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문학

인도문학

다른 표기 언어 Indian literature , 印度文學

요약 산스크리트·프라크리트·팔리어 등 다양한 언어로 씌어진 인도아대륙(亞大陸) 문학작품의 총체.

목차

펼치기
  1. 베다 문학
  2. 서사시와 교훈문학
    1. 개요
    2. 〈마하바라타〉
    3. 〈라마야나〉
    4. 푸라나
  3. 고전 산스크리트 카비아
    1. 개요
    2. 마하카비아
    3. 2행서정시
    4. 희곡
    5. 설화문학
  4. 팔리어 문학
  5. 프라크리트 문학
  6. 타밀 문학
  7. 인도 근대문학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종족·언어를 가진 인도는 종교나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분야에서도 풍부한 유산을 남겼다. 인도문학은 BC 15세기경에 형성된 〈리그베다 Rigveda〉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지속되어왔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도문학은 사용된 언어에 따라 산스크리트 문학, 프라크리트(大衆語) 문학, 드라비다 문학, 그리고 인도의 여러 방언에 의한 문학과 영국의 영향에 의한 영어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중 인도문학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산스크리트 문학이다.

산스크리트 문학은 베다 문헌에 사용된 베다 산스크리트에 의한 것과 파니니(BC 6~5세기)에 의해 정리되고 체계화된 고전 산스크리트에 의한 문학으로 구분된다. 인도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고전 산스크리트 문학은 BC 600년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절 없이 지속되어왔지만,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는 AD 1~7세기의 고전기이다. 브라만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사주의적 베다 문화에 대항해 독자적 종교문화를 구축한 불교자이나교는 각각 프라크리트의 일종인 팔리어와 아르다마가디어를 사용한 방대한 양의 문헌을 남겼고, 그 가운데에는 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대중어 또는 자연어인 프라크리트로부터 벵골어·힌디어·라자스탄어·펀자브어·구자라트어·마라타어·카슈미르어·오리야어·아삼어·신드어 등 갖가지 지방어들도 발전되었으며, 그에 따라 이 언어들에 의한 문학작품이 양산되었다. 인도에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인도아리아어계 언어들과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드라비다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것은 현재 타밀나두 주와 스리랑카 북부에서 사용되는 타밀어로서, 그 문학은 기원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밖에도 텔루구어(안드라프라데시 주)·칸나다어(마이소르 주)·말라야람어(케랄라 주)에 의한 문학이 있다.

이러한 언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산스크리트 외의 인도문학들은 그 내용과 형식에서 산스크리트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내용적으로는 〈마하바라타 Mahābhārata〉·〈라마야나 Rāmāyaṇa〉 같은 서사시와 푸라나(古傳說) 등이 기본적 주제를 제공했고, 형식면에서는 산스크리트 문학이 창작의 모델이 되었으며, 산스크리트 시학은 미학이론을 제공했다.

베다 문학

현존하는 최초의 인도 문헌은 브라만적 힌두교의 기본 경전인 〈리그베다〉(BC 1400경)이다. 〈리그베다〉는 태양신(수리아), 폭풍신(루드라), 불의 신(아그니), 번개의 신(인드라), 새벽의 신(우샤스) 등 수많은 자연신에 대한 찬가의 모음으로서, 1,000여 개의 찬가들이 10장으로 나뉘어 있다.

본래 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제례에 사용된 종교적·주술적 의도에서 제작된 것이지만, 그 가운데는 문학적으로 수준높은 시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리그베다〉의 형식은 후대의 산스크리트 시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베다의 본집(samhita)에는 그밖에도 〈리그베다〉에서 가려뽑은 시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부르도록 만든 〈사마베다 Sāmaveda〉와 제사에서 일단의 승려들이 음송하는 주술적 언어들(yajus)의 모음인 〈야주르베다 Yajurveda〉, 그리고 찬가 외에도 많은 주술적 주문을 포함한 〈아타르바베다 Atharvaveda〉가 있으며, 문학적으로는 마지막 것이 앞의 2가지보다 더 흥미를 끈다.

