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의 거짓과 조작

과학사의 거짓과 조작

진실을 향한 검증의 역사

주제 인문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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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꾸미거나 남을 속이는 사기꾼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진실과 정확성을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의 세계에서도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사기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과학사상 잘 알려진 사기 사건들의 몇 가지 사례와 그 교훈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인류 조상의 화석을 거짓으로 조작했던 이른바 ‘필트다운(Piltdown) 사기 사건’은 고고학상 최대의 가짜 발견 사건으로 꼽힌다. 1910년대에 영국 필트다운 지방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찰스 도슨(Charles Dawson)은 유인원에서 인류로 넘어오는 중간 단계의 인류 조상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과 턱뼈 등을 발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그 동안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서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라 불려온 인류 진화과정 상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인물로 학계의 찬사를 받았고, 그 화석은 가장 오래된 인류라는 뜻으로 발견자의 이름을 딴 ‘에오안트로푸스 도스니(Eoanthropus Dawsoni)’ 혹은 ‘필트다운인’이라고 불려졌다.

그러나 이후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X선 투시검사법, 불소연대측정법과 같은 여러 첨단 과학기술과 방법들을 동원하여 검증한 결과, 필트다운인의 두개골은 비교적 오래된 다른 인류 조상의 것이었지만 턱뼈는 오랑우탄의 뼈를 가공해서 붙이고 표면에 약을 발라서 오래된 것처럼 꾸몄던 가짜임이 1953년에 밝혀졌다. 사후에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 도슨이 스스로 조작했는지, 아니면 그도 화석발굴꾼 등 다른 사람에게 속았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기 사건들이 특히 고고학이나 고생물학 분야에서 이후로도 가끔씩 불거져 나오고 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는 그 동안 구석기 시대의 유적들을 무더기로 발굴하여 명성을 얻었던 한 고고학자가, 실은 유적지에 석기 등을 미리 파묻어놓는 등 거짓으로 날조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과 파문을 몰고 온 바 있다. 중국에서도 공룡과 새의 중간 단계로서 시조새라고도 불리는 아르케오프테릭스(Archaeopteryx)의 화석이 예전에 발굴되었는데, 그 후 진위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여져 ‘제2의 필트다운 사건’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들과는 경우가 좀 다르지만, 밀리컨(Robert A. Millikan; 1868~1953)의 최소전하량 측정 실험은 ‘조작이 진실을 이긴 사건’으로 오랫동안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밀리컨은 이른바 ‘기름방울 실험’이라 불리는 유명한 실험을 통하여 전하량의 최소 단위를 이루는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정확히 측정하였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을 세계적인 공과대학으로 키우고 미국 물리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과학 행정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은 물리학과 대학생이라면 대부분 학부 3학년 무렵에 반드시 거치는 중요한 실험으로 꼽힌다.

20세기 초 물리학계에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전하량이 존재하는가에 관하여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데, 밀리컨은 모든 전하는 기본이 되는 최소 전하량의 배수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반면, 펠릭스 에렌하프트라는 물리학자는 기본 전하량의 최소 단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값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 물리학자는 거의 똑같은 실험을 하였으나 결국 밀리컨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 공로 등으로 192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에렌하프트는 학문적인 패배에 그치지 않고 정신질환에까지 시달리는 등 불행하게 삶을 마쳤다.

그런데 그 후 밀리컨의 실험 노트를 검토한 결과, 밀리컨은 자신이 실험했던 모든 데이터를 정직하게 발표하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버리고 유리한 데이터만을 골라서 사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이 사건은 데이터를 거짓으로 조작한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자신의 약점을 적절하게 숨긴 쪽이 결벽에 가깝게 정직하게 실험한 쪽을 이겼던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로 여겨졌다. 이 사건은 그 동안 자연과학적 진리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상대주의적 관점을 지닌 일부 과학사회학자들의 좋은 공격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밀리컨이 일부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실험상의 엄밀성 등을 고려하여 한 것이지,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수치들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기존의 견해를 뒤집고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인공 다이아몬드 합성 사건’, ‘두꺼비의 혼인혹1) 실험 사건’ 등 잘 알려진 과학사상 사기 사건들의 몇 가지 예가 더 있다. 또한 2002년에는 획기적인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노벨상 후보’로 까지 꼽히던 헨드릭 쇤 박사라는 미국의 젊은 과학자가 몇 년 동안 연구 결과를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나 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 직장인 벨 연구소에서 쫓겨나는 등 과학자들의 조작 사건은 최근에도 이따금씩 발생하고 있다.

과학자들도 인간인 이상 개인적 명성에 집착하거나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연구 성과의 조작 등에 대한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이를 방지하고자 과학자들에게 필요한 윤리선언과 도덕성 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거짓이 탄로 나게 마련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말은 과학계에서도 금언이 될 수 있다. 만물의 법칙을 다루는 과학자들에게도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거짓과 조작의 흐름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어느 분야 보다 철저한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사후에라도 추가 검증이 이루어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의 과학기술은 발전해오지 않았는가?

  • 최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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