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유전의 세계

신비한 유전의 세계

언어유전자

주제 생명과학, 인문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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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말을 하는 동물이다. 인간사회에서 말은 의사소통의 기본이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이고, 우리 사회의 혈관이다. 말이 혈관을 통해 원활히 흘러야 건강한 사회이다. 일본 속담에 ‘말은 마음의 심부름꾼’이란 말이 있다. 말은 ‘마음의 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동물은 말을 못하는데 왜 유독 인간만이 말을 구사할 수 있을까? 사람에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훈련을 하더라도 발성 관련 근육을 잘 움직일 수 없어서 극히 제한된 단어만 발음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문장을 만들어 유창하게 대화를 한다. 무엇 때문일까?

일본 · 한국 · 중국 등 6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 침팬지 게놈 프로젝트’에서는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 구조가 무려 98.75%나 같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적 차이가 1%에 불과하다. 그 1%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사람과 침팬지를 전혀 다른 운명의 길로 갈라놓았을까?

유전공학자들은 이것을 놓고 여러 가지 방향에서 많은 연구를 했다.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최근 ‘1% 차이의 수수께끼’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언어 유전자’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폭스피2’(FOXP2)라는 언어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이 유전자가 오랜 진화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이 정교한 언어구사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FOXP2가 처음 발견된 것은 2001년 말경이다. 언어 장애 내력이 있는 영국인 가계의 유전자를 연구해 분석해 본 결과, FOXP2가 인간의 언어 구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FOXP2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포유동물도 가지고 있다. FOXP2가 언어 구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인간을 제외한 포유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연구진은 이 유전자를 더욱 깊이 연구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FOXP2’ 유전자에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해 침팬지나 쥐 등과 다른 독특한 언어 구사 능력을 갖게 됐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FOXP2 유전자는 사람과 침팬지 사이에서 아주 미세한 염기서열 차이를 나타낸다. 이런 차이가 사람에게 언어능력을 가져다 준 것이다.

놀라운 것은 모두 715개의 아미노산 분자로 구성된 FOXP2 유전자가 인간의 경우 쥐와는 3개, 침팬지와는 단지 2개만 분자 구조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는 단백질의 모양을 변화시켜 얼굴과 목, 음성 기관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뇌의 일부분을 훨씬 복잡하게 형성하고, 이에 따라 인간과 동물의 능력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경우 언어유전자 FOXP2에서 2개의 아미노산이 돌연변이를 일으켰고, 그 결과 인간은 혀와 성대, 입을 매우 정교하게 움직여 복잡한 발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두 개의 변이를 제외하면 인간과 다른 동물의 FOXP2는 거의 똑같다.

이 같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시점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시점과 일치한다고 한다. FOXP2의 돌연변이는 12만~20만 년에 처음 일어났으며, 현재 인간이 가진 형태의 유전자 변형은 진화 과정 후기인 1만~2만 년 전에 완성돼 빠른 속도로 전파된 것 같다. 사람만이 FOXP2 유전자의 급속한 진화를 거쳐 지난 20만 년 동안 언어가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해부학적으로 볼 때 현생인류의 등장이 20만 년 전이라는 고고인류학 연구와도 일치한다.

아직 이 유전자의 역할이 정확히 밝혀진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FOXP2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말하기와 문법 등 심각한 언어 장애가 생긴다.

과학자들은 FOXP2 유전자 외에도 다른 여러 유전자들이 언어 구사에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현재 쥐의 유전자를 인간의 언어 유전자와 비슷한 형태로 변이한 뒤 뇌와 행동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사람의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가 더 많이 밝혀질지는 앞으로의 연구에 달려 있다.

  •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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