베다에는 본집부 외에도 제사의 방법과 의의 등을 설명한, 본집부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마나 Brāhmaṇa〉가 있다. 이것은 건조한 산문으로서 설화 부분만 문학적 관심을 끈다. 베다 문헌의 다음 층을 이루는 〈아랑야카 Āraṇyaka〉도 그 성격은 위와 유사하다. 그러나 베다의 끝부분을 이루는 〈우파니샤드 Upaniṣad〉에서는 상황이 좀 달라진다. 산문 가운데 때때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와 가르침의 형태로 사상이 전달되고 있다. 초기의 것은 산문이나 후기(BC 500경)에 와서는 운문으로 돌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후에 커다란 대중성을 얻은 장르인 교훈시의 가장 오랜 예이다.

베다 경전의 신성함은 동시에 엄밀함과 정확성을 필수요건으로 했고, 그런 요구로부터 음성학·운율학·어원학·문법학이 발전했다. 특히 파니니에 의해 정립된 산스크리트 문법학은 그후 산스크리트 교육의 기초가 되었고, 이 고전 산스크리트는 중세까지도 문예활동의 재료가 되었다.

서사시와 교훈문학

개요

베다기가 끝나는 BC 6세기경은 불교와 자이나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창립과 대중적인 힌두교의 출현과 더불어 문화적인 대변혁기를 맞이하며, 인도문학은 여러 방향으로 갈려 발전하게 된다.

그중에서 산스크리트 문학은 베다 정신에 기반을 둔 작품들, 특히 〈마하바라타〉·〈라마야나〉에서 계승된다.

〈마하바라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Iliad〉와 〈오디세이아 Odyssey〉를 합한 것의 7배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로서, 10만 개의 2행시가 18편으로 나뉘어 있다.

그 기원은 BC 1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실제로는 BC 400경~AD 400년경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에피소드가 삽입되고 개정·증보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고대 인도의 종교·철학·정치·사회·법률·풍습을 알려주는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힌두 학문의 보고로 발전되었다. 주제는 사촌간인 판두족과 쿠루족 사이의 왕위를 둘러싼 갈등과 전쟁이다.

사전의 계약대로 주사위 노름에서 승리한 쿠루족이 왕국을 차지하고 패배한 판두족은 13년간 숲에서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쿠루족은 13년간의 유배생활이 끝나면 왕국의 일부를 돌려주기로 한 처음 계약을 어기고, 그로 인해 인도의 군소왕국들이 함께 참전한 18일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전체적 줄거리는 단순한 영웅신화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수많은 2차적 일화와 삽화가 첨가되어 매우 복잡하며 다양한 내용을 갖는다.

〈마하바라타〉가 생명력을 지속하고 후대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오히려 이들 2차적이고 부수적인 일화들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힌두교의 성서로 불리는 〈바가바드기타 Bhagavadgῑtā〉는 문학적 수준이 높은 아름다운 종교시이다.

〈라마야나〉

2차적 일화의 삽입으로 통일성이 자주 무너지는 〈마하바라타〉에 비해 2번째 서사시인 〈라마야나〉는 통일성이 잘 보존된 작품이다.

시선(詩仙)으로 추앙되는 발미키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며, 영웅 라마의 무용담을 주제로 한 7편, 2만 4,000송(頌)의 대작이다. 그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왕위계승을 약속받은 라마는 친자식의 왕위계승을 탐하는 한 왕비의 계략에 속아 부인 시타, 동생 락슈마나와 더불어 숲으로 망명한다.

