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함포탑재 전함을 개발한 최무선

세계 최초의 함포탑재 전함을 개발한 최무선

주제 화학공정, 우주/항공/천문/해양
칼럼 분류 인물기사
칼럼 작성일 200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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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오줌, 마루 밑의 흙, 유황, 버드나무 재. 이상 네 가지 재료를 섞어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화약’,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흑색화약(Black Powder)’이다. 조금 황당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재료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흑색화약은 검은 빛이 나는 화약으로서 황(S)과 숯(C) 그리고 질산칼륨(KNO3, 초석)이 적당 비율로 섞인 것이다. 질산칼륨이 높은 온도에서 열분해되면 산소가 발생하고, 이 산소가 연료인 황과 숯을 태워서(산화) 많은 열을 낸다. 다시 이 열이 질산칼륨의 분해와 황과 탄소의 산화를 계속 진행시켜 결국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14세기 고려시대, 왜구들이 고려의 연안에 출현하여 난동과 노략질을 일삼았다. 왜구들은 백병전(白兵戰)에 매우 능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해적선은 매우 날쌔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이들을 물리칠 방법은 몽골 군이 사용하고 있는 화약을 이용하는 것. 하지만 몽골 군의 극비사항이었던 화약제조법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한 최무선은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최무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숯과 초석(礎石) 그리고 유황(硫黃)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숯은 지천에 널려있고 황은 유황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왜(倭)로부터 수입할 수 있었지만, 초석 즉, 질산칼륨을 얻는 것이 문제였다. 초석을 얻는 것이 화약기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1375년, 최무선은 20년 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자신만의 초석제조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비법이란 이러하다.

“오래된 집의 부뚜막이나 마루, 또는 온돌 밑에서 채취한 흙을 사람과 가축의 오줌 그리고 나뭇재와 섞은 후 비에 맞지 않게 쌓아 둔다. 그리고 그 위를 말똥으로 덮고 불을 지피고 나면 흰 이끼가 생기는데, 4~5개월 지난 다음 물로 씻어내고 졸이면 거친 초석이 얻어진다. 이 초석을 다시 물에 녹인 후 정제하면 화약에 사용할 수 있는 초석이 생긴다.”

최무선의 화약 폭발 실험을 참관한 조정의 대신들은 화약과 화포의 연구 및 생산기관인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1377년)하여 화포를 제작하게 하였다. 한편 최무선은 화포를 싣기에 적합한 군선을 개발하는 등 함포의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최무선에 의해 제작된 다양한 크기와 위력의 화포와 군선이 그 위력을 발휘한 것은 겨우 3년 뒤의 일이다.

1380년 왜구의 두목인 아지발도(阿只拔都)가 5백여 척의 군선과 2만여 명의 졸개를 데리고 지금의 군산에 쳐들어왔을 때 최무선은 화포로 무장한 군선 단 40여 척만으로 왜구의 군선 전부를 궤멸시켰다. 이때 배에서 화포를 사용한 것은 세계 해전사에 한 획을 긋는 세계 최초 해전사 대포 사용이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로는 세계해전사에서 대함용(對檻用)함포의 사용은 레판토 해전(1571년)에서 스페인 함대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가 서양에 비해 약 200년 앞서 사용한 것이다.

최무선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아들 최해산이 뒤를 이어 연구와 개발을 계속하였다. 최무선 부자가 개발한 여러 가지 화약과 화포는 훗날 이순신 함대가 왜군을 무찌르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임진왜란 때 기껏해야 개인화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은 화포로 무장한 조선 수군의 화력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최무선에 의해 개발된 ‘판옥선에 탑재된 대형 함포’가 거북선과 이순신이라는 신화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19세기에 니트로글리세린이 발명됨으로써 장구한 세월 동안 세상을 지배하던 흑색화약도 그 자리를 내어 주게 되었다. 그런데 니트로글리세린은 액체라서 작은 충격에도 폭발하는 위험한 물질이어서 다루기가 어려웠다. 이 위험한 액체를 구멍이 많은 흙인 규조토에 섞어서 운반하기 쉬운 고체로 만들고 또 여기에 산화제인 질산나트륨(NaNO3)을 첨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였다. 이는 그 유명한 노벨의 업적이다.

황금(金)을 만드는 꿈을 꾸던 아라비아 연금술사들로부터 수많은 화학적 지식이 생겨났고, 불로장생의 약인 단(丹)을 찾던 중국 연단술사들로부터 화약이 생겨났다. 우리가 다니는 모든 도로와 터널 그리고 댐과 같은 건설공사는 물론이고 석유와 석탄 같은 지하자원도 화약 없이는 얻을 수가 없다. 화약은 인간문명 발달에 그 무엇보다 뒤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화약으로 인해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황금과 불사(不死)의 약을 찾겠다는 소망이 문명발달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이 인류평화를 염원하며 ‘노벨상’을 만든 것은 과학과 기술이 인류에게 미치는 상반되는 두 면에 대한 심각한 고뇌의 결과일 것이다.

  • 이정모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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