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 조개무지

곽지 조개무지

[ 北濟州 郭支 貝塚 ]

지역 북제주
곽지 패총 전경

곽지 패총 전경

북제주군 애월읍 곽지리(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걸친 조개무지유적으로 제주시에서 남제주군 대정읍을 거쳐 서귀포시로 이어지는 해안 일주도로변의 남쪽변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은 하천을 가까이 둔 해발 30-40m의 완만하고 넓은 해안가 들판에 형성되어 있으며 서남쪽으로 약 5㎞ 떨어진 지점에 빌레못 동굴이, 동쪽으로 약 1㎞ 떨어진 과오름 기슭에 4기의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1973년에 처음 발견되어 1979년과 1984년 2회에 걸쳐 제주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개무지는 총 7개의 지점에서 피트 또는 층위단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Ⅱ지구와 Ⅲ지구가 대표적인 조개무지를 이루고 있다. 이 2개의 지구는 다시 4개의 문화층으로 나뉘어진다.

Ⅱ지구를 살펴보면 제4층은 황갈색토층으로 두께는 30㎝ 내외이며, 패각은 거의 없었고, 유물 또한 극소량이 출토되었다. 이 층에서는 골아가리토기(口脣刻目土器)와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등의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 제3층은 흑갈색부식층으로 두께는 약 50-60㎝인데, 패각의 양과 출토유물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 층에서는 4층에서 출토된 유물 이외에도 점토띠토기(粘土帶土器), 흑색마연토기, 갈색마연토기, 고리손잡이토기가 출토되었다.

제2층은 혼패층으로 두께는 40-50㎝로 많은 양의 패각과 부식토가 혼합되어 있다. 이 층은 층위의 두께, 출토유물의 양 등에서 곽지 조개무지 Ⅱ지구를 대표하는 퇴적층으로 외반구연항아리(外反口緣壺)와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가 주로 출토되었다. 외반구연항아리는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고, 어깨부위가 비교적 뚜렷이 형성되어 있으며 입지름에 비해 바닥이 좁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 토기와 조합을 이루는 장방형 또는 원통형 꼭지의 뚜껑이 함께 출토되었으며 컵형토기, 봉상(棒狀), 반구유공(半球有孔) 및 꼭지형 손잡이토기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김해식토기는 20여 점의 파편이 출토되었으며 쇠손칼(鐵刀子)과 골각기(骨角器) 등이 공반되었다. 제1층은 표토층으로 지하 20-30㎝까지이며, 경작으로 인하여 교란된 층이다. 여기에서는 외반구연항아리토기와 김해식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Ⅲ지구 역시 4개의 문화층으로 나뉘어지는데 4층은 황갈색점토층으로 두께는 18-37㎝로 출토유물은 극히 적으나, Ⅱ지구의 무문토기에 비해 경도가 훨씬 높고 두께가 얇아진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층에서는 Ⅱ지구에서 보이지 않던 파행집선(波行集線)무늬의 삼국시대 도질토기(陶質土器)가 출토되고 있어 Ⅱ지구에 비해 늦은 시기에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제3층은 흑갈색점토층으로 두께는 25-43㎝이며 외반구연깊은바리모양토기(外反口緣深鉢形土器)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Ⅱ지구의 출토품에 비해 경질이고 태토의 보강제는 보다 세립화(細粒化)되었다. 기형(器形)도 동체부가 완만하게 불러지고 바닥이 보다 안정된 깊은바리모양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 크기도 작아졌다. 4층에 비해 파행집선문 도질토기와 타날문 도질토기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원통형의 무문토기 손잡이도 출토되었다. 제2층은 혼토패각층으로 두께는 25-45㎝이며 Ⅲ지구를 대표하는 층위이다. 무문토기는 외반구연심발형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이 토기와 조합을 이루는 원통형꼭지 뚜껑이 출토되었다. 도질토기는 파행선무늬와 타날문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제1층은 표토층으로 두께는 15-25㎝이며 경작으로 인해 교란된 층이다. 외반구연심발형토기와 경질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양상으로 미루어 Ⅱ지구는 구멍무늬토기, 덧띠무늬토기 등이 출토되는 청동기시대층과 외반구연토기등이 출토되는 철기시대층으로 이루어졌으며. Ⅲ지구는 철기시대 말기에 이루어진 단일 퇴적층임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은 위에서 설명한 토기 이외에도 흙으로 만든 그물추(漁網錘), 가락바퀴(紡錘車)와 현무암, 안산암, 응회암 등으로 만든 조갯날도끼, 공이(敲石), 갈판(碾石)과 갈돌(石棒), 그물추, 숫돌(砥石) 등이 있다. 이밖에 사슴뿔과 멧돼지 이빨로 만든 칼자루모양이나 송곳모양의 골각기와 사슴, 멧돼지, 소뼈, 철제칼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양상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 한반도에서 무문토기 문화가 전파되어 철기시대 말기까지 토기제작석기공작이 이루어지고 농사가 실시되는 한편 동물도 사육하는 등 끊임없이 한반도 남부로부터 문화가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郭支貝塚(李白圭·李淸圭, 濟州大學校博物館, 19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