숲에서 악마 라바나가 시타를 자기의 왕국인 랑카 섬으로 납치해가며, 원숭이 왕 하누만의 도움으로 라마는 부인을 구출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 끝에 마침내 라마는 왕국을 탈환한다. 라마는 완벽하고 정의로운 왕으로서, 시타는 인도인의 이상적인 여성상으로서, 락슈마나는 형제애의 모범으로서, 하누만은 충성의 상징으로서 지금까지도 인도인들의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다. 〈라마야나〉는 최초의 시(ādi-kāvya)라고 불릴 만큼 시적인 신선함과 문예적인 의도를 가진 작품으로서, 특히 후대 문학의 특징인 은유와 비유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푸라나

AD 4세기경부터 푸라나 문헌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푸라나는 우주의 창조, 신들의 계보, 영웅들의 무용담, 성자와 고행자의 전설을 다룬 백과전서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그중에서도 문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것은 비슈누와 그의 크리슈나로서의 화현, 그리고 그의 젊은시절의 유희를 찬양한 〈바가바타 푸라나 Bhāgavata-Purāṇa〉(9~10세기)로서, 그때까지 씌어진 것 중 가장 위대한 시라고 평가되며 인도의 종교·예술·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고전 산스크리트 카비아

개요

파니니에 의한 고전 산스크리트의 조직화와 대서사시, 특히 〈라마야나〉의 제작, 그리고 팔리어 서정시로 대표되는 세련된 작시법의 기반 위에서 1세기경에 카비아라는 양식이 발전되었고, 이것이 이후 1,000년간 산스크리트 문학을 지배했다.

카비아 양식은 귀와 마음을 모두 만족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극히 의식적인 노력을 특징으로 하며, 그런 과정에서 정교한 비유법의 시학과 문법규칙에 지배되는 조심스러운 언어, 증대되는 복합어와 복잡한 운율의 사용을 보여준다(운율학). 이 양식은 마하(大)카비아·2행시·드라마·설화문학으로 표현되었으며, 아슈바고샤·칼리다사·바나·단딘·마가·바바부티·바라비 등의 대가들이 있다. 현존하는 최초의 카비아 문학작품은 불교시인 아슈바고샤(1세기 활동)에 의해 씌어진 〈붓다차리타 Buddhacarita〉('부처의 생애')·〈사운다라난다 Saundarānanda〉('순다리와 난다')이다.

후대의 작품에 비하면 문체가 단순하지만 자연의 묘사, 장엄한 광경, 연애의 일화, 격언적 표현 등 카비아 장르의 전형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아슈바고샤는 특히 복잡한 작시법과 문법 단어에 대한 철저한 습득에서 마하카비아 작가의 선구자이다.

마하카비아

고전적 형태의 마하카비아는 일정하지 않은 수의 많은 시구로 구성되며, 각 시구는 주제에 따라 그에 적합한 운율로 지어진다.

그리고 주제는 대개 서사시로부터 취한다. 시의 각 은 연속된 설화의 일부로서 의도된 것이지만, 흔히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생각을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리그베다〉의 특징이 고전문학에서도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범적인 마하카비아로는 6개 작품을 꼽는데, 그중 3개 작품은 칼리다사의 것이고, 나머지는 각각 바라비, 마가·슈리하르샤의 것이다.

가장 위대한 산스크리트 시인인 칼리다사의 생애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아마도 찬드라굽타 2세인 비크라마디티아(380~415 재위) 치하에서 생존했으며, 한때 산스크리트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자이니에서 살았던 듯하다.

칼리다사의 문체는 다른 작가에 비해 소박하나 매우 심사숙고된, 그리고 매우 적절한 소박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세 작품 중 둘은 서사시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다. 먼저 〈전쟁신 쿠마라의 탄생 Kumārasaṃbhava〉은 시바 신과 히말라야 산의 딸인 파르바티의 사랑과 결혼, 그 결과로 전쟁신 쿠마라의 탄생을 그린 작품이다. 2번째의 〈라구 왕의 가계 Raghuvaṃśa〉는 〈라마야나〉로부터 소재를 취한 작품으로서 라마와 시타의 이야기를 정점으로 한 태양왕가의 흥망성쇠를 기술한 것이다.

