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유적을 찾다!

하늘에서 유적을 찾다!

항공고고학

주제 인문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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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달은 여러 학문 분야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예를 들어 오늘날 천문대에서는 더 이상 천문학자들이 별을 관측하려고 천체망원경에 눈을 바짝 갖다 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망원경으로 관측된 천체의 모습들은 모두 디지털 영상 신호로 전환되어 모니터 화면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고고학도 이제는 땅을 파지 않고도 유적을 찾아낸다. 몇 년 전 일본에서는 ‘자력계측기(Magnetometer)’라는 장비를 이용해서 예전 같으면 수십 년간 발굴 작업을 거쳐야 겨우 발견했을 야요이 시대의 집터 수십 군데를 불과 1주일 여 만에 파악해낸 적도 있다.

이렇듯 변화된 모습 중에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새로운 분야를 이룬 경우도 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항공고고학’이 좋은 예이다.

1차 대전 당시, 프랑스 육군항공대 소속 앙투안이라는 조종사는 중동 사막지대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일출 때나 일몰 무렵이면 조그마한 언덕들이 기하학적인 모양의 복잡한 그림자를 드리우곤 했는데 그것은 수평비행을 하고 있을 때만 보였던 것이다. 원래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그 이상한 흔적이 고대 유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원전 10세기경에 번성했던 옛 페니키아의 항구도시 티레를 발굴했다.

항공고고학이란 이처럼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옛 건축물의 흔적을 고공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이 한번 토목공사를 한 곳이라면 그 자리에는 나중에 공사를 여러 번 다시 하거나 평평하게 밀어버리더라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는다. 특히 도랑이나 기둥 구멍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채워진 부드러운 흙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습기를 머금어서 초목이 상대적으로 더 잘 자라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구별하기 어렵지만 하늘에서 보면 뚜렷하게 구별이 된다.

반대로 석벽이나 건축물의 기초였던 부분은 식물이 잘 자라지 않아서 역시 높은 곳에서 보면 눈에 뜨인다. 이밖에도 덮였던 토양이 다시 깎이면서 옛 건축물의 석재 파편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곳도 있고, 또 농사를 짓던 자리도 여러 가지 흔적들이 남아 그 당시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흔적들은 비행기에서 어느 각도에서나 언제든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계절에 따라, 하루 중의 시간대에 따라, 습도에 따라, 그리고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어느 항공고고학자는 이런 과정을 ‘숨바꼭질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게다가 평소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 유별나게 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에만 보이는 흔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농부는 어느 해에 돈이 없어서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밭에서 로마 시대의 대규모 병영 터가 발견된 적도 있다. 화학비료는 이러한 흔적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안개 속에서 적외선 사진을 찍으면 유적의 흔적이 땅 위에 백색 또는 청색의 선명한 무늬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항공고고학은 특히 유럽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이 방법으로 발견된 유적이 자그마치 몇 만 군데가 넘는다. 너무나도 많은 유적이 새로 발견되어서 오히려 고고학자들이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이렇게 발견된 유적들 가운데는 고고학자들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것도 많다. 줄리어스 시저가 남긴 기록에서 언급되는 로마시대 고올 귀족의 광대한 농장도 항공고고학으로 발견되었고, 영국의 정복왕 윌리엄 1세 시대의 토지대장에 올라 있던 12~13세기경의 촌락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또 밀림으로 뒤덮여 있어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지역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8세기 무렵에 존재했던 대규모 농장지대로 밝혀지기도 했다.

항공고고학의 역사는 어느덧 90여 년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우주시대가 개막된 뒤 또 한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인공위성이나 우주 왕복선에서도 관찰하게 된 것이다. 사실 우주선은 비행기보다 더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적인 흔적보다 자연적인 지형을 살피는 데 유리하다. 예를 들어 사막지대에서 오랜 옛날 강물이 흘렀던 자리 등을 찾을 수 있다. 또 고대도시의 흔적을 찾는 데도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1994년에 발사된 우주왕복선 ‘인데버호’는 스리랑카와 인도 사이의 해역을 위성사진으로 정밀 촬영했는데, 여기서 ‘아담의 다리’라고 명명된 수중 구조물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2002년 10월에 나사에서 공식 발표되었으며, 수심 1.2m 아래에 잠겨있는 30km길이의 석회암질 구조물이 스리랑카와 인도 사이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나사에서는 촬영만 했을 뿐 그 구조물의 기원이나 연대 등은 다른 전문가가 판단할 일이라며 자의적인 해석을 경계했지만, 고고학자들은 고대 인도신화 <라마야나>에 나오는 거대한 다리의 실존이 입증된 것 아닌가 하여 흥분에 휩싸였다. 이 신화에서는 비슈누신이 라마 왕자로 환생하여 라바나 마왕이 납치해간 부인 시타를 구하고자 원숭이 부대를 이끌고 랑카(스리랑카)로 진격하는데, 이 때 인도와 스리랑카를 잇는 거대한 다리를 신의 권능으로 일시에 건설했다는 것이다.

항공고고학은 지상에서는 확보할 수 없는 넓은 시야, 즉 조감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독보적인 강점이다. 널리 알려진 페루 나스카 평원의 수수께끼 같은 거대한 그림들도 지상에서는 도저히 그 규모나 윤곽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항공고고학에서는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자외선이나 적외선 촬영 기법 등을 통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유적의 흔적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는 안개가 낀 흐린 날에도 숨겨진 유적의 흔적이 드러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도시의 확장은 항공고고학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조건들이다.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인구의 유동이 많아지면 유적의 흔적들이 지워지고 묻혀져서 항공고고학을 통해 유적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이라면 유적발굴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이런 항공고고학적 탐사 방법을 통해 숨겨진 유적의 발굴을 본격적으로 시도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박상준 - SF/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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