에게 왕위를 사양하자 탈해왕이 이가 많은 사람이 덕이 많다며 치아수를 시험하자고 한다. 그리하여 떡을 물어 치아수를 보니 노례왕이 더 많아서 그가 먼저 즉위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왕위에 오른 자를 이질금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기이1 제3노례왕(第三弩禮王)조에 따르면 왕이 처음에 왕위를 매부(妹夫) 탈해(脫解)에게 사양하였으나 탈해가 덕이 많은 사람이 이(齒)가 많다고 하니 잇금으로써 시험해 보자고 제안하여 서로 떡을 물어보았으며, 그 결과 노례왕이 이가 많았으므로 탈해보다 먼저 즉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질금(尼叱今)이라고 불렀으니 이질금이라는 칭호가 이 왕대부터 시작되었다고도 전한다. 『삼국사기』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즉위년조에서는 김대문이 이사금에 대하여 “이사금은 방언으로 잇금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 남해(南解)가 장차 죽을 즈음에 아들 유리(儒理)와 사위 탈해(脫解)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 너희 박(朴)·석(昔) 두 성(姓)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를 이어라’고 하였다. 그 후에 김씨 성이 또한 일어나 3성(三姓)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서로 왕위를 이었던 까닭에 이사금이라 불렀다(尼師今方言也 謂齒理 昔南解將死 謂男儒理壻脫解曰 吾死後 汝朴昔二姓 以年長而嗣位焉 其後 金姓亦興 三姓以齒長相嗣 故稱尼師今)”라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이사금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설명대로 ‘잇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치아수가 많은 연장자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한편 이사(尼師)・이질(尼叱)은 계승을 의미하는 “잇”․“이스”의 대역(對譯)으로 보기도 한다. 이사금이 사용된 시기는 박・석・김의 삼씨족 중에 연장자 혹은 현지자(賢智者)가 즉위하는 시기로서 왕위 계승이 큰 문제였으므로 이사금은 “사왕(嗣王)”・“후계왕(後繼王)”의 뜻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이병도, 1976)

최근에는 이사금이라는 칭호가 연장자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구별되는 능력을 가진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시베리아의 샤먼에게 보통 사람보다 많은 신체의 뼈는 신성한 권력의 표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 북방아시아에서도 샤먼들은 보통사람과 다른 육체적 특성을 가진다고 여겨졌는데, 그 예가 손가락이 여섯 개 이거나 치아수가 정상보다 많은 것 등이다. 이러한 점에서 “잇금”으로부터 유래한 이사금이라는 칭호가 시베리아나 북방아시아의 샤먼과 같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고 추정한 것이다.(나희라, 2003)

이사금으로 불린 탈해왕을 예로 보면,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탈해이사금조에 아진의선이 탈해에게 “너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골상이 특이하니 마땅히 학문을 하여 공명을 세워라.(汝非常人 骨相殊異 宜從學 以立功名)”고 한 점에서 탈해가 보통사람과 다른 골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렇게 범인(凡人)과 다른 탈해왕의 뼈로 소상을 만들어 동악에 안치하고 동악신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이사금이 내포한 신성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이나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은 기후나 풍년을 미리알고 조절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왕으로 권위가 인정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사금은 연장자일 뿐 아니라 “주술적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부르는 호칭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나희라, 2003)

참고문헌

李丙燾, 1976,『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나희라, 2003,『신라의 국가제사』, 지식산업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 弩[一作弩]禮尼叱今 [父南解 母雲帝 妃辭要王之女金氏 甲申立 理三十三年 尼叱今 或作尼師今]
제3 노[혹은 노]례이질금 [아버지는 남해이고 어머니는 운제이다. 비는 사요왕의 딸 김씨이다. 갑신에 즉위하여 33년간 다스렸다. 이질금은 또는 이사금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