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X맨의 초능력, 진짜? 가짜?

영화 X맨의 초능력, 진짜? 가짜?

주제 물리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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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초능력 한 가지를 지닐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이 가장 인기 있을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텔레파시? 손을 대지 않고도 물체를 움직이는 염력? 아니면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예지력?

이제 이 정도로는 좀 싱겁다. 눈에서 에너지 광선이 나오고, 폭풍과 천둥을 마음대로 일으키고, 심지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건 어떨까? 너무 만화 같은 얘기일까?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이야말로 21세기에 진정 필요한 과학적 영감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영화 <엑스맨>은 바로 그런 만화 같은 상상력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 놓은 작품이다. 그리고 실제로 만화가 원작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작품을 감상하자면 기존의 과학적 잣대로 꼬치꼬치 따져서 그 불합리성을 따지기보다는, 그런 상황이 가능하기 위해서 어떤 새로운 이론이나 환경이 필요한지 궁리해 보는 편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엑스맨’들의 리더인 사비에 박사는 특수 장치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그것도 초능력자와 일반인들을 구분해서 한 번에 볼 수가 있으며, 더구나 정신력을 기계로 증폭시켜 이들의 목숨을 한꺼번에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아직까지는 밝혀진 바 없는, 전혀 새로운 일종의 인간생체에너지장(場)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아마 한의학에서 흔히 말하는 기(氣)와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는 아직까지 서양의 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명쾌하게 입증되지 않은 개념이다.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이라 해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셈이다. 초능력자들의 이야기가 허황되게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유지하는 기본 원리, 즉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능력이 뭐가 문제인지 하나씩 짚어 보자.

진 그레이박사의 능력은 텔레파시와 강력한 염력. 텔레파시의 가능성은 아직 과학적으로도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엑스맨 2>에서 보여준 엄청난 염력은 과장이 좀 심했다. 특히 붕괴된 댐에서 흘러내리는 무지막지한 물줄기를 비껴가게 하는 장면은 에너지와 운동의 역학법칙상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 정도의 물리력을 단 한 사람의 인간이 낼 수는 없다. 더구나 직접적으로 손대지 않고 원격으로 힘을 쓴다는 점은 더더욱 넌센스이다.

그런가 하면 눈에서 가공할 위력의 파괴광선을 내뿜는 사이클롭은 가장 황당한 캐릭터중 하나이다. 그렇듯 엄청난 위력의 광선이 어떻게 인간의 몸 속, 정확히 말하자면 눈이 있는 안구 속에서는 안전하게 머물러 있을까? 또한 에너지 보존 법칙상 그런 광선을 발사하려면 엄청난 외부에너지(전원 같은 것)가 별도로 투입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보통 식사량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텔레포테이션(순간이동) 능력을 지닌 나이트크롤러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을 해체시켰다가 이동한 뒤 다시 합체하는 식으로 공간도약을 한다. 이런 과정은 적어도 분자 차원의 화학적 분해-합성과정이 될 텐데 그러자면 적잖은 열량(에너지)이 필요하다. 아마 한번만 순간이동을 해도 탈진해서 죽기 십상일 것이다. 또한 해체된 몸이 다시 합체하려면 각각의 파편마다 원래의 인체구성(유전자지도)이 별도로 기억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 정보량은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저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급속냉각기인 아이스맨은 어떨까. 냉기를 내뿜는 것 또한 다른 초능력자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보존법칙을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다. 어떤 특정한 물체를 주변보다 아주 낮은 온도로 냉각시키려면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정용 냉장고가 얼마나 전기를 많이 쓰는지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이스맨도 냉기를 한번 내뿜고 나면 지쳐서 한동안 꼼짝도 못 할 것이다.

아이스맨에 비하면 파이로는 주변 공기에서 불이 붙기 쉬운 산소 같은 기체성분에 점화만 해 주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학적 가능성이 조금 나은 편이다. 그러나 신체구조가 원래부터 특이체질이 아닌 이상 맨 몸으로 불꽃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만약 특이체질이라면 늘 몸이 불타오를지도 모르는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 격인 울버린은 특수합금이 몸속에 숨어있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그렇듯 과격하고 엄청난 물리적 충격을 계속 받다보면 합금은 온전할지 몰라도 그 밖의 신체부분이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거나 터져버릴 것이다. 살, 내장, 골격, 혈관, 신경 등등. 결론적으로 몸 전체가 특수합금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상현상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스톰은 과학적으로 가장 엉터리에 가깝다. 폭풍이나 천둥 등은 대개 핵폭탄과 맞먹는 규모의 엄청난 물리 현상이다. 이런 일들을 일개 인간 한 명이 유발할 수 있다는 설정은 에너지 보존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발상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엑스맨>의 초능력자들은, 그리고 대부분의 슈퍼영웅 주인공들은 에너지 보존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만화적인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상상력이 발휘된 SF라기보다는 차라리 판타지에 더 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SF작가인 아서 클라크의 명언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그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이 안 된다’고 언명한 바 있다. 불과 100여 년 전의 사람들이 지금의 과학기술을 본다면 아마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21세기말이 되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과학기술이 등장하지 않을까?(<킹콩>은 SF일까, 판타지일까? 참고)

  • 박상준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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