이 작품은 특히 사계절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시에 일화적 성격을 부여하는 부수적 설화로 유명하다. 3번째의 〈구름의 사자(使者) Meghadūta〉는 2행을 한 단위로 하는 간단한 보통 연애시와 달리, 그들을 연결시켜 설화로 만든 점에서 독특한 작품이다. 그 내용은 산 위에서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는 야차(귀신의 일종)가 강제로 헤어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봉우리에 걸린 구름에게 그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훌륭한 산스크리트 시 가운데 하나로서, 매우 우아한 운율로 자연과 도시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바라비(6세기 활동)의 〈아르주나와 산(山)사람 Kirātārju-nῑya〉은 〈마하바라타〉로부터 소재를 취한 작품으로서, 판두족의 왕자 아르주나와 산사람으로 위장한 시바 신의 만남과 싸움을 그리고 있다.

바라비의 언어와 문체는 칼리다사의 것보다 난해하지만, 그의 시는 인도의 문학적 전통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역시 〈마하바라타〉로부터 소재를 취한 마가(8세기 활동)의 〈시슈팔라 왕의 살해 Śiśupālavadha〉는 시슈팔라 왕이 영웅적 신 크리슈나를 모독하고 뒤이은 격투에서 참수당한다는 내용이다.

슈리하르샤(12세기 활동)는 역시 〈마하바라타〉의 날라와 다마얀티의 사랑이야기에 토대로 한 〈나이샤다 왕의 생애 Naiṣadhacarita〉를 저작했다.

산디아카라(12세기 활동)의 〈라마의 생애 Rāmacarita〉는 영웅적인 신 라마와 시인 자신의 왕인 벵골의 라마팔라를 동시에 찬양한 시이다. 역시 12세기경의 벵골의 시인 자야데바〈목동의 노래 Gῑtagovinda〉는 〈바가바타 푸라나〉에 근거하여 목동으로 화현한 크리슈나 신의 젊은시절의 사랑과 유희를 그린 시이다.

극히 음악적인 운율을 가진 이 종교적 연애 서정시는 지금도 인도에서 즐겨 불리고 있다.

2행서정시

산스크리트 시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은 1개의 시구로 이루어진 서정시이다.

사실 수준이 높은 산스크리트 시는 대부분 2행시이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이든지 가능하나 가장 애호되는 시들의 일반적 주제는 신들에 대한 찬양과 봉헌,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 장르에 사용되는 언어는 산스크리트뿐만 아니라 프라크리트도 포함된다. 특히 여성이 경험하는 연애시는 프라크리트로 지어진다.

특정한 신에 대한 저자의 봉헌을 표현하는 시는 〈리그베다〉의 찬송시와 힌두교의 신전예배 모두에 연관된다(예배용). 이러한 봉헌시는 수없이 많으나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마유라의 〈태양신에 대한 8개의 시 Sūryāṣṭka〉와 철학자 샹카라가 수집한 〈아름다운 하늘의 물결치는 강 Saudaryalaharῑ〉, 빌바망갈라의 〈크리슈나 청문(聽聞)의 불사주(不死酒) Kṛṣṇakarṇāmrta〉 등이다.

이들 찬송시(stotra)는 흔히 음악과 결합되어 오늘날에도 대중적으로 불리고 있다. 온갖 종류의 에로틱한 경험도 서정시로 훌륭하게 표현되었다(에로티시즘). 그러나 연정에 동기를 둔 많은 주제들 가운데서도 시인들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끄는 것은 이별한 연인들의 비애이다.

칼리다사의 〈구름의 사자(使者)〉처럼 남성의 비애를 그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성의 고뇌이다. 연애시는 보통 하나의 절로 구성되며, 그중 대다수는 육체적 사랑(śṛṅgāra)의 감정을 암시하는 것이다. 매우 에로틱한 표현은 많지만, 그렇다고 해도 외설적인 것은 아주 드물다. 산스크리트 시학의 규범은 성적 유희에 대한 조야한 표현을 금하고 있다. 연애시와 종교적 봉헌시는 자유롭게 혼합되어 때로는 성적 표현을 문자대로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신의 사랑을 구하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은유로 해석해야 할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더욱이 벵골의 크리슈나 교파와 같은 신애주의(信愛主義 bhakti) 교파에서는 연애시의 시학을 일종의 신학으로 발전시키기까지 했다(박티).

