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돌검

간돌검

부산 괴정동 출토 간돌검

부산 괴정동 출토 간돌검

돌을 갈아 만든 단검으로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이다. 간돌검〔磨製石劍〕은 연해주(沿海州)와 일본 큐슈지역(九州地域)에 국한되어 분포하고, 중국이나 시베리아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나라에 고유한 특징적인 석기이다. 일본 큐슈지역에서 출토된 간돌검은 한반도 남해안지역의 것과 형태는 물론 석질까지 흡사하여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간돌검은 기본적으로 곧은날〔直刃〕을 가진 검몸〔劍身〕과 자루〔柄部〕로 조합된다. 검몸은 검끝〔鋒部〕에서는 뾰족하다가 양날부분으로 가면서 급격하게 넓어지는데, 양날은 거의 평행을 이루면서 아래쪽으로 가면서 다소 넓어진다. 검몸의 횡단면은 긴 마름모꼴이나 볼록렌즈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일부는 검몸 양쪽에 피홈〔血溝〕을 만든 것도 있다. 간돌검의 재료로는 퇴적암 계통의 셰일, 슬레이트, 니암제, 점판암 등이 주로 이용되었다. 크기는 길이가 30㎝ 내외의 것이 많으나, 긴 것은 김해 무계리 출토예처럼 46㎝되는 것도 있으며, 짧은 것은 15㎝ 정도도 있다.

간돌검의 형식손잡이의 유무, 피홈의 유무, 검코〔劍麵〕의 형태, 손잡이의 형태, 슴베〔莖部〕의 길이와 형태, 검몸의 형태 등에 따라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주로 손잡이 부분과 슴베의 형태를 기준 삼아서 자루를 착장하기 위한 슴베가 달린 슴베식〔有莖式〕, 손에 쥐는 손잡이가 달린 자루식〔有柄式〕, 슴베나 손잡이가 없는 형식〔無莖無柄式〕 등으로 분류된다. 슴베식은 창으로 보기도 하였으나 부여 송국리 집자리〔住居址〕에서 목제 손잡이가 탄화되어 발견된 이후 간돌검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손잡이나 슴베가 없는 형식도 상당수 발견되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은 돌창〔石槍〕으로 이해된다.

충남지역 출토 각종 간돌검

충남지역 출토 각종 간돌검

슴베있는간돌검은 검몸 기부의 중앙에 검몸과 비슷하거나 좁은 슴베를 가진 간돌검으로서 슴베 끝부분에 홈이 있으며, 슴베의 폭과 길이에 따라 지역과 시간적 차이를 보인다. 이 형식 중에 슴베 폭이 좁고 긴 것은 검몸에 피홈이 있는 것이 많은데, 주로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방, 즉 한반도 서북지방이 중심 출토지이나 전남 영광이나 보성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이 형식의 간돌검이 출토하는 집자리 유적은 평양 금탄리 등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 관계 유적이 대부분이다.

슴베가 넓고 짧은 것은 보성강유역과 남해안지역이 중심 출토지이어서 양 지역간의 형식적인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형식의 간돌검은 고인돌〔支石墓〕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

자루달린간돌검의 자루는 손에 쥐기 좋게 중간부분이 우묵하고 끝 부분으로 갈수록 크게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자루 한가운데에 가로로 홈이 있거나 이중돌기가 나 있는 것도 있다. 홈이 나 있는 것은 유단병식〔有段柄式〕, 돌기가 있는 자루를 유절병식(有節柄式)으로 분류한다. 유단병식은 통자루식〔一段柄式〕과 홈자루식〔二段柄式〕으로 구분되며, 통자루식은 간돌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주로 한강 이남의 남부지역의 무덤 유적에서 출토하는데 무덤 이외에 출토된 것 중에 여주 흔암리 집자리가 있다. 무덤 유적으로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石棺墓〕과 여수 적량동 고인돌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함께 출토된 바 있다. 홈자루식은 손잡이 중앙에 홈이 있는 형식과 마디가 있는 형식으로 나뉘어진다. 이 형식은 파주 옥석리와 여주 흔암리 등 청동기시대 전기에 속한 집자리에서 주로 출토되며, 경상도지방에서는 초기 철기시대에 속하는 덧띠토기〔粘土帶土器〕 유적에서 소형화된 형식으로 출토된 바 있다.

간돌검은 집자리와 같은 생활유적에서 발견되므로 자르거나, 찌르는데 사용되는 실생활 용구로 사용되었음이 확인된다. 집자리 출토 간돌검은 실용적인 것으로 길이가 짧아서, 여주 흔암리 12호 집자리 출토 간돌검 3점 중 1점은 검몸이 10㎝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고인돌 등의 무덤에서 출토되면서, 그 중 상당수가 날 부분이 손상이 없고, 자루 위와 아래 끝이 심하게 벌어져 실용품으로 볼 수 없는 예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김해 무계리 고인돌에서 출토된 것으로 자루의 위아래 폭이 20㎝ 정도 되어 심하게 돌출되어 의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간돌검의 연대는 기원전 8세기설과 기원전 5세기설이 있는데, 청동기문화와 관련하거나 중국식동검의 연대에 비교하여 설정된 것이다. 청동기시대 조기 유적에서는 간돌검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전기에 해당하는 장방형과 세장방형 집자리에서 홈자루식, 통자루식, 슴베식이 모두 출토되고 있다. 방사성탄소연대 등의 절대연대자료로 보아 적어도 기원전 13~12세기까지 상한 연대를 올려볼 수 있게 되었다. 하한은 덧띠토기나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를 표지로 한 한국식동검문화기에는 거의 출토되지 않는 것을 보아 기원전 3~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후에 형성된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자루식 목제검이 출토된 점이나 철검형 간돌검의 존재에서 더 늦은 시기까지 잔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다.

간돌검은 한반도 자체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여지나, 그 조형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다. 해방 전에는 특히 피홈이 있는 슴베있는간돌검이 세형동검을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주장하여 금석병용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간돌검이 출토된 파주 옥석리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가 세형동검보다 이른 기원전 6세기로 밝혀지고,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비파형동검과 함께 간돌검이 출토되면서부터 그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그 후 남한에서 발견되는 유절병식간돌검은 완주 상림리 유적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중국 춘치우(春秋)시대 말 찌안구어(戰國) 초의 중국식동검과 자루형식이 흡사하여 이를 모방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루 대신 슴베가 달린 한반도 남부지방의 간돌검의 경우에는 비파형동검을 모방하였다는 설 이외 오르도스(Ordos)검, 청동꺾창〔銅戈〕, 청동투겁창〔銅棠〕 등 주로 청동무기에서 찾으려는 견해도 있다. (이영문)

참고문헌

  • 한국 마제석검 기원에 관한 일고찰(김원용, 백산학보 10, 1971년)
  • 한국 마제석검의 연구 현황(김선우, 한국상고사학보 16, 1994년)
  • 한국식 석검의 연구(1)(김구근, 호암미술관 연구논문집 1, 1996년)
  • 전남지방출토 마제석검에 관한 연구(이영문, 한국상고사학보 25, 1997년)

동의어

마제석검(磨製石劍)

참조어

홈자루식간돌검, 이단병식마제석검(二段柄式磨製石劍), 마디있는간돌검, 유절식마제석검(有節式磨製石劍), 슴베있는간돌검, 유경식마제석검(有莖式磨製石劍), 유병식마제석검(有柄式磨製石劍), 일단병식마제석검(一段柄式磨製石劍), 자루달린간돌검, 통자루식간돌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