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얼음이 언다??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

주제 지구과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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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야외 냉장고가 있다면 어떨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밤에도 이상고온이나 열대야 현상으로 시민들은 잠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냉장고 속처럼 시원한 곳이 도심에 있다면 여름철 시민들의 불쾌지수는 크게 낮아질 것이다.

실제로 야외에 냉장고 같이 시원한 곳이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 경남 밀양시의 ‘얼음골’, 전북 진안군의 ‘풍혈 · 냉천’, 울릉도의 나리분지의 속칭 ‘에어컨굴’, 그리고 경북 의성군의 ‘빙혈 · 풍혈’이 그것이다.

여름철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며 한여름에도 얼음을 볼 수 있을 만큼 썰렁(?)한 곳이다. 지난 197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해발 1189m의 천황산 중턱에 위치한 얼음골을 통해 그 비밀을 파헤쳐 보자.

얼음골은 산기슭이 돌무더기로 뒤덮인 이란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너덜은 화산암으로 이뤄진 산이 풍화로 부서지면서 만들어진 돌밭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이 돌밭에서 여름철 찬바람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음골의 신비함만큼이나 찬바람을 내뿜는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얼음골의 현상분석’이란 주제발표로 제10회 국제열전달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받은 KAIST 기계과 송태호 교수의 ‘자연대류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류란 빨간 물감을 탄 뜨거운 물과 파란 물감을 탄 차가운 물을 섞으면 태극무늬가 되듯 온도에 따라 유체(流體)가 이동하는 현상이다. 겨울철 차가운 공기도 무겁기 때문에 너덜의 아래쪽부터 너덜 안으로 유입된다. 유입된 공기는 여름과 가을동안 데워진 돌로부터 열을 빼앗으며 너덜의 위쪽으로 올라가고, 열을 빼앗긴 돌은 너덜의 아래부터 점차 차가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너덜을 이루는 돌은 겨울철의 냉기를 저장하고 내부의 공기는 서늘한 상태가 되어 초여름이 다가와도 너덜 안의 냉기를 유지하게 된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겨울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너덜 내부의 차가운 공기는 밖으로 나가고, 너덜의 상부로 따뜻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다. 유입된 따뜻한 공기는 겨우내 냉기를 저장한 돌과 열교환을 하면서 너덜 내부에 찬공기를 공급한다. 공급된 찬공기는 너덜 하부를 통해 나간다. 이런 여름철의 너덜은 초가을이 되면 돌은 따뜻해지고 내부는 온기로 채워져 더 이상 차가운 공기를 외부로 내보낼 수 없게 된다. 결국 얼음골의 비밀은 냉장고의 ‘냉동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너덜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초여름에는 얼음까지 어는 얼음골의 냉기가 항상 8월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다면 올해 8월까지 영하의 바람을 쐴 수 있지만 겨울이 따뜻했다면 얼음을 볼 수 있는 기간은 짧아진다. 또한 산기슭에 너덜이 있다고 해서 어느 곳이나 밀양의 ‘얼음골’이 되는 것은 아니며 다음과 같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너덜을 이루는 20~30cm 정도 크기의 돌들이 약 500m 길이로 퍼져 있어야 되며, 이 너덜의 경사는 40도 정도를 유지해야 된다. 돌의 크기가 너무 작으면 너덜의 위아래로 공기의 대류가 일어나기 어렵고 너무 커도 공기와 돌이 접하는 면적이 커 열전달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도 500m 정도가 안되면 차겁거나 뜨거운 공기가 단숨에 채워져 공기의 저장이 불가능해진다. 또 너덜의 경사가 40도 이하로 완만하면 겨우내 찬 공기가 쌓이기 어렵고 그보다 큰 급경사이면 대류가 빨리 진행돼 얼음골의 냉기를 보전하기 힘들다. 덧붙어 돌의 재질은 계절적 온도변화에 따라 부피가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 쉽게 쪼개지는 화산암이 좋다.

한편 얼음골과 생성원리는 비슷하지만 성질이 다른 얼음굴이라는 것이 있다. 산기슭에 깨진 바위층 계곡이 얼음골이라면 얼음굴은 비탈진 언덕 지하에 생성된 동굴로 외부와 통하는 통로가 있을 때 생성된다. 이 경우 굴 주위의 지형이 열을 저장하므로 여름과 겨울 모두 굴의 내부에 차가운 현상이 나타난다.

얼음골이든 얼음굴이든 생성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전력난 해소를 위해 많은 비용이 드는 댐건설이나 원자력발전소 대신 도심 속에 얼음골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여름철 열기를 모아 겨울철 난방으로 이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 여름에는 자연산 냉장고인 얼음골을 찾아 휴가를 떠나보자.

  • 서금영 -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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