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아가리토기

골아가리토기

[ 口脣刻目土器 ]

아가리 부분 상면에 예새 또는 손톱을 이용하여 눈금(刻目, notch)을 새긴 토기로, 구순각목문토기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대체로 ‘/’나 ‘I’형의 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시문하는 것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X’, ‘N’, ‘V’ 모양으로 시문되기도 한다. 아가리에 눈금을 시문하는 양식은 한국 신석기시대의 이른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구려토기까지 오랜 시간 분포한다.

골아가리 세부

골아가리 세부

휴암리 A호주거지 출토 골아가리토기. 높이 19.4cm

휴암리 A호주거지 출토 골아가리토기. 높이 19.4cm

신석기시대의 골아가리토기는 주로 남해안 유적에서 발견되며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지두문토기(指頭文土器),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 등과 결합하여 나타나는데, 중기신석기시대가 되면서 소멸한다. 한편 고구려토기에서 나타나는 골아가리 무늬는 주로 장동호(長胴壺)에 국한되는데, 그 수량은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골아가리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와 중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특히 전기 청동기시대의 바리형(鉢形)토기와 호형(壺形)토기에서 많이 발견된다.

전기 청동기시대의 골아가리토기는 역삼동식 유물군에서 구멍무늬와 결합하여 발견되는 예가 많았고 구멍무늬토기의 기원으로 생각되는 동북지방에서도 이러한 예가 보였기 때문에 구멍무늬토기의 계통을 나타내는 중요한 양식적 속성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최근 이중구연의 가락동식 토기와도 결합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어, 특정 양식의 기원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이 시기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양식적 속성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아가리무늬는 가락동식 토기와 결합하는 예가 아직 많지 않고, 주로 역삼동식 유물군의 구멍무늬토기와 결합되고 있다. 따라서 구멍무늬와 결합된 골아가리무늬토기를 순수하게 구멍무늬만 시문된 토기와 구별하여 골아가리구멍토기(口脣刻目 孔列土器)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골아가리토기를 구멍토기와의 관련성 하에서 인식한다면, 주로 구멍무늬토기의 주분포권인 한강유역과 충청도 서부지역, 그리고 경상도 지방에 분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반유물 역시 공렬토기와 마찬가지로, 세장방형(細長方形)의 주거지에서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피홈이 있는 간돌검(有血溝式 磨製石劍), 유경식(有莖式) 또는 삼각편평만입(三角扁平灣入)석촉, 그리고 장주형(長舟形) 및 어형(魚形)의 반달모양돌칼(半月形石刀) 등과 공반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락동식 토기와 결합되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그 분포 범위는 남한 전역으로 확대해서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전기 청동기시대의 골아가리토기는 남한 전역에 다양한 양식의 토기와 결합하여 나타나지만, 대부분은 역삼동식의 구멍무늬토기와 결합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기 청동기시대의 후반부가 되면서 골아가리무늬와 구멍무늬토기간의 결합은 많이 약해지고, 그 분포 역시 이전 시기에 비해 지역적으로 제한된다. 서산 휴암리와 안면 고남리 등지에서 구연부가 외반한 토기가 등장하면서 골아가리무늬와 구멍무늬는 점차 분리되는 경향을 보이며, 중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송국리형토기(松菊里型土器)가 등장하면서는구멍토기가 전반적으로 소멸되는 데에 반해 골아가리무늬는 송국리형 토기와 공반되는 바리형 및 호형토기에 시문되면서 지속되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점차 바리형토기가 소멸되고 송국리형 토기가 주류를 점하는 시기가 되면, 골아가리무늬가 송국리형 토기에 시문되는 경우도 소수 발견된다. 중기 청동기시대에 나타나는 골아가리토기는 원형의 송국리형주거지 내에서 일단경식(一段莖式)석촉, 삼각형석도(三角形石刀), 유구석부(有溝石斧) 등과 공반한다.

구순각목토기의 하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제한되어 있지만, 보령 관창리에서 송국리형토기와 단면원형 점토대토기(斷面圓形 粘土帶土器), 흑도(黑陶), 두형토기(豆形土器)가 공반하는 주거지에서 골아가리토기가 발견되는 데에 반해 여타 점토대토기 유적에서는 발견례가 없어, 단면원형 점토대토기의 등장과 더불어 소멸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골아가리토기의 상한은 역삼동식 구멍토기의 상한과 마찬가지인 B.C. 10∼8세기경으로 볼 수 있고, 하한은 점토대토기가 등장하는 B.C. 300년경인 것으로 보인다. 그 분포양상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전국적인 분포에서 제한적인 분포로 국한되는 경향을 보인다.

참고문헌

  • 口脣刻目文土器의 變遷과 性格에 대하여-無文土器를 中心으로(李亨源, 百濟硏究 28,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1998년)
  • 新石器時代 口脣刻目文土器小考-南海岸貝塚出土品을 中心으로(任鶴鐘, 考古學誌 6, 1994년)
  • 南韓前期無文土器의 編年-嶺南地方의 資料를 中心으로(安在皓, 釜山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