서정시집 가운데는 잘 짜여진 단시(短詩 subhāṣita)를 100개씩 모은 것(śataka)이 있다. 700개의 서정시를 모은 할라의 〈700개의 시 Sattasaῑ〉, 7세기경에 카슈미르의 왕 아마루가 지은 〈아마루의 시 100선 Amaruśataka〉, 그리고 바르트르하리가 사랑, 세속적인 지혜, 해탈 등의 3가지 주제에 대해 각각 100개의 시를 모아 펴낸 작품도 유명하다.

12세기의 시인 빌하나는 제후의 딸과의 은밀한 사랑을 회상한 〈비밀스러운 사랑에 대한 시 50선 Caurapañcāśikā〉을 썼다.

희곡

모든 문예형식 가운데 인도인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연극이다.

인도의 연극은 시·음악·무용 등 다른 예술형식들과 결합됨으로써 종합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산스크리트 연극이라고는 부르지만, 극 중에 사용되는 언어는 산스크리트만이 아니라 여성을 포함하여 교육수준이 낮은 인물일 경우에는 프라크리트도 포함된다. 연극은 서사시에서 소재를 빌려온 나타카(nātạka)와, 저자 자신의 창작인(가끔 설화로부터 소재를 취하기도 하지만) 프라카라나(prakaraṇa)의 2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산스크리트 연극은 먼저 신에 대한 예배와 기원으로 시작한다.

식사, 옷을 입거나 벗는 것, 폭력의 묘사는 금지되며, 중간에 갈등과 비애가 개입될지라도 마지막에는 조화를 회복한 해피엔딩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산스크리트 연극에는 비극이 없다. 현존하는 최초의 완벽한 희곡은 바사(3세기경 활동)에 의한 13개의 작품으로서, 이들은 서사시와 설화문학에 기초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바사바다타의 꿈 Svapnavāsavadattā〉이며 〈차루다타의 가난 Daridra-Cārudatta〉 역시 매우 흥미있는 작품이다.

5세기경 굽타 제국의 대도시 가운데 하나인 우자이니는 예술과 문학이 번성한 곳으로서 많은 극작가·시인들을 배출했다.

그중에서 칼리다사는 인도 최대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평가되며, 3개의 희곡이 현존한다. 〈말라비카와 아그니미트라 Mālavikāgnimitra〉는 궁중 안에서의 연애음모를 그린 작품이다. 또한 〈용맹으로 얻은 우르바시 Vikramorvaśῑ〉는 〈리그베다〉만큼 오랜 전설에 근거한 극으로서 요정 우르바시와 그녀를 사랑한 왕 푸루라바스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왕이 벗은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에 응한 우르바시는 그 언약이 깨진 후 비탄에 빠진 왕을 남겨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리나 마지막에는 재회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산스크리트 희곡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것은 〈샤쿤탈라와 확인의 표시 Abhijñānaśakuntalā〉이다.

〈마하바라타〉로부터 소재를 취한 이 작품은 은자의 딸 샤쿤탈라와 우연히 은자의 숲을 방문한 왕의 사랑을 그린 것이다. 칼리다사의 특기는 감정의 섬세한 묘사였으며, 능란한 표현력을 구사하여 희곡에 영원한 미를 불어넣었다.

슈드라카는 모든 프라카라나 극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인 〈작은 진흙 수레 Mṛcchakaṭikā〉의 저자이다.

