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덕여왕

진덕여왕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신라 제28대 왕
생몰년: ?-654
재위기간: 647-654

일반정보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은 진평왕의 동생 국기안갈문왕(國其安葛文王)과 아니부인(阿尼夫人)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왕대에 중국의 의관(衣冠)제도와 연호(年號)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하정식(賀正式)을 처음으로 시행하였으며, 김춘추가 당에 들어가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체결하였다. 진덕여왕 8년(654) 왕이 죽었는데, 사량부(沙梁部)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신라의 왕계는 진덕여왕을 마지막으로 성골(聖骨)의 왕통이 끊어졌다고 하므로, 진덕여왕대까지를 『삼국사기』에서는 상대(上代)라 하였고, 『삼국유사』에서는 중고(中古)라 하였다.

진덕여왕 본문 이미지 1

전문정보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은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동생 국기안갈문왕(國其安葛文王)과 아니부인(阿尼夫人)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사촌으로 “성골의 남자가 없는 상태(聖骨男盡)”의 상황에서 마지막 성골의 신분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진덕여왕의 즉위는 비담의 난을 진압하였던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귀족세력의 영향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김영하, 2002)

진덕여왕대는 유교에 관한 기록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김춘추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진덕여왕이 즉위하였지만 선덕여왕과는 달리 여왕자격시비에 대한 논란이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비담의 난을 계기로 구귀족세력이 몰락하고, 반대로 신귀족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였음을 의미한다. (김덕원, 2007)

진덕여왕대는 신라 내정의 정비를 바탕으로 김춘추의 활발한 대당외교(對唐外交)로 이어졌다. 김춘추는 진덕여왕대 대당외교의 전개를 통해서 나당동맹의 체결이라는 군사적인 목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당에 숙위(宿衛)로 머물게 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신라와 당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당 고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진덕여왕 4년(650)에 김춘추의 아들 법민(法敏)이 진덕여왕이 지은 『태평송(太平頌)』을 당(唐) 고종(高宗)에게 바친 것은 이러한 우호관계의 한 예라 하겠다.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외교활동을 벌인 결과 신라 내정(內政)에도 많은 정치개혁이 이루어졌다. 진덕여왕 3년(649) 중국식 의관을 채택하고, 진덕여왕 4년(650)에는 독자적 연호인 태화(太和)를 버리고 당나라 고종(高宗)의 연호인 영휘(永徽)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또 통합적으로 운영되던 업무의 세분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두드러진 특징은 신라시대의 최고 행정관청인 집사부(執事部)의 설치와 왕궁을 호위하던 관청인 시위부(侍衛府)의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집사부는 당의 정치제도의 영향으로 김춘추와 김유신 등 신귀족세력의 필요에 의해서 설치된 것이다.(이기백, 1974; 신형식, 1984) 김춘추와 김유신 등은 집사부를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인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그것은 결국 김춘추가 즉위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이명식, 1992) 또한 시위부의 개편은 비담의 난을 진압한 이후에 그 경험의 결과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즉 왕권에 도전하려고 무력도발을 일으키는 세력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이때 개편된 시위부의 군사력이 김춘추가 즉위할 때에 군사적인 기반을 담당하였을 것이다.(이문기, 1997) 결국 진덕여왕의 재위기는 신귀족세력들이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자신들의 시대를 준비하는 과도기로 보여 진다.(신형식, 1984 ; 정용숙, 1994)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덕왕 8년(654)년조에는 “봄 3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를 진덕이라 하고 사량부에 장사지냈다 한다. 또한 당 고종이 이를 듣고 영광문(永光門)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상승(太常丞) 장문수(張文收)를 사신으로 보내 부절을 가지고 조문케 하였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의 위를 추증하고 비단 300단을 내려주었다(春三月 王薨 諡曰眞德 葬沙梁部 唐高宗聞之 爲擧哀於永光門 使太常丞張文收持節吊祭之 贈開府儀同三司 賜綵段三百)” 고 한다.

참고문헌

이기백, 1974, 『新羅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신형식, 1984, 『韓國古代史의 新硏究』, 일조각.
이명식, 1992, 『新羅政治史硏究』, 형설출판사.
정용숙, 1994, 「신라의 여왕들」『한국사시민강좌』15.
이문기, 1997, 『新羅 兵制史硏究』, 일조각.
김영하, 2002, 『韓國 古代社會의 軍事와 政治』,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김덕원, 2007, 『新羅中古政治史硏究』, 경인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十八 眞德女王 [名勝曼 金氏 父眞平王之弟國其安葛文王 母阿尼夫人 朴氏 奴追□□□葛文王之女也 或云月明非也 丁未立 治七年] 大和[戊申]<二> [已上中古聖骨 已<下>下古眞骨]
제28 진덕여왕 [이름은 승만이고 김씨이다. 아버지는 진평왕의 동생 국기안 갈문왕이고, 어머니는 아니부인 박씨로 노추□□□갈문왕의 딸이다. 또는 월명이라고도 하나 잘못이다. 정미(647)에 즉위하여 7년간 다스렸다.] 대화는 [무신(648)부터] 2년간이다. [이상은 중고로 성골이고 이하는 하고로 진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