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드라 굽타 2세

찬드라 굽타 2세

다른 표기 언어 Candra Gupta II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인도

요약 북부 인도의 강력했던 황제(380경~415경 재위).
Vikramāditya라고도 함.

사무드라 굽타의 아들이며 찬드라 굽타 1세의 손자이다. 그의 재위 동안 미술·건축·조각이 활발히 제작되었으며 고대 인도의 문화수준이 절정에 달했다. 전승에 의하면 찬드라 굽타 2세는 나약한 형을 암살하고 왕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대제국을 물려받고 아버지 사무드라 굽타의 정책을 계승하여 군사적 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변 영토들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해나갔다.

388~409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 북쪽지역인 구자라트와 서부 인도의 사우라슈트라 및 우자인에 수도를 두고 있던 말와 왕조를 정복했다. 이 영토들은 발하슈 호(카자흐스탄에 있음) 주변지역에서 이주해온 스키타이인의 후예인 샤카조 수장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찬드라 굽타 2세는 남쪽 배후지를 강화하기 위해 딸 프라바바티와 바카타카의 왕 루드라세나 2세를 결혼시켰다. 루드라세나가 죽자 프라바바티는 자기 아들들의 섭정 역할을 함으로써 남쪽 지역에서의 굽타의 영향력을 강화시켜주었다. 또한 찬드라 굽타 2세는 마이소르에 있던 한 왕조와 결혼동맹을 체결했던 것으로 보인다. 델리의 쿠와트울이슬람 사원에 있는 철기둥에 산스크리트로 찬송되고 있는 왕이 찬드라 굽타 2세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강하고 용맹스런 지배자였던 그는 광대한 제국을 다스릴 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가 발행한 은화에 비크라마디티아('용맹의 태양')라는 칭호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후에 힌두 전승에 나오는 비크라마디티아 왕의 원형인 듯하다. 그는 대체로 자신이 수도로 정한 아요디아에 거주했지만 파탈리푸트라 시(지금의 비하르 주 파트나)도 번영과 위세를 누렸다. 인도를 평화롭고 부유하게 만든 자비로운 왕이었던 그는 학문을 후원하기도 했다. 그의 궁전에는 천문학자인 바라하미히라와 산스크리트 시인이며 극작가인 칼리다사 등이 머물렀다.

그의 재위중 6년 동안(405~411)을 인도에서 보낸 중국인 불교 순례자인 법현은 정부제도, 구제사업과 의료 시행을 위한 시설들(찬드라 굽타 2세는 무료 요양소와 병원들을 운영했음), 백성들의 친절을 격찬했다. 그러나 법현이 찬드라 굽타 2세나 그의 궁전을 직접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찬드라 굽타 2세는 독실한 힌두교도였지만 불교와 자이나교도 용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