그 내용은 가난한 상인과 기생의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훼방하는 권세가의 이야기이다. 이 희곡은 도시사회의 여러 가지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굽타 왕궁의 신하였던 비샤카다타는 카우틸리아의 〈실리론(實利論) Arthaśāstra〉에 나타난 전제적 통치술을 극화한 〈락샤사와 인장(印章) Mudrārākṣasa〉을 썼다. 7세기 카나우지의 왕 하르샤는 〈라트나발리 Ratnāvalῑ〉·〈프리야다르시카 Priyadarsika〉·〈용왕의 기쁨 Nāgānanda〉이라는 3개의 흥미있는 희곡을 남겼다.

칼리다사에 비견되는 바바부티(8세기초 활동)도 3개의 희곡을 남겼는데, 그 중 둘은 〈라마야나〉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다. 〈영웅의 행적 Mahāvῑracariat〉은 라마와 라바나의 전투를 다룬 것이며, 〈라마의 후기행적 Uttararāmacarita〉은 시타와 헤어진 후의 라마의 삶을 다루고 있다.

프라카라나의 작품인 〈말라티와 마다바 Mālatῑ-Mādhava〉는 마술과 탄트라 불교가 혼합된 복잡한 연애음모담이다. 이상에서 기술된 심각한 극 외에도 단막으로 구성된 많은 소극(笑劇)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흥미있는 것은 한 배우가 혼자 상상의 대상에게 말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형식의 독백극(bḥāna)이다.

그 대표적 작품에는 시아밀라카(5세기 활동)의 〈기생의 거절 Pādataḍitaka〉이 있다.

설화문학

산스크리트 설화문학은 매우 풍부하여, 세계의 모든 민담들이 인도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였다(민속문학). 가장 잘 알려진 우화집은 〈판차탄트라 Pañca-tantra〉('5章')로서, 젊은 왕자에게 정치술을 가르친다는 형식으로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여 세속적인 지혜와 성공으로 이끄는 생활을 훈계한다.

〈히토파데샤 Hitopadeśa〉('유익한 교훈')는 부분적으로 〈판차탄트라〉의 번안으로서, 후자가 산문 중심인 데 비해 운문과 산문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실린 작품이며, 이미 18세기에 유럽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산스크리트 학습의 교재로 널리 읽혀왔다.

설화문학 중 대표적인 것은 구나디아의 〈대설화 Bṛhat-kathā〉로서, 원본은 프라크리트로 씌어졌으나 현존하지 않고, 산스크리트 번안들만 전해지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마데바(11세기 활동)의 〈설화의 바다 Kathāsaritsāgara〉로서, 중심되는 줄거리가 상실될 정도로 많은 부수적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원본에 보다 충실하고 훨씬 덜 산만한 것으로는 부다스바민(7세기경 활동)의 〈대설화(大說話)의 요약송(要略頌) Bṛhatkathāślokasaṃgraha〉으로서, 가장 매력적인 산스크리트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설화집으로는 〈악귀 이야기 25선 Vetālapañcaviṃśtikā〉·〈앵무 70화 Śūkasaptati〉·〈왕좌 이야기 32선 Siṃhāsana-dvātrim-sātikā〉이 있다. 〈대설화〉군에 관련되는 또다른 작품으로는 자이나 프라크리트로 씌어진 〈바수데바의 방랑 Vāsudevahindi〉이 있으며, 크리슈나 바수데바가 여러 부인들을 얻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그밖에 단딘(6세기말 7세기초 활동)의 〈10왕자의 이야기 Daśakumāracarita〉는 왕위상속권을 빼앗긴 10명의 왕자의 모험을 그린 산문이다.

