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세계관으로 본 판타지 게임 <네오스팀>

스팀펑크 세계관으로 본 판타지 게임 <네오스팀>

주제 정보(전산)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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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 <네오스팀>은 여타의 판타지 게임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 스팀펑크(steampunk)라는 장르를 도입하고 있다. 스팀펑크는 사이버펑크(cyberpunk, 인공두뇌라는 뜻의 ‘cyber’와 불량배라는 뜻의 ‘punk’를 합쳐서 만든 합성어)에서 사이버라는 단어 대신 증기(steam)를 넣어서 만든 신조어이다.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영화에는 <블레이드러너>나 <공각기동대>가 있으며, 스팀펑크의 경우에는 <스팀보이>나 <미래 소년 코난>과 같은 작품이 있다.

스팀펑크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둔탁한 디자인의 증기 기관을 이용하고 있어 성능이 형편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오늘날의 기술수준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 즉 스팀펑크는 20세기 산업발전의 바탕이 되는 내연기관이나 전기 동력 대신 증기기관과 같은 과거 기술이 크게 발달한 가상의 과거 또는 그런 과거에서 발전한 가상의 현재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말한다.

‘네오스팀’이라는 것은 게임 <네오스팀> 속에 존재하는 환상의 대륙 ‘로프 아일’에 존재하는 액체 자원인데 ‘네오스팀’을 기화시키면 강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이용해 각종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게이머에게는 중요한 자원이다. ‘로프 아일’을 둘러싸고 있는 세 나라에는 서로 다른 외모와 능력을 지니고 있는 종족들이 존재하는데, 게이머는 이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게임을 하게 된다.

<네오스팀>의 세계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게임 <네오스팀>의 오프닝에는 ‘대륙이 갈라지기 전 고대는 인간이 마법과 과학을 접목시킨 화려한 과학기술로···’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지구는 약2억5천만 년 전에 판게아(모든 대륙이라는 뜻)라는 하나의 거대한 대륙을 이루고 있었고 약 2억년 전쯤 이 같은 초대륙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게임 <네오스팀>에서 이야기하는 사라진 대륙과 뛰어난 고대 과학기술 문명에 걸맞는 모델은 아마 아틀란티스일 것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은 기원전 335년경 플라톤이 쓴 《대화편》에 처음 등장했는데 사라진 대륙 이야기가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륙이동설이 등장하기 이전에 사라진 대륙 이야기는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었다.

아프리카 대륙 앞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섬에 있는 생물들이 아프리카 보다는 멀리 떨어진 인도의 동식물과 비슷한데 이는 과거에 이 지역이 거대한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가 대륙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지질학자 에두아르트 쥐스(Eduard Suess)와 같은 학자들은 수축설(contractionism)을 지지하면서 침몰한 대륙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기도 했다.

침몰한 대륙이라는 생각은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로 과학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틀란티스나 레무리아, 무 대륙 등 사라진 대륙에 대한 각종 가설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오늘날에도 많은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해양지각은 대륙지각과 달리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라진 대륙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

초고대 문명은 존재했나?
게임 <네오스팀>에서 사라진 대륙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것이 과학문명인데, <네오스팀> 에서는 초고대문명이 있었다고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바그다드 배터리라는 유물은 이미 2천 년 전 전기를 사용했음을 나타내 준다. 당시에는 이 배터리를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금도금을 하는데 사용했다고 추측된다. 그리스의 헤론 또한 이미 2천 년 전에 오늘날의 증기 터빈과 비슷한 장치를 만들었다.

또 중세 십자군을 떨게 만들었던 이슬람 칼의 단조술이나 피라미드와 같은 과거의 건축술에 대한 비밀은 아직도 풀지 못했으며, 이외에도 신비로운 유물들은 많다. 이러한 유물을 바탕으로 고대에 외계인에 의해 세워진 고대문명이 있었다고 하는 신비고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로 제조된 유물의 발견이 과거에 과학의 황금시대가 있었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이는 고려청자를 재현해 내지 못한다고 고려시대의 과학기술이 오늘날 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비행선? 지하철?
<네오스팀>에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비행선 ‘제플린’이 등장하는데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비행선이 실제로 있었을까? 1852년 프랑스의 앙리 지파르(Henry Giffard)는 길이 44미터, 지름 12미터의 럭비공 모양의 비행선을 만들고 동력으로 증기 기관을 사용했었다. 지파르가 증기 기관을 사용한 것은 당시 동력 중에서는 증기 기관이 가장 우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파르의 비행선은 <네오스팀>의 비행선과는 다른데, 그는 수소 비행선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낭과 곤돌라 사이에 거리를 두었고 배기구를 아래쪽으로 휘어지게 만들었다. 이 같은 지파르의 비행선은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지만, 그의 비행선은 맞바람 앞에서는 취약했다. 이후 실용적인 경식 비행선을 만든 사람이 바로 독일의 체펠린으로 <네오스팀>의 ‘제플린’도 마치 경식 비행선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체펠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네오스팀>에서는 마을과 성을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위해 스팀으로 작동되는 지하철을 운행한다. <네오스팀>에서와 같이 피어슨이 1863년 런던에 건설한 최초의 지하철도 증기로 움직였는데, 이는 당시 런던의 교통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건설당시에도 연료인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검은 연기가 문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군데군데 환기를 위한 구멍을 만들었지만 승객들에게 지하철은 지옥철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1890년 전기 기차가 등장해서야 해결될 수 있었다.

<네오스팀>의 중요한 모티브는 마법과 과학의 결합이다.
마법과 기계의 결합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고대로부터 자동기계를 만드는 법과 괴수를 만드는 것은 모두 마법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따라서 뛰어난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직업은 마법사인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마법과 기술이 뒤얽힌 것은 마법이나 기계가 자연의 힘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같았기 때문이었다.

에디슨을 ‘멘로파크의 마법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꾸준히 이어져 온 마법과 과학과의 불편한 동거는 보일의 《회의적인 화학자(Sceptical Chymist)》(1661)를 계기로 갈라서게 된다. 본래 보일이 이 책을 쓴 의도는 연금술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후일 대부분의 화학자들은 이 책을 근대화학의 출발점으로 여긴다.

<네오스팀>이나 스팀펑크를 표방하는 작품들에서 마법과 증기기관의 융화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증기기관이 마치 마법과 같이 강력한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증기기관 등장 이후 퀴뇨의 증기 포차와 같은 증기차는 물론 증기 기관차와 증기선, 증기 비행선까지 증기기관이 도입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19세기 초 영국 사람들은 증기 기관차를 보기 위해 주급의 절반을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아크라이트를 방적기를 발명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방적기를 통해 공장 시스템을 도입해 자본주의가 가능하도록 만든 사람이었다. 증기기관에 의한 자본주의의 등장은 뛰어난 발명이 있다면 누구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이는 많은 젊은 발명가들에게 꿈을 가질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을 통해 부를 가지고자 했던 많은 연금술사이 품었던 꿈과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다. <네오스팀>에서는 서로 다른 영역이었던 마법과 스팀이 하나로 묶여 새로운 세계로 재창조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유사 과학인 마법은 쇠퇴하고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스팀 기술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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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석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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