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다사

칼리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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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인도

요약 5세기경에 활동한 인도의 산스크리트 시인·극작가.

인도의 전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간주된다.

그가 직접 썼다고 판명된 6개 작품은 〈아비지냐나샤쿤탈라 Abhijñānaśakuntala〉('샤쿤탈라의 앎'),〈비크라모르바시 Vikramorvaśῑ〉('용기로 얻은 우르바시'),〈말라비카그니미트라 Mālavikāgnimitra〉('말라비카와 아그니미트라'), 서사시 〈라구방샤 Raghuvaṃśa〉('라구 왕조'),〈쿠마라상바바 Kumārasambhava〉('전쟁 신의 탄생'), 서정시 〈메가두타 Meghadūta〉('구름 전령') 등이다.

대부분의 고전적인 인도 작가와 마찬가지로, 칼리다사의 인격이나 역사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시에서 그가 진보적이지만 정통 힌두교 세계관에 철두철미한 브라만(사제)임이 암시되고 있으나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부분은 없다. 글자 그대로는 '칼리의 종'이라는 뜻의 그의 이름으로 보아 그가 비록 다른 신들 특히 비슈누를 이따금 칭송하기도 했지만 시바파(시바 신의 숭배자, 시바의 배우자는 칼리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론(스리랑카)의 어느 전승에 의하면, 그는 실론에서 517년 왕위에 오른 쿠마라다사 통치 시기에 죽었다고 한다.

보다 신빙성이 있는 전승에 의하면 칼리다사는 우자인의 전설적인 왕 비크라마디티야('용기의 태양'이라는 의미로 일반적인 제왕의 호칭)의 궁정에 있던 '아홉 보배'의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비크라마디티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은 여러 명이고, 게다가 9명의 유명한 궁정 신하는 결코 모두 동시대인이었을 수가 없다. 다만 그가 슝가 왕조의 제2대 왕이자 그의 희곡 중 한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이기도 한 아그니미트라의 재위기간(BC 170경)과 칼리다사를 찬양하는 아이호레 비문(634) 작성 시기의 사이에 살았던 시인이라는 사실만이 확실할 뿐이다.

비문을 새긴 사람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만다소르 비문(473)은 그의 문체를 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가설도 그의 생몰연대를 둘러싼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정보와 무성한 추측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대부분 많은 학자들이 칼리다사를 찬드라 굽타 2세(380경~415경 재위)와 연관시키는데 그를 찬란한 문명의 굽타 왕조에 관련짓는 가장 설득력 있으면서도 추측적인 근거는 그의 작품의 특성에 있다. 그의 작품은 잔잔하면서 고도로 세련된 당시 상류계급의 문화적 가치를 가장 완벽하게 반영하여 철저히 진술했다.

전통적으로 많은 작품이 이 시인과 연관되어 있으나 원전 연구에 의해 6개 작품이 진본이며 또 한 작품 〈리투상하라 Ṛtusaṃhāra〉('사계절 시가선'이라는 뜻으로,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 추정됨) 정도가 그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칼리다사의 시적·지적인 발전을 추적하려는 시도는 개인과는 관계없는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의 일반적인 특징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의 작품은 인도의 전통 속에서 산스크리트와 그것이 지지하고 있는 문화에 잠재한 문학적 특성을 구현했다고 평가된다. 칼리다사는 산스크리트 문학작품 저작의 전형이 되었다.

희곡 중 〈아비지냐나샤쿤탈라〉가 가장 유명하며 인도의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성과물로 인정받는다.

서사시적 전설에서 소재를 취한 이 작품은 두시안타 왕의 님프 샤쿤탈라에 대한 유혹, 그의 아들과 헤어짐, 그뒤 하늘에서의 그들의 재결합을 그리고 있다. 이 서사시 신화는 그들 사이의 아이로 인해 중요한데, 그 아이가 곧 바라타로서 인도 국명 바라타바르샤('바라타의 아대륙')의 시조가 되는 선조이기 때문이다. 칼리다사는 이 이야기를 사랑의 전원시로 개작했는데, 시의 등장인물들은 전형적인 귀족의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소녀는 감상적이고 헌신적이며 자연의 미묘함을 의식한다. 왕은 다르마(종교적이고 사회적인 법과 의무)를 가장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자 사회질서의 수호자이고 단호한 영웅이면서도 상냥하며 잃어버린 사랑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칼리다사가 이야기 속에 만들어놓은 변화에 의해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이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연인과의 이별은 두시안타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한 성자의 저주로 인해 미혹에 싸인 채 행동할 뿐이다. 칼리다사의 다른 모든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세계의 어느 문학작품도 능가하기 어려운 정확하면서도 우아한 은유로 표현되어 있다.

2번째 희곡 〈비크라모르바시〉(아마도 vikramāditya에 대한 익살인 듯함)는 양식은 상당히 다르기는 하지만 베다(가장 초기의 인도 경전)에 버금 가는 오래된 전설을 싣고 있다.

주제는 한 인간의 소녀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 작품은 '미친 장면'(제4막)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장면에서 슬픔에 빠진 왕은 여러 가지 꽃과 나무가 마치 자신의 연인인 것처럼 이름을 부르면서 아름다운 숲을 헤맨다. 이 장면에서는 부분적으로 노래와 춤도 등장한다. 다른 성격의 작품인 3번째 희곡 〈말라비카그니미트라〉는 후궁 처첩들의 음모를 그리고 있는데 희극적이고 재미있으면서도 높은 목적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유일하게 시대 추정이 가능한 근거를 몇몇 갖고 있어 그 역사적 사실성이 자주 논의되고 있다.

〈카비아 Kāvya〉는 질적인 면에서 균일하며 서사시와 서정시의 2가지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서사시의 대표작으로는 2편의 장시 〈라구방샤〉와 〈쿠마라상바바〉가 있다.

〈라구방샤〉는 영웅 라마의 선조와 후손에 관한 전설을 상세히 기술한 것이며, 〈쿠마라상바바〉는 시바가 그의 배우자 파르바티에게 유혹당하는 일과, 카마(욕망의 신)의 개입과 재난, 시바의 아들 쿠마라(스칸다)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 이들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인은 운율적·문법적으로 완벽한 각 연(聯)들을 복잡하면서도 평온한 심상에 도움이 되도록 서로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산스크리트를 시어로 다루는 칼리다사의 솜씨가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돋보인다.

서정시 〈메가두타〉는 어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연인에게 보낸 편지를 싣고 있는데, 북인도의 산·강·숲을 묘사한 뛰어나고 통찰력 있는 삽화가 군데군데 들어 있다. 칼리다사의 작품에 반영된 사회는 고상함과 당당한 기운이 넘치는 궁정귀족들의 사회이다. 아마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고대 브라만의 종교 전통, 특히 산스크리트와 관련 있는 의식을 새롭고 화려하며 세속적인 힌두교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굽타 시대의 문예부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융합은 그 시대의 불안한 사회적 기반을 극복하지 못했다. 굽타 제국의 붕괴에 뒤이은 혼란으로 칼리다사는 산스크리트 학자나 인도 귀족이 다시는 이르지 못하는 완벽함의 전형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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