바나(7세기초 활동)의 〈하르샤의 위업 Harṣacarita〉은 카나우지의 왕으로서 하르샤의 활동을 그리고 있으며, 〈카담바리 Kādambarῑ〉는 악운에 시달리는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팔리어 문학

팔리어는 테라바다[上座部] 불교의 경전어로, 프라크리트의 고어 형태 중 하나이다. 팔리어 경전은 전적으로 종교적 동기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그 가운데는 상당한 문학적 수준을 지닌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법구경(法句經) Dhammapada〉은 인도문학의 도덕적·경구적인 경향의 좋은 표본이다. 〈법구경〉의 대중성은 〈바가바드기타〉의 경우와 같이 그 문학적 스타일에 적잖이 의존하고 있다. 보다 형식적인 문체의 〈수타니파타 Suttanipāta〉('經集')는 55개의 설화적·교훈적인 시를 포함하고 있으며, 산스크리트의 송(頌 śloka)에 유사한 운율이 사용되고 있다. 비구·비구니들의 출가의 계기, 출가 후의 변화와 마음의 상태를 읊은 종교적 독백문학인 〈장로게(長老偈) Theragāthā〉·〈장로니게(長老尼偈) Therῑgāthā〉는 특히 흥미있는 작품이다.

불교 서정시의 운율은 매우 다양해서 약 30여 종이 발견되며, 팔리어 운문의 독특한 문체와 운율, 비유적 표현과 어법은 산스크리트 고전 카비아 문학의 길을 닦아주었다. 설화문학 장르에 속하는 〈자타카 Jātaka〉는 석가모니의 전생이야기로 여겨지는 500개의 일화를 모은 흥미있는 문헌이다. 이것은 우화·동화·속요·일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인도 사회와 풍물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서북인도 박트리아 왕국의 그리스계 왕인 메난드로스와 비구 나가세나의 토론을 내용으로 한 〈밀린다 왕문경(王問經) Milindapañha〉은 비유와 우화의 형태로 불교의 초심자를 계도해주는, 플라톤의 〈대화〉에 비견되는 흥미있는 작품이다.

프라크리트 문학

프라크리트 문학에 대해서는 산스크리트 문학을 다루면서 산발적으로 언급되었다. 많은 작품들이 형식과 내용에 있어 산스크리트 작품과 유사하다. 〈둑길의 건축 Setubandha〉은 라마의 스리랑카 공략을 그린 시이며, 8세기의 시인 바크파티의 〈벵골 왕의 살해 Gaudavadha〉는 칸야쿠브자의 왕 야쇼바르만의 공훈을 기술한 긴 찬양시이다.

또 10세기의 극작가 라자셰카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카르푸라만자리 Karpuramañjari〉라는 희곡을 썼다. 프라크리트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할라의 〈700송 Saptasataka〉이다. 자이나 문헌은 프라크리트의 일종인 아르다마가디어로 씌어졌으며, 문학적 가치는 비교적 덜하다.

타밀 문학

드라비다어족에 속하는 남인도의 여러 언어들 가운데서도 독자적인 고전문학을 가진 점에서 드라비다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타밀 문학이다. 최고(最古)의 타밀 문학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고전기(BC 100~AD 250)에 3개의 문학 학파(caṅkam)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2번째 학파에 속하는 〈톨카피얌 Tolkāppiyam〉('古文典')과 3번째 학파에 속하는 〈8대 명시선집 Ettutogai〉이 현존한다. 전자에는 음운론·형태론 등 문법적인 내용 외에도 시론이 포함되어 있으며, 후자에는 200명이 넘는 시인들에 의한 2,000여 수의 시가 수집되어 있다. 이보다 좀 후기의 작품이지만, 〈10대 장시 Pattirruppattu〉라는 유사한 스타일의 장시모음집이 있다. 타밀 시는 각 절의 시작에 유사한 운(韻)을 맞추는데, 이것은 산스크리트 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이다.

다음 단계(250~600)의 타밀 문학에는 아리안의 종교와 문학의 영향이 뚜렷해지며, 특히 종교적·잠언적 작품이 나타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330수의 2행시로 구성된 잠언 시집인 〈티루쿠랄 Tirukkuṛaḷ〉이며 그밖에 〈18개의 소품 Patiṟeṇkῑṟkaṇakku〉도 유사한 성격의 작품이다. 6세기경에는 아리안의 영향이 타밀 지역 전체에 침투하여 타밀의 고유한 스타일이 급속히 변화해갔고, 산스크리트 이름인 카비아라고 불리는 장시가 제작되었다.

이들 중 최초의 것은 촐라 왕국의 왕자인 일랑고바디갈의 작품으로 알려진 〈보석 장식의 발찌 Cilappadikāram〉이다. 이것은 남편 코발란과 부인 카나기, 그리고 무희 마다비 사이의 사랑과 갈등, 코발란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조금 후대에 지어진 샤탄의 〈마니메칼라이 Maṇimēkalai〉는 〈보석 장식의 발찌〉에서의 남자주인공인 코발란과 무희 마다비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마니메칼라이가 연인의 죽음을 안 후에 비구니가 되는 이야기이다. 3번째 타밀 서사시인 〈치바카친타마니 Cῑvakacintāmaṇi〉는 자이나교도인 티루타카데바르의 저작으로서 영웅 치바카의 공훈을 그리고 있다. 6세기 이후의 타밀 시인들은 자신의 전통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산스크리트 작품들을 번역하고 동화시켰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9세기에 지은 캄반의 〈라마야나〉이다. 이것은 원본의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캄반 자신의 일화를 첨가하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 변형시킨 작품이다. 중세 타밀 문학의 극치는 시바와 비슈누 교파의 신애주의자들의 봉헌시이다.

인도 근대문학

인도의 근대문학은 19세기초부터 본격화된 서양과의 접촉에서 비롯되었다. 이 접촉은 인도의 사회·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고, 문학도 여기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 옛 전통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시도되었으며, 동시에 서양의 새로운 요소들을 과감하게 흡수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벵골 지방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가장 광범위하고도 철저하게 이루어져왔는데 이 지방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문학의 중심지로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인도의 대표적 작가인 반킴 찬드라 채터지(1838~94)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가 모두 벵골 출신으로 인도의 옛 전통을 창조적으로 되살림으로써 인도 민족주의의 기틀을 확고히 했다. 타고르는 그의 서정시집 〈기탄잘리 Gῑitāñjali〉로 1913년 노벨상을 받았다.

채터지 (Bankim Chandra Chatterjee)
채터지 (Bankim Chandra Chatterjee)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인도 근대문학의 형성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본격적인 산문형식의 도입이다. 이때부터 작가들은 비로소 전통적 운문의 엄격한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어체 문장을 바탕으로 하는 생동감 있는 현실적 문학에 접근하게 되었다. 이러한 형식상의 변화와 함께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주제들이 종교적이고 지의적인 주제들을 대체해나갔으며, 작가들은 신이나 신화적 영웅들의 지나치게 꾸며진 위업 대신 사람들이 지상에서 겪는 시련과 고난에 초점을 맞추었다.

곧 카스트 제도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실상이 구체적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조혼·문맹·재혼금지 등으로 학대받는 여성의 처지가 주목받게 되었다. 단편소설 작가로 유명한 프렘 찬드(1880~1936)는 힘없이 당하기만 하는 농민과 여성의 좌절을 주제로 하여 대부분의 작품을 썼다. 시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서정시가 서사시로부터 확고히 독립되어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소네트 등 서양시의 형식이 활발하게 도입되었다. 미카엘 마두 수단 더트(1824~73)는 무운시의 형식을 도입하여 〈틸로타마 Tilottama〉라는 서사시를 지었다. 종교적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오로빈도 고스(1872~1950)는 자신의 신비주의적 철학을 담은 〈태양신 사비트리의 전설과 상징성 Savitri : A Legend and a Symbol〉(1950~51)이라는 무운시 형식의 긴 서사시를 쓰기도 했다. 더트는 인도의 희곡에 비극적 요소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요컨대 인도의 근대문학은 그 주제와 표현에 있어서 대중화와 다양화의 목표를 추구해왔다.

다타 (Michael Madhusudan Datta)
다타 (Michael Madhusudan Dat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